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30
옷과 맞닿는 살의 감각은 무뎌지기 마련이다. 그 감촉은 꼭 피부같이 느껴질 정도로 몸에 서려있다. 가끔은 내가 편히 입고 있는 옷이 내게 어떤 자극들을 주고 있는 지 궁금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자세를 꼿꼿이 세우고는 이를 느껴보려 애를 썼던 적이 몇 번 있다. 주변에 사람이 많으면 이런 내 어이없는 행동 동기를 티내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그럴 수록 눈을 질끈 감는다던가, 주먹을 꽉 쥔다던가, 이상하게만치 움직이게 되었다.
시간을 정직하게 느껴보고 싶은 세월이었다. 빨랐다고 느낀 시간, 느렸다고 느낀 시간, 그 순간이 내게 어떤 순간이던 간에 이제는 명명백백한 1초가 무엇인지 궁금했었다. 작년에는 일주일은 빠른데 한달은 너무나 멀게만 느껴지는 기이한 감각을 경험했는데, 꼭 누가 시공간을 으스러뜨리는 것 같았다. 시간이 빨라 아쉬웠다고, 슬퍼했다고. 너와의 시간이 느려 고통스러웠다고, 그리웠다고.
좋았든 나빴든 어떤 시간에 무언가를 남기고 온다는 건 너무나 무섭고 아픈 일이었다. 그래서 빠른지도 느린지도 모르는 1초마다 매번 두려웠던 것 같다. 사람은 직전의 1초를 돌아보지 않을 수 있는가. 그러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노력할 때마다 눈이 질끈 감긴다던가, 주먹을 꽉 쥐게 된다거나, 이상하게 살아진 거 같다.
그래, 후회가 두려웠던 거지. 피부에 새겨진 옷의 감촉처럼 다반사가 되버린 게, 후회다. 과거에 감정을 두고 오는 행위를 후회로 표현하는 게 맞는 지는 모르겠어도, 그렇더라도 후회라고 명하겠다. 나는 시간을 가속시키고, 감속시키는 게 어떤 기준에서 이루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엇이 시공간을 어그러트리는 지는 알겠다. 마침내, 나는 그게 '내가 넘치게 마음을 들이붓던 것'들에게 원인이 있음을 알아냈다. 양껏 들이붓던 그릇에 흘려지는 몇방울의 감정과 마음이 없으면 그게 더 이상할 터이지. 마음을 힘껏 쏟은 것은 우리의 몸과 영혼에 많은 자국을 남긴다고, 옛 교장선생님이 수업 때 했던 말이 이해가 되었다. 나는 처음 내딛었던 내 꿈에 대한 설렘이, 방황하던 권태로움이, 이젠 짜게 식은 첫사랑의 열병이 남긴 흔적들과 함께 살아가야할 것 같다. 이젠 과거에 흘린 마음들은 어떤 증표같다. 이렇게나 행복했고, 이렇게나 슬펐다고, 이만큼이나 무언가에 열정적이었다고. 그 후회들은 꼭 헨젤과 그레텔의 빵가루 같아서 내가 지나온 세월이 꿈같게 느껴질 때마다 나를 권태에서 지켜줄 것이다. 분명히 존재했던 시간이라 말해주며 말이다.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모든 건 변한다는 사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드렸다. 여전히 시간의 감속과 가속에 무언가 으스러지는 것 같아도, 이젠 떳떳히 서있을 예정이다. 무엇하나의 왜곡도 없이 그냥 나답게. 역설적으로도 나는 변할 거니까. 눈을 질끈 감던가 주먹을 꽉 쥐던 이상한 행동도 덜어질 것이다. 옷의 감촉이 무뎌지는 것 같으면 그저 무뎌질 것이고, 그게 그리도 다시 후회된다면 나는 또 눈을 질끈 감고 주먹을 꽉 쥘 것이다. 그런 걸 하나하나 지켜나가고 받아드린다면 다시 나를 되찾고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누군가 좋아해준 나의 다정함부터 가끔 보기 좋게 빗나가는 말실수 마저도 말이다. 요즘 다시 느끼는 게 많은 세월이다 ! 사랑하는 게 다시 많아진 시점이다. 마침내. 다 너 덕분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너.
바보같게도 또 무언가와 사랑에 빠진 것 같다. 나는 후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