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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주nice Jan 10. 2024

이대로 괜찮지 않은 나

chapter 1. 어쩌다 다이어트로 들어선 길 


금지되는 것이 많은  코로나 19는 내 인생 깊숙한 곳 까지 침투해서 삶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20대의 청춘을 다 바쳐 공부하여 오로지 대기업에 입사한다는 꿈을 품고 달려 5차에 걸친 대기입 입사에 성공한 남자 친구 현 남편은 앞으로의 인생은 꽃길만 걷는 줄 알았을 것이다. 

입사만이 목표라  어느 부서에서 근무하고 싶냐는 면접관들의 말에 남들이 혐오하는 "플랜트에서 일하는 것이 제가 늘 원하는 건설  현장의 꿈이 었습니다" 이후 본사에서는 멀리 멀리, 경상북도 울진으로 카타르로, 사우디로, 알제리로, 태국으로, 캄보디아로 집나간 후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신세로 20년이 지났다. 


해외 오지로만 발령을 받아  일하고 있는 남편과는 함께 살아보지 못한 20년차  무늬만 부부다. 


 태국에서 산 지 7년이 되어가니 제2고향같은 여기서 자리잡아 제 2 인생을 살아가면 되곘다고 호기롭게 꿈꾸었다.  코로나19는 더 이상 외국인을 받아주는데 녹녹하지 않았으며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답인 현실이 되었다. 


올해만 지나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딸의 비자로는 더이상 가디언을 할 수 없다. 

사업을 벌일 수 있는 길도 막혔고,  타국으로 대학을 진학하는 딸을 붙잡을 수도 없고   오지 해외 근무중인 남편따라 갈 수 도 없는 그 때가 나이 만으로 45살이 되던 해다. 


 어느날 우연히 동영상을 듣는데 

"인생을 축구경기로 생각해 봅시다" 전반전 45분  후반전 45분 이제 전반전을 지나오셨다면 남은 후반전은 어떻게 사실건가요?'

불현듯 나의 나이 45살! 올 해가 지나면 45분 후반전이 시작된다. 

갑자기 그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가 없었다. 그자리에서 나도 모르게  통곡을 하며 울었다. 

너무 열심히만 살아서,  숨가쁘게 달려와서....  이렇게 이제 힘이 다 빠졌는데 또 45년이라는 시간이 남은 것이다. 

성실 근면이라는 무기로 살아왔던 세월이 전혀 부끄럽지는 않다. 

그러나 남은 45년을 이렇게 성실하고 근면하게만  살라하면 내가 너무 가여워서, 눈물이 앞을가렸다. 

이 일은 처음으로 내 남은 삶에 대한 물음표들이 생겨난 시점이다. 

그래서 물었다. 

"희수야! 엄마 너 졸업하면 어디서 살까?" 한국에서 살까? 여기 태국은 너도 없고 코로나라서 외국인 받아주는 절차도 어려워졌고. 니가 가려고 하는 캐나다도 비자 문제 뿐 아니라 엄마가 같이 간다는건 말도 안돼고.. 

딸은 대답한다. "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엄마가 살고 싶은곳에서 살아!" 엄마 있는곳이 내 집이지 뭐.. 

딸의 대답이 어쩐지 실망스럽다. 버려지는 기분이랄까??

며칠 후 남편에게 전화해서 다시 물었다. 

"여보, 희수 졸업하면 나 어디서 살까? 자기는 방글라데시에서 아직 근무 더 해야하지?"

남편이 대답한다. 

"애가 해외로 대학간다는데 그럼 내가 국내로 어떻게 들어가냐? 직장인이 다 그렇지 그런 물음이 어딨어. 여기 있으라면 있고 가라면 가는거가 직장인 숙명이지.. 넌 너 하고 싶은대로 해!"  

남편의 대답도 나를 거절하는 몸짓같았다. 

"나는 어디서 살지?"

"나는 누구와 살지?"

그 두 물음에 꽃혔다. 그렇게 걷다 보니 3시간! 10킬로를 넘게 걷고 있다. 

갑자기 삶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들어오다니...

점검이 필요했다. 


45년 전반전을 잘했다. 수고했다. 애썼다 말해주고 싶지만 그런 45년 똑같이 살아가라는 말에는 눈물의 강한 부정이 들어오고는 하염없이 걷는 일이었다. 

진짜로 나와 대면하고 싶었다. 오전 7시 50분에 아이를 학교에 대려주고 나면 바로 호숫가 둘레길로 향했다. 

나의 몸상태는 인생 최대의 몸무게를 찍었으며 면역력 결핍으로 구안와사가 와서 한달간 치료( 80% 만  돌아간 입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

 탄수화물 중독으로 하루종일 대충 먹다가 야밤에 과자 몇 봉지씩 우격우격 떼려넣는 폭식을 하며  5분안에 잠드는 일을 반복하던 해이기도하며 짧은 거리도 이동은 무조건 운전해서 다녔다. 

늘 피곤했고 이마에는 인상으로 짙어진 미간 주름, 팔자주름이 나이보다 훨씬 들어보였다. 

내가 이전과 다르게 살고 싶다면 제일 먼저 뭘 해보고 싶은걸까? 나에게 물었다. 

겉껍질을 바꾸고 싶었다. 내 몸뚱아리를 그대로 데려가고 싶지 않았다. 

이미 망가질떄로 망가져서 고무줄 바지 아니고서는 입을 수가 없는 다리통,  허리라인 하나 없는 통치마 원피스여야 겨우 치마를 걸친 정도였다. 

 꼴이 베기 싫었지지만 반복적인 행동을 끊어놓을 수가 없었다. 

몸만이 아니라 이제는 마음까지 이대로 괜찮지 않았다. 


입어본 적도 없는 운동복을 꺼낸다. 평일 아침 38도나 되는 동남아 날씨는 에어컨을 옆에 끼지 않고는 숨이 막혀 살 수 가 없다. 입어 본적도 없는 운동복을 위, 아래 팔다리를 다가리고 목에는 마스크를 끼고 다 구겨져 버리기 일보 직전인 운동화를 꺼내 첫 날 나도모르게 10킬로를 걷던 그 지점에 다시 왔다. 

그렇게 오늘도, 내일도, 한달, 석달, 여섯달..

계속 걷는다. 

답을 찾기 위해 다리는 반복적으로 걷고 있고 머리는 계속 생각한다. 

무엇이 하고 싶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내가 나에게 묻는다. 


세탁된 옷을 꺼내 입는데 운동복 반바지가 스르륵 내려간다. 

거울앞에 나는 같은 옷을 입었지만 반바지도 집업도 헐렁하니 뭔가 다른 옷을 입은듯하다. 

살이 빠진 것이다. 

대체 얼마나 빠졌을까? 식단을 한 것도 아닌데 걷기만으로 살이 빠질 수가 있나?

당장 시내 데카트론이라는 스포츠 매장으로 갔다. 새로 고른 옷들은  모두  엠사이즈로 꺼내놓았다. 탈의실에서 옷을 꺼내 입는데  들어간다. 내 몸에.. 

이상했다. 약간 희열도 느껴지고 뭔가 이 상황이 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별의별 다이어트로도 몸하나를 바꾸지 못해 어쩌지 못했는데 몸이 아니라 마음에 집중하며 걷는 동안 체중이 준 것이다. 

몰입하며 생각만 했는데 6개월간 몸은 변화하기 시작했나보다. 

"살 빠진 것 같은데?", " 어머 너 살빠지려나봐" 가 아니라 

"어머어머 살 빠졌네," " 뭐했어?" 희수 엄마 어떻게 된거야?" " 무슨 일이야?"라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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