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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퍼시인 Nov 19. 2024

6. 서핑이란 일상 속 숨어있는 문학

인연(feat. 나태주 ‘떠나야 할 때를’)

떠나야 할 때를

      

                                   나태주     


우리는 잠시 세상에 

머물다 가는 사람들

네가 보고 있는 것은

나의 흰 구름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너의 흰 구름     


- 나태주 시인의 ‘떠나야 할 때를’ 시 2연 -               





2022년 10월 마지막 주. 그리고 다대포 서핑 강습 3회차. 송정에서 2번의 강습을 거치고 다대포로 넘어와 받는 마지막 강습. 날씨는 역시 좋고~. 다대포 날씨는 늘 나를 반겨주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드라이브를 하는 나의 모습은 비록 30대 후반의 아저씨지만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너무 즐긴 탓일까. 10분 늦었다. 더 당황스러운 건 2명의 강습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앞의 2번 강습 전부 나 혼자 강습을 받아서 오늘도 당연히 나 혼자일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2명이나 더 있다니. 놀랍고 반가웠다. 죄송하다며 고개를 조아리고 뒤늦게 같이 이론 강습을 받았다. 이론 강습을 받으며 다른 2명을 흘긋거리며 쳐다보았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늦게 왔다는 미안함도 잊은 채 그들을 기분 좋게 훔쳐보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나 말고 다른 2명과 같이 강습을 받게 되었으니까. 정확히 다시 말하면, 같이 서핑을 하게 되었으니까. 서프버디란 이런 것이다. 혼자 서핑을 해도 즐겁지만, 같이하면 더 즐겁다. 내가 생각하는 서핑의 장점 중에 이런 게 있다.


혼자 바다로 가서 서핑을 즐길 수 있다. 언제, 어느 때든.     


개인 스포츠의 장점이다. 축구, 야구, 배구, 탁구, 배드민턴, 테니스 등은 혼자서 즐기기 어렵다. 하지만 서핑은 태생이 혼자 하는 스포츠라서 하고 싶을 때 언제든 바다로 달려갈 수 있다. 그런데도 같이 하면 더 기쁘다. 같이 소리쳐주는 모습은 언제봐도 부럽다.      


그 날 파도는 초보에게 너무 좋은 0.5m 높이였다. 우리는 같이 소리쳐주었다. 보드 위에 일어나면 기뻐해 주었다. 몇 번의 직진 라이딩 강습 후에 강사님은 오늘 마지막 시간이니 사이드 라이딩을 가르쳐주겠다고 하였다.(서핑은 처음에 직진으로 파도를 탑니다. 하지만 파도를 더 오래 타기 위해 시간이 지나면 모두 다 왼쪽 또는 오른쪽 사이드로 파도를 탑니다.) 다른 2명도 첫 강습은 아니었다. 이제 직진에서 벗어날 시간인가? 생각하며 호기롭게 도전했다. 풍덩. 다른 두 명도 풍덩. 그러다 내가 처음으로 오른쪽으로 슬금슬금 갔다. 멀리서 들리는 “와~~ 성공” 이라는 소리. 물에서 일어나니 나를 향해 엄지를 세워준 강사의 모습.    

  

‘아.. 내 생애 얼마나 감격스러운 순간인가.’       


수업이 끝날 때쯤 강사는 오늘이 다대포에서의 마지막 강습이라고 하였다. 자신의 고향인 울산으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우리는 다음에 또 보자면서 기약 없는 말을 남겼다. 우리 셋 또한 마찬가지다. 기약 없는 말들만 남겼다.      


그들 모두 잘 지내고 있을 거다. 특히 강사님은 여전히 서핑하며 잘 지내고 있을 것이다. 서핑이 강사님의 인생을 망쳐버렸다고 했으니.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이 참 많다. 예전에는 왜 놓쳤을까 후회하기도 하고 자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름다운 추억 속에 이별 그 자체로 남겨 두어도 좋다. 내가 보는 풍경은 그들과 다른 풍경이다. 그냥 넓은 바다에서 만난 인연이고 계속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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