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갔을까?
매일 운동한 지가 벌써 일 년이 훌쩍 넘었다. 몇 개월 전부터는 주가 되는 운동이 달리기로 바뀌면서 이틀에 한 번씩 뛰고 있다. 원래는 매일 뛰었는데 내 몸상태를 고려하지 못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무릎이며 발목이며 아파오기 시작해서 이틀에 한 번으로 바뀠다. 인정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부분을 잘 생각해야 하는 시기에 있는 것 같다.
달리기를 안 하는 날에는 로잉머신을 한다거나 근처에 산길을 걷는 걸로 운동을 하고 있다. 근력운동도 좀 해야 하는데 나는 정말 하기가 싫다. 아주 여러 번 회사 근처나 집 근처 헬스장을 등록했지만 한 달 이상 간 적이 없어서 이게 나와는 맞지 않는 운동이라 느꼈다.
요즘은 몸 만드는 게 트렌드니 멋진 몸을 볼 때마다 그 사람들이 너무 존경스럽다. 내가 하지 못하는 힘든 걸 해내는 걸 보니 정말 그렇다. 한 가지 안타까운 건 그렇게 몸을 만드는 게 건강과 같은 의미로 판단되는 게 약간 아쉬울 뿐이다. 조각 같은 멋진 몸을 만들고 유지할 때 건강한 상태가 아닐 수도 있으니 이 부분은 스스로 조절해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렇게 못하니 대단한 건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추운 날이라도 달리기를 하거나 로잉머신을 하면 땀이 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운동 후에는 샤워할 때 안에 입은 티셔츠는 꼭 빨아서 널어놓는다. 양말이랑 속옷은 많고 운동복도 서너 벌 정도 있으니 이건 세탁기에 집어넣고 티셔츠만 바로 빨아놓는다. 왜 이것만 샤워할 때 빨게 됐냐면 대충 빨아도 금방 마르고 눈에 보이는 곳에 걸어두면 운동을 빼먹지 않고 해야겠다는 그런 이상한 생각들이 합쳐져서 루틴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한지 일 년이 넘었으니 이 행동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진행되는 무의식의 영역에 들어가 있다.
재작년에 서울마라톤을 신청하면서 받은 티셔츠가 두벌인데 각각 하얀색, 파란색이다. 파란색은 거의 입지 않고 하얀색만 주야장천 입어서 몇 개월 전부터는 하얀색은 좀 쉬라고 넣어놓고 파란색을 계속 입기 시작했다.
티셔츠를 운동 후에 빨아서 걸어놓는 곳은 드레스룸 방문에 설치해 놓은 턱걸이봉이다. 드레스룸이 현관옆이고 거실 오른쪽이라 걸어놓으면 항상 보인다. 어쩌다 운동을 못한 날이 있었는데 이 티셔츠가 눈에 들어와서 늦은 밤에 잠깐 걷고 온 일도 몇 번 있다. 그래서 파란 티셔츠는 내게 운동을 빼먹지 말고 하라는 부적 같은 의미다.
어느 날 달리러 나가려고 준비 운동을 열심히 하고 운동복으로 갈아입으려고 파란 티셔츠가 걸려있는 쪽을 봤는데 세탁소에서 받은 철사 옷걸이만 턱걸이봉에 덩그러니 놓여있고 티셔츠는 없었다. 항상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게 없으니까 잠깐 혼동스러웠다. 그리고 바로 어제 있었던 일들을 복기하기 시작했다. 어제는 산에 갔고 집에 오자마자 샤워를 하고 파란 티셔츠는 당연히 빨아서 걸어놨었는데 이게 대체 어디로 갔을까.
