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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y Feb 24. 2024

반려 스피커

새 식구

샤워할 때 꼭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틀어놓는다. 예전에는 오디오북을 들었는데 자꾸 흐름이 끊기는 일이 있어 그냥 음악만 듣는다. 특히 운동하고 난 후 샤워 할 때 페퍼민트 바디워시와 신나는 음악은 개운함을 훨씬 배가 시켜주는 것 같다. 추운 날에도 러닝 같은 운동을 하면 땀이 나니 이 조합의 청량감은 겨울 야외 스파를 생각나게 한다. 그래서 간혹 이 느낌을 느끼려고 러닝을 하는 일도 있었다. 뭔가가 잘 안 풀리고 우울할 때면 술보다 더 건강한 방법인 것 같다.


요즘 스마트폰들이 거의 방수가 되니 샤워할 때 물이 튀어도 신경 쓰이지 않아 좋다. 이거 때문에 오래전에 방수가 되는 스마트폰이 흔하지 않았을 때도 방수되는 제품을 샀었던 이유였다. 그렇게 음악 잘 들으며 샤워를 하고 있었는데 소리 크기나 음질에 갑자기 불만이 생겼다. 아마도 다른 불만이 여기로 표출된 것 같기도 하다. ‘욕실용 스피커를 하나 사야 할까?’ 샤워를 하는 내내 생각했다.


이미 집에 블루투스 스피커가 몇 개가 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난 손에 잡힐만한 콤팩트한 스피커를 좋아한다. 그래봤자 고가의 제품들이 아닌 고만고만한 가격의 제품들이다. 스피커가 대여섯 개쯤 됐을 때 잘 사용하지 않는 것들은 중고장터에 팔았고 직원 선물로도 줬었다. 그래서 남게 된 건 두 개다. 


하나는 영화 볼 때 빔프로젝트에 연결해서 사용하는데 이건 묵직하고 소리도 크다. 십 년 전에 해외사이트에서 리퍼로 구매한 제품인데 너무 좋아 자랑하니 후배도 따라서 하나 구매했었다. 지금은 얘도 세월이 좀 지났다고 두툼한 베이스소리를 잘 들려줬었는데 지금은 참지 못하고 지직 거린다. 이 지직거림을 해결하고 싶어 열심히 검색해보니 해결 방법이 있었는데 분해를 하고 작업을 해야 하니 예전 같았으면 생각도 안 하고 뜯어봤겠지만 지금은 그 정도 세월이 지났으면 그럴 만도 하겠지, 나도 아픈 곳이 있는데 이런 것쯤은 감수하고 살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지직거림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상황까지 왔다. 나이가 들면 ‘왜 아프지?’라는 것보다 ‘그동안 잘 견뎌줘서 고마웠어’하고 더욱 신경 쓰고 아껴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음악 영화를 보다가 그만 참지 못하고 해드폰을 쓰고 보게 됐다. 그 영화에서는 엄청난 비트들이 많이 나오는데 스피커에게 두 시간 동안 고통을 안겨주고 싶진 않았다. 앞으로는 잔잔한 영화나 혹은 고전영화를 볼 때 같이해야겠다.


