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shall will pass
며칠 전 아내가 동영상을 보내왔다.
영상은 정확히 1년 전에 촬영된 것으로(첫째가 한창 질투하고 동생을 깨물고 때렸던 시기) 등장인물은 심술 난 첫째와, 큰 소리로 우는 둘째 그리고 엄마였다.
행동 분석을 위한 롱테이크 촬영물로, 수없이 돌려봤기에 모든 장면이 아직 생생하다. 스토리도 간단하다. 첫 재는 동생을 때리고, 둘째는 울고, 엄마는 막고, 결국 다 같이 우는 내용이다.
그런데 1년 만에 다시 보니 예전에 못 보던 게 보였다. 그게 내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당시에 몰랐지만 새롭게 깨달은 세가지가 있다.
첫째, 심하게 우는 둘째.
내 기억으로는 둘째는 늘 피해자였다. 언니에게 맞고 또 맞았으니까. 그런데 다시 돌려보니 둘째도 만만치 않았다. 일단 울어도 너무 심하게 운다. 볼륨, 데시벨 모든 게 무시무시하다. 차 안에서 울면 부모인 나조차도 못참겠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첫째가 참 힘들었겠다 싶었다. 또 조그만 툭 건드려도 터져버리니 어찌 얄밉지 않을까. 그럼에도 첫째를 가해자로만 대했던 게 마음에 걸렸다.
둘째, 첫째가 카트로 달려간 이유
영상에서 엄마가 못 때리게 막으니 이상한 행동들을 한다. 엄마 다리를 붙잡고 늘어지거나, 뒤로 엎어져 우는 것 등. 당시에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게 있는데 그게 장난감 카트였다. 때리는 게 저지당하자 첫째는 울면서 장난감 카트를 끌고 온다. 자세히 돌려보니 카트 안에는 인형이 있었다. 정확히 동생을 만난 후부터 집착하기 시작한 토끼인형이. 불안감과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애착인형을 찾았던 거다. 순간 첫째도 최선을 다해 발버둥 치고 있었구나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팠다.
셋째, 극심한 스트레스의 향연
영상에서 세 가지 종류의 스트레스가 서로 얽혀 있다. 먼저 지속적인 폭력과 위협에 대한 둘째의 스트레스. 제대로 기지도 못하는데 언니가 와서 위협을 가하니 할 수 있는 게 우는 것밖에 없다. 다음으로는 동생 때문에 세상이 흔들려버린 첫째의 배신감. 엄마의 사랑을 뺏아가 버린 미운 동생과 그녀를 옹호하는 엄마 (엄하게 혼내는 아빠는 덤) 때문에 극도로 예민해진다. 마지막으로 이 중간에 낀 엄마의 괴로움. 훗날 들어보니 이 모든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몰랐던 게 가장 힘들었다 한다. 셋다 당시 내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던 것 같다. 미안해진다.
아내와 함께 영상을 돌려보면서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언제 저랬었지 싶기도 하고, 아내에게 고맙기도 하고, 어려운 시기를 지나 잘 성장한 두 아이가 대견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슬픈 감정이 들었다.
다시 겪기 싫을 만큼 괴로운 나날들이었지만 이젠 과거가 됐다는 게 슬펐다.
그 당시 제일 듣기 싫었던 위로가 '그때는 다 그래.."였다. 어떻게 우리가 겪는 이 특이하고 괴랄한 사건들을 겨우 '그때'라는 한 단어로 치부할 수가 있나 라는 반발심만 생겼었다. 근데 1년이 지난 지금 다시 돌아보니 그 순간을 '그때'로 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그 힘든 순간들은 지나갔고, 아이들은 커버렸다. 그때의 감정도 잊힌 과거에 파묻혔다. 이쯤 되면 그 순간들이 그립기 시작한다. 그때의 아이들은 다시 볼 수 없으니까.
연년생 부모가 비슷한 일로 조언을 구하면 난 내가 들었던 말 이상을 해줄 게 없다. '그때는 그렇다.. 그리고 이 순간들은 지나간다'라고.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한가 보다. 오늘도 두 아이는 절대 이해 못 할 행동으로 분노를 유발한다. 그래도 꼭 안아줘야겠다. 오늘이 지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사랑스러운 존재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