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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y Mar 01. 2024

짜장면

대체 불가능한 것

최근에 꿈을 자주 꾸게 되는데 다행히 안 좋은 꿈들이 아니라 대부분 기분 좋은 꿈이다. 기억이 안나는 경우도 많지만 꿈에서 깨고 싶지 않을 때도 간혹 있다. 기분 좋은 꿈을 꾸다가 깰 때면 많이 아쉬워하며 웃는 얼굴로 다시 잠든 적도 있고 깨고 나서 꿈꾼 내용을 한번 적어봐야겠다 생각해보지만 한 번도 실천에 옮긴 적은 없다. 기분 좋은 일이 그리 많지 않으니 꿈에서라도 좋은 일들이 생긴다는 건 사소한 기쁨 중 하나다. 


꿈을 자주 꾸는 이유는 잠자는 시간이 길어서 일 것이다. 회사 다닐 때는 아주 길게 자봐야 대여섯 시간 정도가 전부인데 요즘은 무조건 일곱 시간 이상 잠을 자니 꿈을 자주꿀만도 하다.


먹는 것에 대한 욕심은 없지만 맛있는 건 아주 좋아한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지만 먹고 싶은 게 생각나면 꼭 찾아가서 먹는다. 


맛있는 걸, 좋아하는 걸 먹는다는 건 회사를 다니고 있을 때와 안 다니고 있을 때가 확연히 다르다. 회사 다닐 때는 꼭 맛있고 입에 맞는 것들만 골라 먹었다. 내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을 때는 직원들이 좋아하는 음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런 음식들도 직원들이 좋아할 만한 이유가 있으니 계속 먹다 보면 결국 입에 맞아 그것도 맛있는 음식이 되어 버렸다.


회사를 다니지 않는 지금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비슷하게 요리를 해서 먹고는 있는데 당연히 한계가 있다. 맛집에서 나오는 맛을 낼 수 있을 턱이 없다. 거의 생긴 것만 혹은 아주 약간의 맛만 비슷하게 흉내 낼 정도다. 그리고 그렇게 흉내 낼 수 있는 음식도 몇 가지가 없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과정도 복잡해지니 결국 몇 번 비슷하게 해 먹다가 가장 편한 방법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귀찮음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외부 약속이 없으면 당연히 집에서 식사를 하게 되는데 반찬이나 국을 만들어 놓으면 한 번에 다 먹는 게 아니니 대부분의 식사들이 비슷하게 이어진다. 그러다 좀 물리면 다른 음식을 해 먹고 또 해 먹다가 귀찮으면 그냥 있는 거 먹고 그러던 중 정말 먹고 싶은 게 생각나거나 먹어야겠다 싶으면 누군가와 약속을 잡기도 하는데 한 열 번 생각하면 한번 실행에 옮길까 말까 한다. 혼자 가서 먹고 올까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이런 생활이 지속되니 매번 끼니를 챙기고 도시락을 챙기는 엄마들이 원래도 대단해 보였지만 더욱더 대단하게 생각된다. 특히 아이들한테 외부음식이나 인스턴트 같은 것들이 아닌 직접 요리해 주는 그런 엄마들의 노고는 대체 어떻게 표현해주는 게 좋을까.


어려서부터 반찬투정이나 뭐 이런 건 당연히 없었고 주면 주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렇게 먹었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비슷한 걸 먹는 것들에 대한 시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스스로 한테 반찬 투정이며 음식에 대한 불만스러움을 나한테 표현한다. 그렇게 스스로한테 먹는 것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기 시작했고 이런 일들이 생기니 이걸 해결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여러모로 머리를 굴려봤으나 결론은 ‘건강한 식단’으로 콘셉트를 정하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나의 명분은 ‘건강한 식단’이 됐다. 이렇게 되면 매 끼니마다 반복되는 음식도 ‘건강함’이 주제가 되니 그 주제에 맞게 생각하고 먹으면 그뿐이다. 조금 억지스럽기도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고 먹는 게 마음 편하다.


꿈을 꾸었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직원들과 갔던 중국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는 꿈이었다. 이것저것 재미있는 얘기들을 하면서 식사를 했는데 난 짜장면을 먹고 있었다. 꿈에서 나온 그 집은 저녁 요리도 괜찮아서 직원들과 저녁에 술도 자주 마시러 갔었던 집이었다. 이 집에서 짜장면을 먹은 적은 거의 없었는데 꿈에서는 내가 짜장면을 먹고 있었다. 한 젓가락 감아 입에 넣어 오물오물 씹으니 그 특유의 식감과 맛이 입안에 온통 어우러졌다. 입안 가득 짜장면을 넣고 씹은 후 연태고량주 한잔을 마셨다. 이것 또한 향이 코로 살짝 배어 나오면서 짜장면 맛을 더했다. 이토록 맛있게 짜장면을 먹고 있었는데 꿈에서 깼다. 꿈이 너무 생생해서 입안에 침이 고여있었다.