또 한 개는 주방에 있는데 이건 음식 할 때나 설거지할 때 사용하는 용도이다. 작고 가볍고 전화도 받아지고 매트한 질감의 금색에 양 옆 테두리는 아이보리색상이라 무지 고급스럽다. 그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음량은 고음이던 저음이던 아주 잘 표현해 줘서 음악을 들을 때 한층 더 기분이 좋아진다. 사이즈가 작아 설거지할 때는 수전 위쪽에 음식 할 때는 도마 옆에 놔둬서 항상 놓여있는 위치는 내 마지막 동선 근처에 있다. 아주 잘 사용했는데 얘도 문제가 있다. 이건 구입한 지 6년째 됐다. 영화용 스피커는 거의 붙박이 수준에 어댑터로 연결되어 있어 항상 그 자리에 있으면 되는데 얘는 매번 옮겨 다녀야 하는 상황이라 충전한 후 놔두곤 했었는데 처음에는 배터리가 오래갔지만 요즘에는 이틀에 한 번씩은 충전을 해야 한다. 전원버튼 테두리가 파란데 빨개지면 충전을 해야 하는데 그쪽을 언젠가부터 자주 보게 됐다. 이틀에 한 번이니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예전에는 충전을 언제 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오래갔으니 체감이 확 된다. 충전은 방에서 하니까 주방에서 방까지 와서 충전하고 스피커가 방에 있는 줄 모르고 주방에 갔다가 다시 방에 돌아오는 경우가 계속 생기니 이게 불편한 것보다 영화용 스피커와 같이 애잔하다. 주방에 충전기를 가져다 놓으면 될 일인데, 커피메이커, 블랜더, 토스터등 많아서 도 꼽아놓기가 꺼려진다. 하루에 한 번씩 충전을 해도 좋으니 오랫동안 나와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달걀이랑 양배추가 떨어져서 주문하려고 쿠팡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스피커가 생각이 났다. 샤워할 때 쓸만한 스피커가 있을까. 음질이 안 좋아도 되고 기능은 거의 없어도 되고 스마트폰보다 소리가 크고 방수가 되면 좋을 것 같아 생각하고 검색을 해봤다. 오래전에는 이런 거 구매하려고 해도 가격을 보면 한번 더 생각하게 됐었는데 이제는 기술의 발전이 놀라워 상향평준화되고 중국의 가세로 가격까지 저렴해졌으니 이런 점을 누릴 수 있는 이 시기가 새삼 좋다는 생각이 들만한 그런 제품을 찾았다. 리뷰를 보니 소리는 큰 기대를 하지 말라고 했다. 기능을 보니 멈춤과 볼륨조절만 있었다. 다음곡 재생하는 버튼쯤은 하나 넣어줘도 될 것 같은데 가격을 보고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무려 만오천육백 원의 가격에 이 정도만으로도 흡족하다. 이제는 색상만 고르면 되는데 무려 여섯 가지나 있어서 어떤 게 괜찮을까 고민했다. 어떤 색상이 욕실에 어울릴까. 욕실의 색상은 다크그레이고 질감이 있는 타일이라서 흡착식으로 되어 있는 도구들은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다. 선반에 고리가 여러 개 있는데 거기에는 샤워타월과 때수건이 걸려있다. 여기서 가장 어울리는 색상은 크게 고민하지 않으면 블랙이나 그레이일 것이고 포인트로 주고 싶다면 레드나 오렌지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나만 보고 사용할 건데 포인트고 뭐고 왜 이렇게 공들이며 시간을 보낼까 하는 시점에 바로 결정해버렸다. 방수 스피커니 그에 맞게 뭔가 밀리터리느낌의 카모플라쥬 색상도 있었다. 포인트를 주는 색상이나 욕실과 잘 어우러진 색상보다는 때수건 옆에 걸어놓을 거니 이렇게 하면 내 뒤통수 쪽인데 위치도 좋고 때수건색상과 잘 어울릴 수 있게 연출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카모플라쥬를 선택했다. 배송이 되어 제품을 열어보는 순간 아주 잘 한 선택이라 생각했다. 소리는 기대를 안 했으니 크고 좋았고 방수기능은 물에 넣어놔도 되게끔 생겨서 만족스러웠다. 이후로 샤워할 때마다 음악을 틀어놓는데 뭔가 든든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오래된 것보다 새것이 좋고, 좋은 거 하나보다 다양하게 있는 걸 좋아했는데 갈수록 변하게 된다. 오래 써서 지겹거나 필요 없어서 처분을 했다면 이제는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할 때까지 사용하는 것들이 점점 늘어나게 된다. 특히 집에 있는 아주 오래된 것들은 조금 더 조심해서 사용하게 되고 오랫동안 그대로인 게 가끔 고맙기도 하다. 내 손으로 끼니를 해결하지 않았을 때는 몰랐는데 이제는 내 손으로 만들어 먹으니 사용하는 접시가 여러 벌 있는데 가장 좋아하는 접시는 무려 나보다 한 살 더 먹었다. 그때는 국내에 전자레인지가 없었던 때였는데 이건 전자레인지에 넣어도 말짱한 게 볼수록 기특하다.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는 건 이전보다는 더 고마움과 감사함, 소중함을 더 잘 느낄 수 있는 그런 시기에 내가 있어 그런 것 같다.


내 반려 스피커 들은 오늘도 할 일을 묵묵하게 해냈다. 특히나 욕실에 있는 새로 온 친구는 나이가 어려 그런가 항상 활기차 보인다. 샤워 후 훨씬 더 청량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줘서 고맙다. 식구가 느는 느낌이 이런 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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