가장 먼저 한 일은 세탁기를 들춰보는 일이었다. 봤더니 없었고 그다음에는 드레스룸을 뒤졌다. 없었다. 그리고 내 방, 안방, 거실 있을 만한 곳을 다 뒤져봤는데 없었다. 운동 관련 용품들을 넣어놓는 서랍도 계속 뒤져봤고 옷장 서랍도 봤다. 그런데 자주 입는 옷들은 서랍에 넣어놓지 않으니 거기 들어갈 리가 없었다. 분명히 빨았는데 축축한 상태로 넣어놓을 리도 없고 말이다. 운동 나가야 되는데 파란 티셔츠 찾는데 삼십 분쯤 보낸 것 같다. 일단 운동먼저하고 생각해보자 싶어 하얀 티셔츠를 꺼내 입고 나갔다. 당연히 달리기 하는 한 시간 내내 파란 티셔츠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와 같이 파란 티셔츠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생각나서 원래 달리기 하면 무척이나 힘들고 ‘포기할까’ 이런 생각들을 몇 번 하게 되는데 파란 티셔츠 덕분에 전혀 힘들지 않고 끝냈다.
운동을 하고 난 후 항상 그랬듯이 티셔츠는 빨아서 턱걸이봉에 걸어두었다. 파란 티셔츠 생각을 너무 오래 했으니 좀 잊고 일상을 보냈다. 안정을 좀 찾고 난 다음에 찾아보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발이 달려있지 않으니 말이다.
저녁때쯤 다시 한번 찾아봐야지 싶어 우선 세탁기로 먼저 갔다. 요 며칠 눈과 비가 계속 와서 세탁할 타이밍을 놓쳤던 터라 세탁할게 좀 쌓였었다. 하나씩 하나씩 휘저어서 다시 봤더니 거기 있었다. 내 속옷이 파란색 계열이 많아 아까 찾아봤을 때 내가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처음 세탁기를 봤을 때 제대로 봤으면 됐을 텐데 ‘나는 항상 티셔츠를 빨아서 걸어놓지 세탁기에 넣을 리가 없어’라는 확신이 들어차있었으니 그게 제대로 보일리가 없었던 것 같다.
최근에 겪은 여러 일들 중에 가장 빈번했던 게 읽었던 책 제목을, 봤던 영화를, 영화 주인공의 이름이 생각 안나는 경우가 상당했다. 특히나 방금 읽었던 책 제목은 읽는 내내 위,아래쪽에 나와있고 다 읽은 다음에 느낌을 바로 써놓기 때문에 제목이 생각이 안나는 경우는 아주 조금 충격이었다. 예전에 읽었던 책 제목이 생각 안 나면 모를까, 왜 이런 일들이 최근 들어 자주 생길까, 뭔가 문제가 있나 싶기도 하고 심각한 건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찝찝한 마음이 계속 들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그럴 리가 없어’에 이전 보다 더 집중하는 것 같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 때문에 중요한 건 놓치고 의미 없는 시간이 흘러가는 건 아닌지, 책 제목이 생각 안 날 수도 있지 찾아보면 될 걸 그럴 리가 없다며 생각날 때까지 생각해 보니 바보 같은 행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좀 더 넓어지고 유연해지는 사고를 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이런 자잘한 것들에 신경 쓰는 걸 보니 아직 멀었구나 싶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흐름의 속도는 점점 변화된다. 서서히 변하니 내가 변했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변해있어 ‘갑자기’를 느끼곤 한다. 하지만 어떤 현상이 갑자기 일어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미 난 여러 번 그걸 느끼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맞닥뜨렸을 때 ‘갑자기’로 반응할 뿐이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들, 그리고 원래 그랬던 것들인데 내가 반응을 하는 것 같다. 뭔가 결여되어 생각을 쏟을 곳 하나가 비어있어 그렇다는 걸 알 것 같다. 단지 이 정도 이유였다면 좋겠다.
현재 드레스룸 문 앞 턱걸이봉에는 파란색, 하얀색 티셔츠 두벌이 나란히 걸려있다. 다시 하얀색 티셔츠는 서랍으로 가져가야겠다. 그리고 ‘내가 그럴 리가 없어’는 ‘나는 그럴 수가 있어’로 바꿔 생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