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가 왕자를 구해도 이상하지 않을 시기에 이런 영화를…?
우리에게 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의 주인공 ‘일레븐(11)’으로 유명한 배우 ‘밀리 바비 브라운’이 최근 영화 <댐즐>로 찾아왔다. 영화 <댐즐>은 ‘멋진 왕자와 결혼을 꿈꿨지만, 배신을 당해 동굴에 갇힌 공주가 오로지 자신의 지혜와 의지로 위기를 헤쳐 나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영화의 제목 ‘댐즐(damsel)’은 처녀, 소녀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밀리 바비 브라운’이 나온 <에놀라 홈즈>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 등 선택한 작품들이 다 취향이었기에 ‘밀리 바비 브라운이 선택한 영화’라는 것만으로 영화를 선택했다. 더군다나 넷플릭스 1위도 하고 있었기에 영화의 줄거리도 모르는 상태로 영화를 보았다. 그렇지만 많은 기대를 했던 탓인지 매우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영화에는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총 3가지 색이 나온다. 성 안팎의 모습, 드레스 등으로 표현한 노란색은 주인공이 속해있지만, 결국 깨고 나올 ‘왕족 사회’를 의미한다. 그리고 빨간색은 ‘위험’, 파란색은 ‘안식처’로 표현하며 꽤 단순한 이분법적인 대립으로 영화를 구성한다. 푸른빛으로 가득 차 있는 안식처가 용이 뿜은 붉은 불로 인해 사라지게 되는 장면을, 파란색에서 극적인 빨간색으로 바뀌는 화면으로 표현한 부분은 꽤 인상적이다. 그렇지만 강한 원색으로 표현하고, 1차원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암시를 넘어서, 의도했다는 것이 느껴져서 단순한 영화에 단순한 연출이라는 이미지만 더욱 강해지게 되었다.
영화에서는 능동적인 여주인공의 모습을 보이려 한다. 능동적인 여주인공을 표현하는 방법의 하나로 불편하기만 한 드레스를 찢는 등 상황을 위해 옷과 장신구들을 활용하면서 상황을 헤쳐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걸리적거리는 모습에서 벗어나 점차 탈출하기에 적합한 모습으로 변해가기에 탈코르셋이라고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동굴에서 탈출하기 위해 왕관을 고리로 활용하여 크리스탈 벽을 오르는 것은 다른 영화에서 흔히 보이지 않는 모습이라 꽤 참신하게 느껴졌고, 머리에 있어야 할 왕관이 팔에 걸려있음에도 이질감이 들지 않고 적재적소에 있는 것 같아 영화가 추구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다만 왕관 외에 옷을 찢고, 머리를 잘라 활용하는 모습 등등은 이미 다른 영화에서 많이 비친 모습이기에 식상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영화는 ‘세계 여성의 날’인 3월 8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고, 영화에 나온 제물로 바쳐진 여성들의 모습은 남자들에게 희생당한 여자를 말한다고 한다. 영화 초반, 흔히 생각하는 뽀샤시하고 얌전한 공주의 모습이 아니라 나무꾼 같은 면모를 보여주면서 영화는 조금은 터프한 공주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그 이미지에서 공주는 벗어나지 못한다.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공주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로 영화는 끝이 나는 것이다.
영화에서 ‘구해줄 왕자님을 기다리지 않는 공주’가 식상해지게 된 지는 꽤 되었다. 이제는 단순히 약간의 플롯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틀을 깨는 주인공의 능동적인 모습이 요구된다. 영화 <에놀라 홈즈>의 경우도 유명한 탐정이자 오빠인 셜록에게 엄마를 찾아달라는 것을 부탁하는 것이 아닌 엄마가 숨겨둔 단서를 찾아 길을 떠나고, 위기에 처한 남자 주인공을 순간적인 충동으로 구하는 등 통통 튀는 주인공의 능동적인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영화 <댐즐>은 주인공의 행동이 영화의 전개를 바꾸는 듯한 느낌이 아니라 전형적인 전개에 갇혀 주인공이 행동하는 것에서 그친다. 물론 전형적인 전개에서 ‘왕자를 기다리지 않는 공주’, ‘용을 치료해 주고 동료가 되는 주인공’ 등 변화하고자 하는 시도는 있었지만, 관객들에게는 이미 식상한 것이 되었고, 표면적인 것에 불과해 큰 임팩트를 주지 못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있다. 여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동성 간의 질투, 열등감, 시기, 적대감과 그에 따른 적대적 행위를 의미하는 관용적 표현이다. 영화에서는 질투, 열등감 등의 감정은 없지만 주인공도 여자이고, 악이라 생각되는 용도 여자, 최종적 악이었던 왕비도 여자이다. 결국 정의도 여자이고, 악도 여자이기에 여성에 대한 사회적 무언가를 깬다는 느낌보다는 단순한 싸움으로만 보인다.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동굴에 갇힌 주인공을 구하러 온 사람들이 전부 남자들이란 것이다. 능동적인 여자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으면서 결국 남자들이 구하러 오는, 또 틀에 갇힌 사고방식을 보여주어 도망치기 위해 노력한 주인공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이런 세세한 디테일들이 영화의 퀄리티를 결정하는데 신경 쓰지 못해 아쉽다.
그리고 동생이 주인공 대신에 용에게 다시 잡히고, 항상 보살핌 받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 아쉬웠다. 물론 약한 동생을 구하는 주인공의 능동성과 자주성, 용기를 보여주기 위해 이런 캐릭터를 설정했다 생각한다. 그렇지만 마지막에 칼을 던져주는 것 외에는 수동적이고 약한 흔한 여자 캐릭터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주인공이 이겨낼 힘과 용기를 가진 것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처럼 보이는 것 같았다. 한 명의 사람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기에, 각자가 힘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능력이 주인공만의 특권으로 느껴져 아쉬웠다.
주인공이 불에 화상을 입고, 구르기도 하는 등 많은 고난과 역경을 거친 상황임에도 입술이 립글로즈를 바른 것처럼 반질반질했다. 얼굴에는 재 같은 것들이 덕지덕지 묻어 있음에도 입술에 화장을 했다는 것이 인식이 되자 순간적으로 몰입이 확 깨졌다.
매력적인 배우와 원작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비치는 여성의 모습에 대한 많은 변화가 있었기에 과거에 머물러 있어 시대에 뒤떨어진 ‘양산형 판타지 영화’가 되어 아쉽다. 영화가 좋은 의미를 가지고 제작했기에 더욱 아쉬움은 배가 되는 것 같다. 빠르게 기대치가 바뀌는 시대에서, 영화는 시대를 담고 있기에 더욱 예민하고, 빠르게 반응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영화 <댐즐>은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정말 아쉬운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