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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May 15. 2024

스승의 날 제로섬?

눈물을 닦아준 초대

촘촘한 계획이 있었다. 뜨거운 계획과 두근거리는 계획, 하지만 느글거리는 희뿌연 크림과 가늘게 몸부림치는 떡가락이 속을 채울 때부터 슬슬 불길해지더니 역시 구토 직전까지 갔다. 세상의 계획은 틀어지기 위해 태어나는 거라고 누가 그랬던가.


목걸이 펜던트를 뽑아내 언발란스로 귀에 걸고 거리로 나섰다. 비가 오면 세상이 만만해 보이는지 꼭 한 가지는 삐딱해진다. 비 오는 날 드라이빙은 욕망을 조용히 끌어올린다. 탈출하는 영화로 포스터를 챙겼다. 욕심을 너무 부렸는지 눈이 뜨겁다. 차가운 비바람마저 불길을 돋운다.


스승은 스승답고 싶어 한다. 틈을 허락하지 않는 막막한 대화에 물결대로 떠다닌다. 그래 오늘도 비겁하다. 정작 하고 싶은 말을 못 하다가 더 뜨거워진 눈을 안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두꺼운 추상화를 그리곤 한다. 밖에 비가 오는데 차 안에도 뚝뚝 비가 내린다. 두통까지 나면 통증 풀세트다. 눈, 머리, 마음의 통증.


비겁과 부끄러움과 때 묻은 마음을 차에 두고 내린다. 명랑 쾌활 버전으로 현관을 들어서며 애교 투정에 가식의 순간을 차곡차곡 쌓을 때 톡 하나가 나를 흔든다. 마이너스로 내려가던 그래프를 멈추고 플러스를 쌓는 순간이다.


혹시 저 기억하실는지요?


많은 학생들 중 기억하고 있는 학생다. 내가 하는 모든 강의를 수강했던 학생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연락한 지 8년은 된 거 같다. 외국계 회사에 들어가 힘들 때마다 내 생각하며 잘 버티고 있단다. 반갑다. 스승의 날이기도 하고 드릴 말씀까지 있다 한다.


저 결혼하는데요.


결혼식에 초대한다고. 학교 다닐 때부터 결혼하게 되면 꼭 초대하고 싶었다고 해서 나는 흔쾌히 가겠다 했다. 온라인 청첩장에 내가 더 흥분하고 들떴다. 가족 친지만 모여 제한된 인원으로 하고 축의금은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축의금은 다른 방식으로 나의 애정을 표현하면 된다.




기쁘게 허락해 두고 나는 나를 바라본다. 우울한 일과 기쁜 일이 동시에 일어난 날이니 다시 제로로 돌아간 건가. 하지만 기쁨의 여운이 훨씬 오래가는 중이니 좋은 날이라 부르겠다.


제로섬 따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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