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민주 Feb 09. 2024

모든 만약은 아프다, 하지만 달콤하다.

영화-안녕 내일 또 만나(So Long, See You Tomorrow)

<안녕 내일 또 만나>에서의 평행우주로 볼 수 있는 ‘만약’은 아프다, 하지만 달콤하다. 동준은 평행우주를 현실의 후회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는 고등학생 시절의 동준이 강현이 탄 경찰차를 잡아 마지막 대화를 하는 경우의 수가 나온다. 마지막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이지 강현과 헤어진다는 결과는 바뀌지 않지만, 동준의 마음은 조금 편안해진다. 동준에게 평행우주는 아픈 것이지만 달콤하기에 멈추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동준은 평행우주에서 나와 강현과의 단 하나의 미래로 나아간다. 평행우주를 무조건 긍정적인 것이 아닌 동준이 후회에 갇혀서 도피하고자 하는 수단이기에 결국 빠져나온다는 것을 통해 독특한 시점으로 평행우주를 보고 있다는 점이 영화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평행우주를 다루는 다른 영화들은 주로 가능성에 대한 무궁무진한 미래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며 같은 세계는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렇지만 <안녕 내일 또 만나>는 다르다. 3개의 세계에서 누나가 암에 걸린다는 사실은 똑같고, “지금 많이 사랑하고, 많이 사랑받으며 살았으면 좋겠다”라 말해주는 동준을 완전히 이해해 주는 사람도 매번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다른 세계의 같은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감독의 인터뷰 중 “서로 다른 세계, 세 편으로 보이긴 하지만, 이야기들이 결국 하나의 거대한 운명 같은 흐름으로 가는 것이고….”에서 말하듯이 평행우주도 결국은 하나의 흐름이기의 모든 가능성이 하나로 수렴하는 다른 시사점도 보여준다.  

모든 평행우주가 행복한 것은 아니다

<안녕 내일 또 만나>에 나오는 단 한 번의 후회는 영화의 진가를 더욱 빛나게 해준다. 영화에 나오는 후회는 동준의 고등학교 시절 강현이 타고 있는 경찰차를 자신의 망설임으로 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후회 하나 말고는 영화에는 어떤 후회도 생기지 않는다. 영화에서 동준은 3번의 평행우주를 경험하지만 결국 강현을 만난다는 결과는 같다. 답은 처음부터 나와 있었기에 동준의 상황은 멀리서 돌아왔다 생각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3번의 평행우주를 경험한 동준에게 후회라는 감정은 생기지 않는다. 동준은 3번의 평행우주를 겪으면서 강현이 쓴 책 ‘모든 만약은 아프다’처럼 만일이라는 것은 아프기에 더 이상 후회를 하기보다 앞으로 나아가는 결론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후회란 것은 인간의 삶에서 필수 불가결한 것이기에 관객들은 동준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만약’을 다시금 생각하며 자신을 투영한다. 동준의 ‘만약’과 함께 후회도 끝난다는 것으로 영화가 더 후련하게 관객들에게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안녕 내일 또 만나>는 단편적이지 않은 삶의 모습을 보여주며 관객들과 함께 삶이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주인공 동준은 동성애자고 영화도 동성애자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영화에서는 동준이 강현에 대한 감정 즉 연인 간의 사랑인 에로스를 넘어서 끈끈히 서로를 챙기는 누나와 동준의 관계, 아들 민호를 통해 생기는 부성애의 스토르게 외에도 필리아, 아카페와 같은 단순하지 않은 복잡하고 입체적인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며 복잡한 인간관계와 삶을 더욱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더군다나 새엄마는 동준에게 부정적인 존재로 여겨짐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미장센 속 새엄마의 모습은 불청객인 영지와 동준에게 음식을 먹으라며 덜어주는 다정한 모습이 드러나고, 매번 반찬을 보내주고, 동준을 챙기는 등 핏줄인 아버지보다 더욱 인간 됨됨이가 바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영화는 단편적인 시점으로만 보는 우리의 잣대에 대한 의문을 제시한다. 영화는 삶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단편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더군다나 평행우주에 대한 내용을 더해 관객들과 함께 삶이란 무엇인지 알아가고자 한다.     

