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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y Jan 26. 2024

손수건

이제는 잘 볼 수 없는 것

어렸을 때 말고는 TV를 거의 보질 않는데 요즘은 거의 혼자 밥 먹는 게 일상이 되다 보니 뭐라도 봐야겠다 싶어 OTT를 본다. 운동할 때나 밥 먹을 때 친구처럼 좋다. 주로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밥 먹을 때는 자막을 보지 않아도 되는 영화나 드라마도 종종 보게 된다. 오늘은 밥 먹을 때 드라마를 켜놓고 있었는데 생각이 깊게 들어갈 수 있을 만한 장면을 보게 됐다. 


여자는 아버지를 만나고 오는 길이라 조금은 늦은 저녁이었다. 사람들의 옷을 보니 한 겨울은 아니더라도 초겨울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버스를 탔는데 그 안에는 세 명 정도 있었다. 여자는 창가 쪽 자리에 앉아 흐느끼기 시작하더니 어깨를 들썩거리고 급기야는 울음이 터져서 소리 내어 엉엉 울고 있었다. 그렇게 소리 내어 한참을 울고 있었는데 그 뒤에 남자 하나가 있었다. 남자는 그렇게 울 정도면 분명 무슨 일이 있어도 단단히 있는 것 같은데, 잠깐 생각하다가 바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한번 털어낸다. 그리고는 여자의 어깨를 툭툭 치고 말없이 건넨다.


요즘은, 아니 오래전부터 주위에서 손수건을 사용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티슈나 물수건을 챙겨 다니지 실제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을 본 건 상당히 오래됐다. 아직도 많이들 쓰는데 내 눈에만 안 보이는 걸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딜 가나 손수건이 필요한 장소에는 대체할 만한 것들이 있으니 더욱더 안 보인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가지고 다녀야 할 물건들이 서로서로 자리를 비켜주는 것 같다. 휴대폰이 없었던 시절에는 그 자리에 어떤 게 있었을까. 요즘에 새롭게 등장한 가지고 다닐 것 중 하나는 손소독제다. 손수건을 대체하지는 않았지만 백이나 파우치에 공간이 있다면, 준비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찝찝한 게 싫은 사람이라면 꼭 가지고 다니는 물건이 되었다. 나 또한 가볍게 외출할 때는 아니지만 가방이나 파우치에는 손소독제 하나쯤은 들어있다.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이 생각난다. 휴게소에 서면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화장실을 간다. 지금이야 핸드드라이어 같은 것도 있고 핸드타월도 있고 하니 문제가 없지만 오래전 풍경은 세수를 하거나 손을 씻고 나서는 뒷주머니에선 언제나 손수건이 등장하고 경쾌하게 한번 털어서 얼굴을 닦거나 손을 닦았던 모습들이 떠오른다. 어렸을 때 나는 손수건이 없으니 아저씨들이 손수건을 털 때 내 손을 마구 털었던 기억이 난다.


난 손수건을 가지고 다닌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손수건을 사용할 일도 없고 사용한 적 없이 그대로 있다가 간혹 입었던 옷 주머니에서 발견되곤 한다. 재킷을 입을 때면 재킷 속 주머니에 넣어놓고 재킷을 안 입는 계절이면 바지 뒷주머니에 넣는데 요즘 입는 바지들이 뒷주머니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들도 있고 트레이닝 복을 입는 경우도 있고 해서 손수건을 빠뜨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제 외출하려고 옷을 주섬주섬 입는데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니 예전에 넣어놨던 손수건이 발견되었다. 이 손수건은 내가 좋아하는 손수건이다. 색상도 그렇고 패턴도 그렇고 좋은 브랜드의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잘 사용했다. 사용이라 해봤자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쓸까 말까 하지만 말이다. 이 손수건은 한 십 년 전쯤에 알았던 여자친구가 될 뻔한 그녀가 선물을 해준 거다. 그때 선물이라며 건네주면서 했었던 말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별말은 아니었지만 손수건을 선물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도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을 보지는 못했다. 나 또한 그녀를 만났을 때 손수건을 꺼낸 일이 없기 때문에 그 선물은 좀 의외였다.


“요즘 사람들 손수건 안 가지고 다니잖아요.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손수건을 항상 써요. 그래서 백화점 갔다가 아버지 꺼 사는 김에 Rey님 것도 하나 샀어요. 이제부터 손수건 가지고 다녀요. 저는 손수건 가지고 다니는 남자 좋아요.”


