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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Nov 11. 2024

건너 저 편에

 영화, '아무르' by 미카일 하네케 감독  

Amour (사랑, 연민), 2012 & 2024년  


[no 스포일러는 없다] 


누구나 맞게 되는 길, 보이지 않는 건너편은 공포이기도 하고 불안이기도 하고 체념일 수도 있고 평화일 수도 있다. 고요한 차분함으로 수렴할수록 지금은 더 빛나고 그 빛이 이어지는 끝에 저 편이 있을 것이다. 


삶의 과정이라 하면서 남은 사람의 집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Rest in Peace

평화로이 잠드소서


이 평화와 이 잠의 깊은 가치를 존중하는 시대에 사는 것일까. 고뇌와 고통과 원망과 한을 가득 안고 살다가 살아있는 사람들의 눈에서 사라지는 순간 그 가득 통증이었던 것들이 갑자기 평화로운 끝이라도 되는 건가.


자연스럽게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 자신을 존중하며 위엄을 지키며 마무리할 의지, 건너편에 다다를 때까지 밝게 함께 미소 지을 수 있는 시간을 꿈꾼다. 


하지만 돌아가는 길이 막히고, 총명한 생명의 기운이 흐려지는 그 경계에서 우리는 얼마나 손잡고 웃을 수 있는지 생각한다. 


어느 명의는 하루라도 고통에서 벗어나 살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말한다. 살아 통증을 줄일 수 있다면 하루라도 더 밝게 웃고 살기를 원한다면 그 고통을 벗어나는 명약을 들이켜야 할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보려는 의지와 시간보다 더 크게 가치있는 것은 없다. 나는 그들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어떤 때 금세 죽을 것 같은 통증에도 내 삶에 버무려진 사랑과 사람들은 나를 웃게 하고 살게 한다. 그런 힘과 열정이 남아 있는 한 나는 가장 최선의 상태로 세상을 가슴에 담고 사랑하며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를 바란다. 


하지만, 자신을 정리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이 가는 길도 자연스럽게 바라봐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영화, 2014, 2024)'에서 곡기를 끊은 아버지를 원망하는 시간이 서늘했다. 산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까지 안고 가야 하는 길인 건가. 


'룸 넥스트 도어(영화, 2024)'에서 자신의 존엄을 위한 결정에 동행을 원하는 그녀에게 놀랐다. 존엄은 같지만 동행은 다르다. 


'아무르'의 커다란 베개는 그들 둘 다 원했을까. 거부하다가 결국 그가 원하는 대로 꿀꺽 마시는 물 한 모금은 남아있는 사람에 대한 배려였으리라. 그가 그걸 알아차리게 되었으리라. 꽃에 싸인 그녀의 평화를 본다.  


자연스럽게 가는 길에 수많은 장벽을 세우는 시대가 무섭다. 조용히 잠으로 빠지길 원했던 아버지의 온몸에 주렁주렁 달렸던 생명이란 핑계의 튜브들은 나의 공포다. 


어떻게 가야 할까. 

나의 길을 굳건히 한다. 



피아노 치는 안느 로랑 from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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