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먹는 게 나을 것 같아
보리굴비를 좋아한다. 해산물이랑 회도 좋아한다. 고기보다 이런 것들을 더 좋아한다. 사실 작년 초부터 새롭게 시작한 것 중 하나가 ‘비건’이었다.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는데 회사를 그만두고서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환경에 관심도 많고 무엇보다 내가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상태가 아니지만 내가 살다 간 곳이 조금이라도 나 때문에 아이들한테 누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됐다. 관련 책들을 여러 권 읽어보고 생각을 정리했다. 나에게 맞는 일들을 할 수 있도록 그리고 제로웨이스트 관련 된 책도 읽어서 이런 것들은 어떤 개념을 가지고 진행하면 될까를 공부해 보고 나만의 방식을 찾았다. 그런데 정말 비건은 쉽지 않고 제로웨이스트는 더더욱 어렵다. 뭐든 완벽한 게 좋을 수 있지만 라이프스타일로 가지고 가려면 스스로와 타협을 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을 만큼만 진행해야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난 플렉시테리언이 되었다. 에코백은 거의 항상 가지고 다니고 내게서 배출되는 것들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매일 노력한다. 이런 노력들이 쌓여 어떤 결과가 됐으면 좋겠는데 아마 죽기 전에는 좋은 일 했다고 생각하며 눈감을 수 있도록 계속해봐야겠다.
보리굴비 얘기를 들은 건 20대 때 삼촌한테서 들었다. 명절에 외갓집에 갔었는데 얘기하다가 이 얘기가 나왔다. 굴비를 찬물에 밥을 말아서 올려먹는다는 것이었다.
“왜 굳이 찬물에 밥을 말아서 굴비를 올려먹어요?”
“원래 전라도에서 그렇게 먹었대, 여수 쪽인가? 거기서 그렇게 먹기 시작했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그냥 물이 아니라 녹차 물이야”
“녹차요? 신기하네”
“녹차에 밥을 말아서 같이 먹으면 비린내도 덜하고 그래서 그런가 봐, 종로 쪽에 보리굴비 정말 맛있게 하는 곳 있는데 거기 참 맛있더라고”
굴비 같은 생선을 마음껏, 매일매일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어렸을 때 했었다. 초등학교 때였나. 엄마 친구분인데 그 친구분 아들이 나보다 한 살 많은 형이라서 자주 같이 놀았다. 한 번은 형네 집에 놀러 갔는데 식사 시간이었다. 난 밥을 먹고 놀러 간 거라 형이 밥 다 먹길 기다렸는데 나보고 밥 먹으라고 해서 먹고 왔다고 얘길 하고 거실에서 앉아있었다. 무슨 반찬인지 보지는 못했지만 생선냄새가 나서 힐끗 보니 굴비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 굴비를 한 사람당 한 마리씩 먹고 있었다. 젓가락으로 발라먹는 것도 아니고 닭다리 잡듯이 굴비를 잡아서 먹고 있었다. 다시 보니 한 사람당 두 마리씩 먹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집에서는 다섯 식구가 굴비를 먹을 때면 두 마리 내지는 세 마리였는데, 그것도 일 년에 몇 번 인지 한 손으로 꼽을 정도였는데 저렇게 굴비를 먹다니 너무 부러웠다. 그리고 밥 먹고 왔다는 말을 한 것도 후회가 됐다. 밥을 먹고 왔어도 굴비라면 얼마든지 더 먹을 수 있었는데 말이다.
보리굴비를 먹을 기회가 생겼다. 업체 미팅 갔다가 같이 식사를 하는데 한정식집에 갔다. 거기서 처음 맛보게 됐다. 보리굴비정식 이런 건 아니고 일반적인 정식이었는데 보리굴비가 조금 나왔다. 그게 보리굴비인줄 몰랐는데 생선을 다 발라서 내어준 것을 먹다가
“이건 뭐예요? 굴비 같은데 원래 이렇게 발라져서 나오는 건가요?”
“아, 이거 보리굴비야. 보리굴비 못 먹어봤어?”
