좋아하는 일이라면 해볼 만할지도
‘못 쓴 자기 글을 견딜 줄 아는 애가 작가로 사는구나’ 이슬아 작가는 겸손하게 말했지만 자신을 견딘다는 그 마음속에 아주 큰 씩씩함이 들어있다. 재능 있는 사람은 빛나지만 굳센 사람만이 그늘 속에서도 계속 기회를 일구어나간다 직업인으로서의 우리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 만드는 신비는 매일의 반복에 있다
<멋있으면 다 언니> 황선우, 이봄 출판사
회사를 다닐 때도 난 항상 모니터링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
생방이 끝나고 나면 편집실에 들어가서 녹화된 걸 돌려보며 그때그때 고치고 싶은 걸 적어 내려갔다.
가끔은 그런 나를 보면서 지나가던 선배들이 툭툭 수정사항들을 얘기해 주기도 했다.
그렇게 애지중지 작성했던 노트는
아빠의 한 순간의 판단미스로 휴지통에 처박혀서 지금은 보려고 해도 볼 수가 없다.
(내용도 안 읽은 채 안 쓰는 노트인 줄 알고 내용은 찢어 버리고 본인이 사용해 버리심)
지금도 모니터링은 열심히 한다.
예전에는 텔레비전에 내가 나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뻐서 모니터를 뚫을 눈빛으로 봤는데
이제는 항마력이 딸려서 대부분 흰자위로 보고 있다.
다만 흰자위로 볼 때 보더라도 모니터링은 꾸준히 하려고 한다.
볼 때마다 툭툭 터져 나오는 불필요한 습관은 고쳐주고 싶다.
의미 없는 멘트나 추임새도 확인해 본다.
혹시나 헤어메이크업이 맘에 안 들었거나 옷이 맘에 안 들면 다음번에는 최대한 피하려고 한다.
십 년이 넘게 했는데도 "아 멘트 저렇게 밖에 못 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머리를 쥐 뜯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꾸준히 고치다 보면 나아지겠지란 생각을 막연하게 해 본다.
준비생일 시절,
아성(어린애 같은 소리)과 비음으로 고민이 많았다.
방송국에 입성해서도 목소리가 하루아침에 좋아지는 건 아니었다.
특단의 조치로 집 근처 판소리 학원을 예약했다.
판소리를 통해 득음의 경지는 아니더라도 입에서 갇혀있는 소리를 시원시원하게 빼내는 발성 연습을 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업이 계속될수록
판소리는커녕 발성도 제대로 되지 않으니 수업을 가는 게 곤혹스러웠다.
할아버지 선생님과 1:1로 마주한 채
그 음을 따라 부르고 있으려니 현타가 오기 시작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되고 나는 영 재능이 없는 건지 스스로 배울 생각이 없는 건지 발전이 없었다.
"선생님, 저는 아무래도 이런 소리 쪽은 꽝인가 봐요. 재능도 없고 실력도 없고"
그러자 그 선생님께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금방 배우지만 금방 까먹기도 한다.
미련한 사람들이 늦게 배우면서 오래 간직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하지만 난 속으로 '아니 사람이 재능이 중요하지 말이야. 재능이 있어서 금방 배우고 내 것으로 만들면 최고 좋은 거 아냐 흥'이라고 말대꾸를 했다.
당시 판소리 발성 수업을 그만 듣겠다는 나를 붙잡는 소리라고만 생각하고 넘겼다.
판소리 수업을 어떻게 끝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지역 방송국을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오기 전에 정리를 했던 것 같다.
판소리가 도움이 됐던 것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어찌 됐건 그때 그 소리 고민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몸에 스며들었나 싶기도 하고.
프리랜서로 오래 살다 보니,
이 직군에서 견뎌 내려면 재능이라는 건 일단 잊고
나를 견디면서 계속 스스로를 밀면서 앞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족한 게 있으면 내가 고칠 수 있는 선에서 노력해 보고 잘하는 게 있으면 그걸 더 부각해 보려고 시도도 하면서 말이다.
매일 꾸준히 나를 밀어 올릴 수 있는 것을 계속하면서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은 알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