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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주nice Jan 09. 2024

그래 나 뚱뚱하다. 어쩔래?

chapter 1. 어쩐다 다이어트로 들어선 길 

비행기를 타고 5시간 30분 날아왔다.

동남아의 향신료 냄새가 물씬 나는 꿉꿉한 날씨가 낯선 땅 태국에 도착한 신호였다.

달랑 28인치 여행 가방 2개와 기내용 수하물 가방을 하나씩 들고 거기에도 모자란 짐들은 등에 메는 가방에 구겨 넣어 이고 지고 왔다. 방콕에서 한 시간 30분을 더 내려가면 파타야, 사람들에게는 휴양지로 알려진 이곳이 내가 머물 곳이다.

여기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

하늘을 건너 넘어왔으니 '이전 것은 지나갔고 보라 새것이 되었노라.' 비장한 마음을 품고 7년의 태국 생활을 시작한다.


나의 다시 시작의 의미는 살을 빼보겠다는 결심이 아니라 이대로도 괜찮기로 한 것이다.

동남아의 옷들은 하나같이 다 촌스럽다고 하니 출국 전 보세 옷 가게에 들러 흔히 냉장고 바지라 불리는 찬 감촉용 고무줄 바지를 색색으로 사고, 머리만 집어넣으면 한 번에 한 박자로 끼어 입을 수 있는 통 큰 티셔츠도 종류별로 사댔다. 더군다나 원피스야 고르기 쉽다. 큰 천을 북북 잘라 양 옆만 재단한 듯 보이는 통 원피스 몇 벌이면 슬리퍼에 선글라스랑 착용! 딱 맞다.

내 몸에 맞는 의류 선별도 끝났으니, 이제부터는 맘 편한 식도락의 삶이다.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음식들로 하루하루가 즐겁다.

 마트에 가면 천연색깔의 동남아 과일이 냉동으로 쏟아져 나오는 뷔페식당과는 차원이 다르게 말랑말랑 까먹기 좋게 과일 매대를 장식한다. 노란 수박, 종류별로 숙성도가 다른 망고, 람부탄, 망고스틴, 그 외 이름도 모를 단  과일들이 산처럼 쌓여있다. 가격은 얼마나 저렴한지 한국에서 단맛이 강한 속 노란 망고를 서너 개 봉지에 주워 담으면 5,000원 돈이다. 매일 망고 집에 가서 한 봉지씩 사서 하루에 꿀꺽꿀꺽 당이 들어간다.


태국 길거리 노점상 가게들은 큰 웍에 무언가를 볶아대듯 밥과 계란이 버무려진 볶음밥에 굴 소스를 한 바퀴 돌리고  손목이 달아날 듯 웍을 휙휘 휘저으면  면도 볶고, 밥도 먹고, 그 옆에는 잘게 썰어진 닭도 튀기고, 새우도 튀기고, 길거리 음식 천국이다. 씨앗 기름으로 튀기고 볶은 음식들이 쏟아진다. 


가격이 얼마나 저렴한지 아이 간식을 내 손으로 준비할 필요가 없다. 천원, 이천 원이면 구운 옥수수, 닭튀김, 햄버거, 찹쌀 빵, 국수 한 그릇, 태국식 도넛츠까지..

점심은 나가서 먹고 아이 간식은 사 오고 저녁 한 끼 집에서 먹는데 김말이 튀김, 떡볶이, 라면 파스타, 오징어볶음, 돼지고기볶음 하나가득 단일 음식으로 해 먹고 마지막에 볶음밥은 필수! 침기름에 김가루 솔솔 뿌려 야무지게 비벼 먹는다. 이렇게 먹으면 배가 부르고도 남으니 30분 이내 졸음이 쏟아지면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 밤 11시에 일어나는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한국에서의 데자뷰같은 생활~


밤 11시! 일어나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대로 누운 채 휴대전화를 찾는다. 휴대전화를 찾아 검색하는 건 드라마, 웃긴 짤, 아기 동영상 보며 희죽대기..