이때 처음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었다. 나올 때 메뉴판을 다시 보니 보리굴비 정식도 있었다. 거의 20년 전의 일이니 그때 한정식이나 보리굴비 정식 가격은 내가 쉽게 한 끼 식사로 먹을만한 수준이 아니라서 그냥 조금 맛본 것만으로도 됐다고 생각하고 한동안 잊고 지냈다.
회사를 옮기고 점심식사 할만한 곳을 이리저리 다니다가 꼭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았다. 한정식이나 탕종류도 있고 저녁에는 회와 해산물로 코스요리도 있어서 자주가게 됐다. 직원들 밥 사줄 때도 많이 갔었고 업체 관계자들 술자리도 매우 여러 번 했었다. 그런데 그 집에서 보리굴비가 메뉴에 있는지는 한동안 알지 못했는데 다녀간 직원이 보리굴비 정식을 먹었다고 해서 알았다. 직원들은 내가 그런 종류의 음식들을 좋아하는 걸 워낙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업체 관계자와 식사할 일이 있어서 그 집에 갔었는데 담당자가 보리굴비 정식을 시켰다.
“보리굴비 좋아하신다면서요. 얘기 다 들었습니다.”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하하”
그래서 보리굴비를 먹었는데 참 맛있게 먹었다. 그 이후로는 회사를 옮긴게돼서 그 집에 갈 일이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직원들이 알고 있으니 명절 때 보리굴비 세트를 선물로 받은 적이 여러 번 있다. 그리고 작년 추석 때도 받았다. 이렇게 선물을 받으니 먹으려면 어쩔 수 없이 여러 조리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게 여러 방법을 써보다가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으로 정착했다. 물론 굴비자체가 상태가 좋아야 맛있는 건 맞지만 그래도 조리과정도 한몫 톡톡히 하니 나만의 방법을 지키는 편이 낫다.
작년 추석에 받은 보리굴비는 냉동실에 넣어놓고 한동안 잊고 있었다. 바쁘지도 않은데 귀찮기도 하니 그대로 계속 놔뒀다가 엄마 생일날 해주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엄마 생일날 저녁을 해주려고 쌀을 씻고 쌀뜨물 받아놓고 냉동실에 있던 보리굴비 두 마리를 상온에서 해동하려고 꺼내놨다. 그렇게 준비해놓고 엄마한테 전화해서 언제 오냐고 물었더니 이모네 집에서 자고 온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 못한 상태라서 조금이라도 내가 돈 쓰는 게 마음이 쓰였는지 엄마는 당신 생일에 이모네집가는 방법을 선택한 것 같다. 그 마음을 모를 리가 없으니 그냥 알았다고 얘기하고 말았다. 그리고 상온에 내놨던 보리굴비는 다시 냉장실로, 쌀뜨물도 다시 냉장실에 넣어놨다.
엄마가 오니 보리굴비를 하기로 하고 굴비랑 쌀뜨물을 다시 꺼냈다. 쌀뜨물에 담가놔야 하는데 완전히 해동이 됐기 때문에 한 40분 정도만 담가놓으면 된다. 한 시간 이상 담가놓으면 굴비의 맛이 빠져서 좋지 않다고 한다. 그렇게 담가놓은 굴비를 손질한다. 지느러미랑 꼬리는 말끔하게 정리를 해주고 비늘을 벗긴다. 그리고 배를 갈라 내장도 깨끗하게 빼내어 손질한다. 원래는 그냥 조리했었는데 여러 번 해보니까 내장을 빼고 조리를 하는 게 비린맛도 덜 나고 좀 더 깔끔하다. 그렇게 손질한 굴비는 찜기로 들어간다. 찜기 바닥에 굴비가 붙을 수 있으니 나무젓가락을 놓고 그 위에 굴비를 얹는다. 더 맛있게 찌려면 대파나 생강등을 같이 넣어주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도 충분해서 그냥 찜기에 넣었다. 찜기에 넣으면 6분 내지는 7분 정도 쪄낸다. 