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어쩌다 다이어트로 들어선 길
"아유~ 젓가락 같은 몸으로 뭘 한다니.."
"그렇게 빼빼 말라서 힘을 쓸 수 있겠어?"
태어나 기억이 있는 순간부터 결혼해서 출산 전까지 줄곧 들었던 이야기다.
꼬챙이 같다, 빼빼 말랐다,, 젖가락 같다. 나의 몸 상태를 향한 수식어다.
고등학교와 대학을 거치는 동안도 158cm에 48kg의 아담한 키에 날씬한 몸매다.
허리 25cm만 입을 수 있다는 꽉 끼는 청바지에 8cm의 높은 힐을 신어주면 잘록한 허리는 강조되고 다리는 길어 보이는 작지만, 글래머스한 굴곡 있는 몸매가 된다.
세상 몸매 걱정은 하고 살지 않았다. 늦은 밤 술과 안주를 먹고 늦게까지 잠 안 자고 돌아다녀도 살은 찌는 게 아닌 줄 알았다.
심지어 4.15kg의 거대한 아이를 출산할 때도 출산 전날 몸무게가 59kg으로 임신 9개월 동안 11킬로가 찌지 않았다.
출산하고 조리원에 들어가니 몸무게 54kg! 출산을 한 사람으로 보일 리 없었으며 그렇게 2주 산후조리를 하면 부기까지 다 빠지고 조리원을 나오는 줄 알았다.
시간이 흐르고 웬걸~ 키는 미미하게 줄어들고 있는데 몸무게는 60킬로그램을 향해 자꾸만 자꾸만 달려간다.
출산 후 10년 동안 사이즈가 바뀌어도 두 번 바뀌었고 세 번째 바뀌는 치수를 간신히 붙잡고 사는 격이 되었다.
이전의 나는 기억 속에 묻혀 꺼내보는 오래된 앨범과도 같다.
불과 결혼해서 10년 만에 다른 내가 되어있다.
아줌마 스러운 말투, '대충, 먹자,' '바쁜데 뭘~". " 후딱 먹고 치우자" 이런 말들은 입에 달고 사는 말이 되었다.
뭐가 그리 바쁜지, 후딱 먹고 왜 치워야 하는지.. 대충 왜 먹어야 하는지 스스로 물어보지도 못했다.
정신없이 살다가 창피해지면 하던 다이어트는 수 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그만두기 일쑤였다.
그렇게 다람쥐 쳇바퀴 돌듯 같은 일상을 사는 와중에 전화를 한 통 받게 된다.
"여보, 10년 만에 사막 오지에서 태국 파타야로 발령이 났어."
"거기는 가족이랑 같이 갈 수 있는 현장이래, 주변이 관광단지라 가족이 같이 살 수 있대 한번 가보지 않을래?"
" 현장은 마을에서 좀 떨어져 있지만 출퇴근할 수 있다 하니 가족이랑 함께 살 수 있을 것 같아"
"해외 발령 10년 만에 나에게도 가족이랑 살 수 있는 여건의 발령지가 났다는데 이게 웬 떡이야?"
"이런 건 고민도 하지 말고 가야 하는데.. 일 그만둘 수 있지?"
일을 그만두라는 말은 나를 그만두라는 이야기 같았다.
결혼 후에는 안정된 내 집은 없었다. 그저 건설회사 플랜트 사업 부서에서 일하는 남편 따라
남편이 울진으로 발령이 나면 울진에서 서울로 일하러 다녔고
남편이 해외로 발령 나면 나는 머무는 곳에서 일자리를 마련 하였다.
일을 포기하는 건 앞으로 경력 단절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졌고 어느 날 갑자기 애만 키우는 주부로 전락하고 싶지 않아 붙잡고 있는 나의 증표 같은 것이 일이다.
시간이 없어 차 안에서 아이 밥을 먹이며 출근할지언정, 픽업해 줄 양육자가 나 하나뿐이라 동분서주한 시간을 보낼지언정 이 아이만 크면 나는 일하는 여성으로 당당히 살고 싶어 버티고 버티는 중인데....
500가지 일을 해서 몸이 힘들어도 내 일을 한다는 건 내가 전문직 여성이라는 증거이며 힘에 붙여도 박사과정 공부도 병행하는 이유는 진행형 교육자라는 표식을 달고 싶은 마음인데 그만 두어야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이다.
한번 내려놓아야 할 것들을 열거해 보자.
운영하는 아동 발달센터 정리
결혼 10년 만에 내 집 장만하여 새 물건 들온 지 6개월인 안 된 집과 가구 정리
딸아이 학교 정리,
나의 대학원 박사과정 학교 휴학? 자퇴?
시댁과 친정의 정기 방문 정리,
교회의 일과 봉사 정리,
인간관계 정리,
그중에 정리 안되는 한 가지가 있었다. 나의 살!
10년 만에 마른 꼬챙이에서 엄마가 뚱뚱해서 우는 딸의 몸인 나의 살은 정리하고 갈 수 있는 시간이 없다.
과연 이 수많은 일들을 내려놓을 수 있고 정리할 수 있을까?
갑자기 머릿속에 큰 징이 울리듯 든 생각!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갈 수 있다는 뜻 아닌가? 나를 모른다는 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신호일까?
뚱뚱한데 당당한 채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한국처럼 거기는 외모 지상주의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나를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지오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동네 이사도 아니고 물 건너 이사를 한다는 건 어쩐지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신분 세탁 같은 기회인 것처럼 보였다.
사실 그보다 억지로 억지로 끌고 왔던 내려 힘겨운 일상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삶의 무게가 버거웠다. 처진 어깨가 올라가지 않았다. 하루하루 숨 쉬는 것이 목구멍을 쪼여왔다.
도망갈 수 있는 기회?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기회?
그렇다면 더 멀리 타국으로 그렇게 숨어 살면서 새로 태어나면 되지 않을까?
그럼, 그뿐이다. 오래도록 버리지 못하고 놓지 못해 끌고 왔던 나의 모든 짐을 벗어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왜 지금껏 부여잡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5월이고 7월에 태국에 입성하기 위하여 10여년씩 끌고 왔던 일을 두 달 안에 순식간에 정리한다. 도망치듯,, 이대로 환경만 바꾸어 다시 태어나고 싶은 마음에…. 더 멀리 타국으로 숨어 살기 위해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