뒷모습만 봐도 행복한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안녕 내일 또 만나>는 비연속적이지만 연속적인 인식의 흐름을 편집으로 경험하게 해준다. 첫 번째 세계에서 동준은 자신의 학생이 계속 본인과 연락해 왔던 사람이란 것을 알고 장난을 쳤다고 생각하며 크게 화를 낸다. 학생이 그게 아니라면서 동준의 어깨를 잡지만 동준은 어깨를 잡은 손을 쳐낸다. 이때 손을 쳐냄과 동시에 장면은 혼자서 울고 있는 동준으로 바뀐다. 그리고 같은 세계에서 누나가 수술에 들어가고 우는 동준에게 조카 영지가 위로를 해주는 장면이 있다. 이때 동준이 울다 영지의 무릎에 있는 책을 발견하게 되는데 방금까지 위로해 주던 영지가 바로 다음 장면에서는 졸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독자들에게 단 몇초 동안으로 표현되지만 동준은 영지가 잠이 들기까지의 시간 동안 운 것이다. 현실은 학생의 손을 뿌리치고 난 후 달려 나가거나, 영지가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기 시작하는 등 연속적인 사건들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영화에서는 불연속적 편집을 통해 시간과 상황을 제거함으로써 주변의 흐름을 잊게 해준다. 이로써 순간 감정에 몰입하여 주변을 볼 겨를이 없는 인식의 상태 그 자체를 관객에게 경험하게 해준다.     


<안녕 내일 또 만나>에서는 동준만이 평행우주를 경험하지 않는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초반에 형과 관련한 에피소드들은 실제 제가 경험했던 부분들이고 그 이후 얘기들 어느 정도는 다 픽션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실제로 감독은 동준과 비슷하게 아파트 위층에 살던 자신의 우상이었던 형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 기억이 있다. 그 형이 경찰차를 타고 가는 것도 감독이 직접 보았다. 이런 식으로 영화 속에 감독의 경험인 논픽션과 픽션을 혼재시키며 감독은 자신만의 평행우주를 영화 속에서 만들어 냈다. 감독은 자신의 ‘만약’이라는 것을 영화로 만들면서 자신만의 평행우주를 경험한 것이다.      

영화도 하나의 '만약에'라는 것으로 시작되기에 하나의 평행우주라 보아도 무방한 것이 아닌가

<안녕 내일 또 만나>는 양가적 감정을 느끼게 한다. 영화는 의문점이 남아있지만, 의문점에 대해 잠재적인 답이 이미 나와 있는 상태로 끝이 난다. 관객들은 어떻게 3개의 평행우주를 경험했는지, 평행우주의 각각 다른 동준은 같은 기억을 가진 지 등 많은 의문점을 느낀다. 그렇지만 동준의 말 “형이 우주니까 이제 만나서 알 수 있겠지”라는 것으로 대부분의 의문점이 해결된다. 명확한 답이 있지만 명확히 보여주지는 않는 그런 상태로 영화는 끝이 나는 것이다. 주인공의 주된 문제점은 해결되었으나 아직 우리의 의문점은 확실히 해결되지 못 한 체로 영화는 끝나기에 관객들은 답답하지만, 개운한 양가적인 감정을 느낀다.     


관객들은 해결되지 못한 의문점들과 두 사람의 미래에 대해서 각자 생각하고 해석할 것이다. 각자의 생각들이 모여 또 다른 평행우주를 만들고, 영화가 끝난 후에는 셀 수 없는 평행우주가 생겨날 것이다. 관객들은 두 사람의 미래에 대해 ‘만약’이란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평행 우주들을 만들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어떤 ‘만약’이 있어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향하기에 두 사람의 미래는 두 사람만의 해피엔딩에 결국 도달할 것이다. 결국 영화는 관객들에게 평행우주를 통해 열린 결말이지만 닫힌 결말을 주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웡카>에 대한 개인적으로 아쉬운 후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