그 정도 쪄내고 바로 먹어도 되지만 약간 꼬득꼬득하고 고소한 맛을 더 하려면 프라이팬에 굽는 편이 낫다. 쪄낸 굴비를 반으로 갈라도 되고 아니면 그냥 해도 되고 프라이팬에 오일을 조금 두르고 참기름 한 스푼 정도 넣고 굴비를 굽는다. 반을 가르지 않고 그냥 구웠다. 몇 번 뒤집으며 되니까 괜찮다. 굽는 건 뒤집으면서 굴비 상태를 보면 되는데 타지 않게 굽고 난 후 불을 끄고 프라이팬 뚜껑을 덮어 잔열로 조금 놔두는 것도 괜찮다. 그렇게 한 김 식게 놔둔 후 뼈와 살을 잘 발라서 접시에 담으면 되는데 이때 예전에 사놓았던 니트릴장갑이 생각났다. 제로웨이스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이런 건 최대한 사용하지 않으려고 예전에 구입해 놓은 거라 그냥 놔뒀는데 기름기 가득한 굴비를 발라내기에는 이 장갑을 꼭 사용하고 싶었다. 그래서 장갑을 끼고 굴비를 잘 발라냈다. 이쯤 되면 비린내보다는 고소한 냄새가 더 우세해진다. 이렇게 준비해놨으면 이제 녹차를 준비해야 한다. 예전에 선물 받은 스타벅스 녹차 티백이 있어서 그걸로 녹차를 우려낸다. 뜨거운 물에 티백을 넣고 얼마간 지나서 얼음을 넣고 좀 차게 만든다. 그리고 해놓은 밥을 녹차물에 말아서 밥알이 다 떨어지도록 한 후 밥알과 녹차물을 떠서 올린다. 거기에 잘 발라놓은 보리굴비 한 조각을 올려서 먹는다. 녹차의 조금 씁쓸함과 기름진 고소함이 가득한 보리굴비를 같이 씹으니 여름이 온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서 그간 정리하지 못하고 보관만 했었던 스노보드 장비들을 중고장터에 내놨다. 얼른 팔리길 바라는 마음에 아주 저렴하게 올려놔서 한 번에 다 구입한다는 사람이 있어서 오전에 중고거래를 하고 왔다. 청소 잠깐하고 나니 오후 한 시가 됐는데 너무 추운 날씨는 아니라 러닝을 하러 나갔다. 40분 정도 뛰고 들어와서 샤워하니 두시 정도 됐다. 그 시간부터 보리굴비 하려고 준비하고 만들고 나니 오후 네시정도됐다. 일어나서 물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공복시간이 너무 길었던 것 때문일까 아니면 원래 보리굴비는 맛있어서 그런 걸까. 엄마가 오면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시간 맞춰 준비를 해놨는데 내가 너무 배가 고파 그만 미리 먹고 말았다. 굴비는 두 마리를 했는데 발라내고 보니 양이 상당히 적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엄마를 위해 만든 거니 나는 아주 조금만 먹겠다고 네 점 정도 먹었다. 그리고 잘 덮어서 놔두려다가 그만 한 점을 더 먹었다. 그래도 최대한 참았으니 이걸로 됐다고 생각하고 설거지하고 환기시키고 캔들을 두 개 가지고 와서 켰다. 이 일의 마무리는 언제나 향초를 켜는 게 마무리인 것 같다.
음식을 다루는 TV프로그램이나 유튜브 등을 보면 엄마의 손맛이나 할머니가 해줬던 음식이 생각난다는 등의 얘기를 많이 한다. 어렸을 때 먹었던 그 맛이라고 하거나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맛이 없다. 그리고 친할머니도, 외할머니도 내게 음식을 해줬던 기억이 없다. 외할머니한테는 혼났던 기억만 있고, 그래서 맛에 대한 기억, 그리움 이런 것들은 내게 없는 것 중 하나다. 아마도 엄마 요리에 문제가 있나 싶기도 하다. 아니면 내가 그 그리움과 기억을 떠올리려면 더 나이가 들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보리굴비 하면서 든 생각인데 나는 엄마 손맛이 그립지가 않은데 엄마는 내 손맛이 그리운 순간이 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웃기지도 않은 생각을 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