일어나서 간단하게 스트레칭하고 설선물로 받았던 한라봉이 남아 있어 까서 먹었는데 입안에 넣고 코로 숨을 뱉으니 연태고량주향이 났다. 그렇게 연태고량주와 짜장면 생각을 뒤로한 채 어제 읽다 말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한참 보다 보니 벌써 오후 한 시가 되어 버렸다. 첫 끼니를 먹어야 하는데 원래대로 한다면 ‘건강한 식단’으로 하는 것이 맞으나 꿈에 나온 짜장면 생각을 머릿속에서 끄집어 낼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배달앱을 켰다.


내가 집에서 뭔가를 배달시켜 먹은 적은 한 손으로 꼽는다. 그 흔한 치킨도 시켜 먹은 적이 거의 없다. 이유는 건강상의 이유가 가장 컸다. 사회생활하면 밖에서 먹는 음식이 대부분인데 집에서까지 시켜 먹으면 안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귀찮아도 집에서는 꼭 요리해서 먹는 걸로 정했다. 하지만 짜장면은 시켜 먹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짜장면을 검색했다. 


집 주위에 중국음식점이 이렇게 많았나.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건 최소주문 금액과 배달비용이었다. 회사 다닐 때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들이 먼저 신경이 쓰인다. 최소주문 금액과 배달비용을 합하면 내가 집에서 짜장면을 먹으려면 우리 동네 기준 만오천 원 정도가 있어야 한다. 혼자 사는 사람들 배달음식 많이 먹던데 이 정도 금액을 항상 지출하는 건가 싶었다. 주문을 할까 말까 생각하면서 한 십분 정도는 배달앱을 쳐다보고는 그냥 안 먹는 걸로 결론짓고 앱을 껐다.


냉장고에 보니 예전에 넣어 두었던 짜장라면 스프가 보였다. 왜 이게 스프만 남아 있을까 생각해 봤는데 기억은 나지 않았다. 짜장면 시켜 먹는 걸 포기하긴 했지만 이게 있으니 만들어 먹으면 될 것 같았다. 우선 집에 있는 면들을 생각해 봤는데, 라면과 소면, 메밀국수, 파스타면 이렇게 있다. 이걸로 면을 대신하기보다는 밥은 있으니 짜장밥을 해 먹으면 되겠다 싶어 짜장밥으로 정했다.


얼마 전에 사놓은 대파와 양파를 꺼냈다. 고기는 없는데 없어도 그만이다. 일단 대파와 양파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놓고 프라이팬에 오일을 둘렀다. 짜장밥을 하기 전에 미리 달걀프라이를 해놓고 접시에 담아놨다. 다시 오일을 두르고 썰어놓은 파를 넣어 한동안 볶아 파기름을 만든 후 양파를 넣었다. 양파를 넣으니 달큼한 냄새가 올라왔다. 언젠가부터 원래 있었던 단어 같은 ‘불맛’을 내기 위해 불을 최대로 하고 프라이팬을 앞뒤로 흔들면서 파와 양파를 공중제비 시켰다. 그런 다음 밥을 넣고 밥알이 흩어질 수 있도록 지그시 누르며 흔들었다. 다 섞였을 때 짜장수프를 넣는데 이게 분말이라 그냥 넣으면 한 곳으로 다 뭉치게 되니 물도 조금 넣어 걸쭉하게 해서 같이 볶았다. 금방 볶아내고 해 놓은 달걀프라이 위에 짜장밥을 올렸다. 며칠 전에 해놓은 겉절이를 꺼내고 이제 한번 먹으면 없을 콩나물국 한 그릇을 데웠다. 이렇게 지난밤 나온 짜장면 먹는 꿈은 남아있던 짜장스프로 만든 짜장밥으로 대체를 했고 맛있게 먹었고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완전히 만족스럽다고는 말할 수 없다.


세상에는 다양한 존재와 가치가 존재하지만 대체 불가능한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의 존재, 시간, 자연, 진정한 사랑, 개인의 경험, 행복 등은 대체 불가능한 것들이다. 이러한 것들을 생각하면서 난 오늘 또 한 가지 대체하지 못할 것에 대한 목록을 추가할 수밖에 없었다. 


짜장스프로 만든 짜장밥은 중국음식점의 짜장면을 대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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