그렇게 3시간가량을 혼자 이것 저것 누러보면 휴대전화가 손에서 떨어진 줄도 모르고 다시 잠이 든다.

4시간 5시간 만에 다시 일어나니 피곤하다는 말을 달고 살 수밖에 없다. 왜? 난 4시간만 잤으니까.. 초저녁잠은 잔 게 아니라 낮잠! 이름을 규명 하자 하면  엄연히 그것은 낮잠! 밤잠은 4시간만 잤다고 내가 뇌에 속삭인다. 잠이 모자라 넌 늘 피곤한 거라고….


이렇게 1년에 1kg씩 야금야금 찌는 살은 아무도 모른다.

원래 뚱뚱했고, 원래 그런 모습으로 기억된 태국의 지인들은 살이 찐 내 모습만 알기 때문이다.

가끔 과거 얘기를 하면서 "내가 한때 48kg도 나갔어요. 나도 청바지가 잘 어울린다는 소리도 들었죠. 한 몸매 한다고",, 옆에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희수 엄마 그런 전성기 시절은 상상도 안 되지 우린 이렇게 7년을 봐온 사인데.."

그렇다. 7년 동안 이 모습이면 원래 난 뚱뚱한 사람이다. 

'그래 나 뚱뚱하다. 어쩔래?" 속엣말을 속으로 해본다. 


어느 날 방학을 맞아 동갑내기 친구들과 그의 자녀들을 데리고 태국에서 이웃한 옆 나라 캄보디아로 2박 3일 여행을 갔다.

해외에서 알게 된 사이라도 동갑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 때문인지 우리는 금방 친해져 서로를 '토끼'들이라 부르며  시간이 날 때마다 짬짬이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하던 시절이다.  엄마셋 아이 다섯! 밤이 되면 서로 찍은 사진들을 카톡방에 공유한다. "아이고 이뻐라," 내 눈에도 예뻐 보이는 사진은 나와 나이가 같은 동갑내기 엄마들이다. 평생 살이 쩌본 적이 없다는 그들은 식습관도 나와는 사뭇 달랐다.

금방 배고프다고 하면서 먹는 양을 보면 밥숟가락 2숟가락 정도면 양이 찼다며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어떤 국에든지 밥을 말아 먹는 경우는 없다.

간식이라고 빵을 먹지 않는 건 아니지만 떼어갔나 싶을 정도로 손을 데다 만다.

다른 한 친구 또한 몸무게의  변화를 사십 평생 겪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식습관을 살펴보면 전생에 코끼리였나 싶을 정도로 풀 즉 채소를 좋아한다.

삼겹살 집에서  " 어머나, 미나리 봐, 어머나, 상추 봐"" 여기도 이게 있나 봐?"하면서 몇 겹의 채소 쌈을 싼 위에 삼겹살 한 가닥을 넣고 먹는다.

평소에도 콩, 견과류를 좋아하며 커피믹스를 극히 혐오한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부러 저러나 싶은 마음도 들었다.

사람이면 누구나 나처럼 맵고 짜고 달고 자극적인 음식에 눈이 가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들이 좀 남달랐다. 


가끔은 여행 중 짜증도 났다.

" 뭐야! 먹자고 들어와서 씨알 따끔 먹을 거면 여긴 왜 들어와" "돈만 아깝게"

그런 말을 해대고 오히려 더 먹었다. 남기기 싫었다.

보란 듯이 먹고 난 입가심으로 커피믹스를 마무리하는 사람이란 걸 일부러 보여주었다.

그렇게 먹고, 사진 찍고, 저녁에 찍은 사진들을 공유하고 나면 사진 속 나를 확대해 본다.

저러다 턱은 곧 두 턱이 아니라 세탁이 될 듯하고, 어제도 그제도 입은 고무줄 바지는 '나는 더 이상 맞는 옷이 없다.' 이야기 하는 것처럼 보이고, 피부는 아파 보였다. 날씬한 딸 옆에서 나만 도려내면 괜찮은 사람들의 모임같아 보였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싶었지만 어쩌겠는가 뚱뚱해도 괜찮아지기로 하였으니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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