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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y Feb 01. 2024

아끼는 옷

행복한 기억

몸도 마음도 내 생활 자체도 그리고 가지고 있는 물건들도 슬림하게 가고 싶은데 생각대로 잘 되진 않는다. 어떤 계기가 있는 건 아니고 주기적으로 한 번씩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정리를 하곤 하는데 가장 처음에 하는 건 무조건 옷정리다.


회사를 입고 출근하지 못할 만한 옷들이 항상 눈에 걸린다. 그러면 주말에 입어야 하는데 주말에 피곤해서 집에 있으면, 그렇게 얼마간 지나가면 계절이 바뀌어 수년간 못 입는 경우도 있다. 이런 옷들 중에 또 좋아하는 옷이 있어 그것만 입다 보면 영영 옷걸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옷들이 계속 생긴다. 


살이 쪄서 살을 빼면 입을 거라고 놔둔 옷들도 많다. 이제는 살이 제법 빠져서 옷들이 다 맞는다. 그래서 한 번씩 입어봤는데 ‘이제는 이런 옷을 입으면 안 될 것 같은데?’하는 생각이 드는 옷들이 많다.


코트가 도대체 몇 개인지 이렇게 종류가 많은데 몸에 잘 맞는 몇 가지만 입고 나머지는 입질 않는다. 겨울철 옷이니까 옷장만 차지하고 있다.


신발 또한 마찬가지다. 회사 다닐 때는 구두 몇 개만 돌려가면서 신는데 운동화는 왜 이렇게 많은지 또 부츠는 신지도 않는데 왜 샀는지 신발장을 보면 옷장을 볼 때보다 더 한숨이 나온다. 등산화도 몇 개나 되는 건지. 


이렇게 이미 작년 가을에 한 차례 정리를 했었다. 옷이나 신발을 보고 고민을 하진 않고 사용하지 않았거나 깨끗한 건 무조건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했고 필요 없는 건 버렸다. 그렇게 금방 정리를 하고 또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가지고 있는 옷가지들이 상당히 많이 줄어 옷장 한 칸이 비어버렸다. 그런데 더 정리하고 싶었다. 굳이 가지고 있을 필요도 없고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게 보기 싫었다. 그래서 또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정말 아끼며 입을 옷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기부하는 걸로 결심하고 정리했다. 그렇게 총 서른두 벌과 신발은 아홉 개 정도 정리했다.


언제가 봤었던 곤도마리에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를 그대로 실천했다. 박스는 여섯 박스 정도 됐고 마지막에 담았던 옷은 니트로 된 재킷 두 벌인데 상당히 망설였다. 


이걸 구입한 지는 아마도 십 년이 넘은 것 같다. 그때 아웃렛으로 기억하는데 옷을 구입할 생각으로 간 건 아니었는데 이뻐서 구매했던 옷이다. 이 옷에 어떤 향수가 있거나 특히 좋아하는 옷도 아니다. 거의 입지 않아 보관을 잘해둔 탓에 거의 새 옷이라 해도 좋을 정도의 상태였다. 너무 보관상태가 좋아서 망설여졌었는지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내 손목을 잡아당기는 기분이 들었다.


애정이 깃든 물건이라면 버리거나 할 때 그 물건과 그동안 고마웠다고 얘길 해주고 보내야 한다. 그래야 정상적인 이별이 가능하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물건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이 된다. 그런데 왜 니트재킷은 나를 떠나기 싫어했을까. 그렇게 기부할 박스에 넣어 놓고 며칠이 지났다.


꿈을 꾸었다. 꿈에서 나를 부감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고 있는데 십수 년 전의 나였다. 그리고 며칠전에 정리하려고 했던 그 니트 재킷을 입고 있었다. 딱히 뭘 하고 있는 건 아니었는데, 상당히 기분 좋은 얼굴을 하고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그러고는 잠에서 깼다. 그 재킷이 왜 꿈에 나왔는지, 꿈을 꾸면 항상 현재 시점이나 미래 시점인데 왜 오래 전의 내가 나왔는지 모를 일이다. 꿈을 꾸는 일도 거의 없었는데 이러니 기분이 묘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정리해 놨던 박스에서 재킷을 다시 꺼내어 옷장에 걸어뒀다. 날씨가 조금 더 따뜻해질 때 꼭 입을 거라고 다짐하고 잘 보이도록 걸었다. 


요즘 잠들기 전에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데 좋았던 기억은 나지 않고 안 좋았던 기억과 내가 잘못 판단했었던 일들을 다시 진행하면 어떤 식으로 하면 좋을까, 이런 식의 생각만 하다가 잠이 드는데 왜 좋았던 일들은 전혀 떠오르질 않는 걸까 고민해 보니 그 옷을 입었던 시절이 내게는 행복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많은 기억들 속에 그 좋았던 기억이 파묻혀있어 헤집어 꺼내오지 않는 한 보이지 않는 그런 기억이었던 것 같다. 옆으로 쌓을 수 있는 기억의 한계가 넘어 그 위로 층층이 쌓이다 보니 밑에 있던 기억들을 보며 기분 좋을 수 있는 방법 자체가 없어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좋았던 기억들을 꺼내오는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다. 


좋았던 기억을 꺼내보라고 옷이 내게 말을 걸었나 보다. 매일 잠들기 전에 한 가지씩은 즐거웠던 일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하루의 마무리를 잘할 수 있을 때, 그때도 이 옷을 입지 않으면 그때 보내줘야겠다.


아직은 이별할 때가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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