원래 항상은 아니지만 가지고 다녔는데 이렇게 얘길 해주고 선물을 받으니 좋았다. 그녀는 나보다 여섯 살이 어렸는데 사회생활도 일찍 시작했고 비서일도하고 그래서 그런지 생각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행동이나 좋아하는 것들이 좀 고전적이라고 해야 하나 당시에 보기 드문 그런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와 친해진 건 회사에서 왕따 비슷한 분위기로 몰려서 회사를 그만둔다고 나와 면담을 하는 와중에 설득하면서 친해졌었다. 아무튼 그녀는 이후로 회사 잘 다니고 결혼도 하고 지금 잘 살고 있다.


집 안방에 서랍장에는 아빠 속옷과 양말, 그리고 손수건이 들어있다. 엄마가 빨래를 하고 난 후에는 서랍장안이 아니고 위에 잘 개서 올려져 있다. 그걸 보면 내가 서랍장에 넣어 놓거나 가지런히 정리해 놓거나 했었다. 아빠는 출근할 때 옷이나 뭐 이런 것들은 혼자 다 챙기면서 항상 손수건은 엄마한테 달라고 했다. 속옷이나 양말은 다 챙기는데 심지어 그 옆에 바로 손수건이 있는데도 말이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몰랐는데 궁금해도 물어보진 않았다. 어른들만이 하는 아니 부부끼리 하는 루틴인가 생각했었다. 지금도 왜 그랬는지 모른다. 그리고 궁금해도 당사자인 아빠는 없기 때문에 알 길이 없다. 아빠는 손수건을 달라고 할 때 딱 한마디를 했다.

“한 까치”

그러면 엄마는 손수건을 가져다줬다. 한 까치라, 까치면 담배를 셀 때 쓰는 말인데 왜 한까치가 손수건이 되었을까. 이것도 궁금했는데 사람마다 이름이 다 다르듯이 그냥 손수건의 이름쯤으로 생각하고 넘어갔었다. 내가 어른이 되어서야 안 사실인데 ‘handkerchief’와 발음이 비슷했다. 그래서 손수건을 일본말로 그렇게 부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빠 유품이랄 게 뭐가 없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건 낡은 지갑, 멈춰버린 손목시계, 반쯤 비어있는 라일락 담배, 그리고 사용했던 손수건이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오랜 기간 아빠와 살지 않았다. 언젠가 집에 들어오지 않기 시작했는데 마치 아빠가 원래 없었던 것 처럼 됐었다. 그렇게 남아 있는 아빠의 소지품들은 저 정도로 비닐팩에 넣어 내 서랍에 가지고 있다. 요즘 생각날 때마다 물건을 버리고 있는데 아빠 손수건을 보고는 버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버렸다. 13년 만에 한 가지를 정리한 것이다. 그리고 반쯤 비어있는 라일락 담배도 그렇게 오랜 기간이 지났는데도 심지어 개봉이 되어 있는 상태인데도 냄새를 맡아보니 담배 냄새가 그대로 났다. 그래서 불을 붙여 한대 피워봤다. 그냥 한번 피워보고 싶었다. 어렸을 때 호기심에 몰래 아빠 담배 하나 빼서 피웠던 기억이 살아났다. 사실 담배뿐 아니라 아빠 지갑에서도 몰래 아주 가끔이었지만 돈을 빼서 과자 사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아마도 아빠는 그걸 알았지만 내게는 한 번도 얘길 하지 않은 것 같다.


저녁에 약속이 있어 샤워하고 입을 옷을 챙겼다. 그리고 양말 넣어 놓는 곳 옆에 있는 손수건도 하나 챙겨놓았다. 내게 남아 있는 손수건은 다섯 장 정도 되는데 이것 보다 더 될 텐데 어딘가 구석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용빈도로 봐서는 손수건이 한 세장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너무 오래되고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드는 걸 골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식적으로 손수건을 챙기고 당분간은 밖에서 핸드타월이나 드라이어를 사용하지 않고 손수건을 써볼작정이다. 왜 그렇게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지만, 손수건이 내게 와서 쓰임새가 없는 물건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많이 실망스러울 테니까 내가 열심히 사용해서 손수건한테 조금이나마 기쁨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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