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투어의 꽃, 남부투어의 목적. 포지타노. 그러나 사실 포지타노는 그저 이탈리아 남부에 위치한 작은 해안마을일 뿐이다. 다만 오래전 적들의 침입을 피하기 위해서 절벽에 들어선 알록달록한 집들이 랜드마크가 되어 지금은 관광지로 사랑 받는 도시가 되었다고. 역시 사람이나 도시나 인생은 알 수 없는 건가 보다. 여하튼 이제 포지타노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이탈리아 여행하면 빠지지 않는 코스가 되었는데, 여전히 ‘난 잘 모르겠다~’는 분들이 있다면 비장의 무기. 이제는 올리브 영에서 흔하게 살 수 있는 '레몬 사탕' 그 유명한 레몬사탕의 본 고장 역시, 바로 여기 포지타노다.
다시 여행으로 돌아와서, 우리를 태운 미니버스는 높고 좁은 골목을 지나 작은 정류장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반나절의 여정을 지나 도착한 포지타노는 이미 전 세계에서 온 수많은 관광객으로 가득했다. 이곳에서의 자유시간은 약 한 시간 반. 앞서 장황히 설명한 것에 비해 너무 짧지 않느냐고? It depends on you.
작은 해안마을인 포지타노의 주요 관광 구역은 그렇게 넓지 않다. 우리나라로 치면 부산의 감천 문화 마을정도? 골목골목을 구경하고 기념품을 사고, 바닷가로 와서 레몬 샤베트를 먹기에 한 시간 반은 충분하다. 물론 여유롭게 바다가 보이는 식당에 앉아서 식사를 하거나, 청색 지중해 바다에 몸을 담그거나, 혹은 해가 지고 불빛이 들어온 로맨틱한 포지타노를 보면 더더욱 좋겠지. 나 역시 모녀 여행이 아닌 진짜 신혼여행을 온 사람들에게는 꼭 여유로운 코스를 추천하고 싶다. 아, 다만 포지타노의 숙박비가 만만치 않다는 것은 알아두시길.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난 엄마와 나는 가이드님과 약속한 집합 시간에 맞춰 페리선착장에 도착했다. 바닷가 마을의 또 하나의 장점은 '페리'라는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보통 포지타노에서 로마로 돌아갈 때는 다시 미니버스를 타고 나가지 않고 큰 버스를 탈 수 있는 곳까지 페리를 타고 나간다. 물론 우리 뿐 아니라 대다수의 패키지 투어 관광객들이 페리를 이용하기 때문에 페리 선착장은 매우 복잡하다. 비슷한 시간대에 투어객들이 몰리면 새치기와 눈치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그러나 우리가 누구인가, 빠릿빠릿한 한국인 관광객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선두에서 페리 탑승하기에 성공했다.
그렇게 포지타노에서 떠날 준비를 하는 페리 위, 해는 이제 노란색으로 물들고 엽서에서나 봤을 법한 포지타노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새벽같이 로마에서 출발해 해가 질 무렵 포지타노의 바다 위에 있다니 모든 것이 현실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때,
"아 다음에는 부모님이랑 같이 오고 싶어요."
뒤에서 혼행을 온 여행객들 중 나보다 조금 어려보이는 여자 분의 말이 들려왔다. 그녀의 얼굴에서 몇 년 전의 내가 겹쳐보였다. 그리고 옆에 앉아있는 엄마를 힐끔 바라보자 어쩐지 무척이나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몇 년 전엔 저렇게 생각했는데 정말 엄마랑 같이 있네'
감격스러움인지 격세지감인지 모를 감정들이 노을 덕분에 노란 빛으로 물든 포지타노의 풍경과 함께 머릿속을 어지렵혔다. 그리고 그 때, 가이드님이 나누어준 수신기에서는 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여러분 ~ 괜찮으시다면 수신기를 꼽고 계세요.
페리를 타고 가는 동안 특별히 제가 준비한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해 드릴게요"
이제 제법 내적 친밀감이 생긴 패키지 팀들은 환호를 보내고,
그러는 사이 페리는 포지타노를 떠나기 시작했다.
Time to say goodbye (안녕이라 말해야 할 시간)
Paesi che non ho mai (내가 한번 보았고)
Veduto e vissuto con te (당신과 함께 살았던 나라)
Adesso si li vivro (지금부터 나는 거기서 살렵니다)
Con te partiro (당신과 함께 떠나렵니다)
Su navi per mari (바다를 항해하는 배들을 타고)
Che io lo so (내가 아는)
No no non esistono piu (아니, 아니,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Con te io li vivro (당신과 함께 거기서 살렵니다)
그렇다. 가이드님이 들려 준 첫 번째 노래는 바로, '타임 투 세이 굿바이'라는 노래였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이탈리아 노래라고 생각해보지 못했던 노래. 부끄럽지만 올림픽 폐막식에서나 들었던 노래였는데 처음으로 제대로 들었던 순간이었다.
물론 이탈리아어로 되어 있는 가사 때문에 그 당시 내가 알아들었던 것은 고작 ‘타임 투 세이 굿바이’ 뿐이었으나 포지타노를 떠나는 페리 위 흘러나오던 이 노래는 선율은 너무나도 강렬했다. 이제 와 '왜 였을까?'를 찬찬히 되짚어보니 그 순간 나는 정말로 '마지막'을 느꼈던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이, 이 장소에서의 엄마와 나의 마지막이 되겠구나.
꼭 한 번 함께 오고 싶었던 이곳에서의 '엄마와 나'는 정말 '마지막'이구나.
물론 적들의 침입에 대비해 절벽에 집을 지었다가 세계적인 관광지가 된 포지타노처럼 삶이란 절대 예측하거나 단정 지을 수 없는 것들의 연속이며 당장 내일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엄마와 함께 포지타노 해변에 앉아 있을 수도 있을 거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필연적인 마지막을 예감한다.
하필 또 석양은 져서, 하필 또 ‘타임 투 세이 굿바이’가 흘러나와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옆에 있는 엄마와 노을빛으로 물든 포지타노의 풍경을 보면서 나는 '필연적인 마지막'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꼭 한 번 함께 오고 싶은 곳에 마침내 함께였기 때문에 작별이 더 작별 같이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내기 부끄러운 마음이지만 나는 부모님을 모시고 오고 싶다는 어린 여행객이 조금 부러워졌다. 부모님이 너무 당연했던 그 때의 내가 부러워졌다. 아직도 먼 얘기지만 30대가 되고 난 뒤 종종 부모님이 당연하지 않다는 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나와 당신에게 허락되는 시간이 앞으로 얼만 큼인지 가늠할 수도 없어서 서글퍼질 때가 있다. 얼만 큼을 준다고 해도 턱없이 짧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