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멈춤, 리프레쉬
두 딸을 처가댁에 맡기고 이틀간 일본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일본의 후쿠오카. 맛집과 카페를 다니며 오롯이 여유로움을 즐기기는게 이번 여행의 컨셉이었다. 항공권과 호텔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알아보지 않았다. 어떤 책임과 의무감 없이 즉흥적인 충동 여행을 하며 느낀점 세 가지를 기록한다.
향후 10년간 다시없을 기회였기에 최선을 다하자는 게 부부간의 다짐이었다. 사실 우리 부부는 여행성향이 정반대다. 아내는 뉴욕 거리를 가로세로로 전부 걸어 다녀야 적성이 풀리고, 나는 몰디브에서 낮잠을 푹 자고 일어나는 상쾌함에 여행의 가치를 느낀다. 그러나 이번 여행만큼은 대동단결 일심동체였다. 잠을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불태우리라. 사실 후쿠오카 시내는 별 볼 게 없었다(난 살면서 내 돈 주고 후쿠오카여행을 갈 거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기저귀와 유모차 없이 떠난, 오롯이 어른들만의 여행이니까. 어딘들 어떤가. 이런 마음가짐 때문인지 후쿠오카 시내는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 같았고, 도시 내 공원은 뉴욕 센트럴 파크에 온 기분이었다. 가을느낌 물씬 풍기는 붉노랑 단풍 따라 걷다가 지치면 전기자전거를 탔다. 자전거에 올라 속도감 있게 보는 건물과 사람들을 신기해하며 시내 구석구석을 쏘다녔다. 그렇게 우리는 쉬질않고 돌아다녀 터질듯한 허벅지와 퉁퉁 부은 종아리 통증으로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다. 만보기를 켜보니 3만보를 걸었더라. 너무 힘든 첫날 일정으로 피 같은 둘째 날 오전은 통쨰로 날려버렸다. 그래도 행복했다. 최선을 다했으니까.
이번 여행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느꼈다. 커피를 마시면 원두 원산지의 날씨가 느껴지고, 자전거로 가로수길을 지나면 갑자기 음악이 들리며 영화주인공이 된 것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들이 마구 쏟아졌다. 이 모든 건 애들이 없어서다. 육아대디에게 외출은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사실 나가서 뭘 하기보다 나가는 과정(먹이기, 씻기기, 옷 입히기, 운전 등)을 통해 시간 때우기가 주목적이다(목적을 가지고 놀러 가는 경우는 예외) 애들 데리고 나가서 먹는 커피와 삼겹살이 무슨 맛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생존을 위한 섭취에 맛이 왠 말인가. 그러나 이번 여행은 커피한잔의 여유와 그늑한 음악향기를 즐기기 위해 떠났다. 모든 경험이 새롭고 재밌을 수 밖에. 회전초밥집 실수 에피소드, 오호리 공원 옆 빵집에서의 아침식사, 해 질 녘 호숫가 노을, 이자카야에서 먹은 레몬족발 등 유명관광지에 비하면 특출 날 게 없는데 모든게 풍성하게 느껴졌다.
또 한 가지 달랐던 건 안 보이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 두 아이들을 데리고 공항수속 밟는 부모의 뒷모습, 손주들을 바라보는 할아버지 얼굴, 연로한 부모님을 부축해서 가는 딸. 비록 국적이 다르고 사연은 모르지만 그들을 보며 뭔가 느껴지는 바이브가 있었다. 음식, 건물, 풍경보다 그 임팩트가 강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전혀 인식조차 못했던 것들이다. 새로운 세계가 열린 거다. 아내와 둘이서 갔던 몰디브, 파리, 치앙마이보다 후쿠오카가 더 좋았던 이유다. 그렇다면 이번 여행 중 언제가 가장 좋았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주저 없이 떼쓰는 두 돌 된 아기를 들쳐업고 뛰는 아빠 얼굴을 봤을 때라고 말하겠다. 그때 느꼈던 강렬함과 짜릿함은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을 처음 봤을때 만큼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여행 중 아이들 생각이 별로 나진 않았다. 너무 재밌게 노느라 바빴으니까. 그러나 부부간 대화가 깊어지면 어김없이 아이들이 튀어나왔다. 자전거를 타는 찰나의 순간에 애들 얼굴이 아른거렸다. 한 번은 호숫가에 앉아 아내와 아이들 사진을 쭉 봤었다. 매일 볼 때는 몰랐는데 사진으로 보니 지금과는 너무 많이 바뀌어있었다. 처음 조리원에서 집으로 데려올 때 안았던 느낌, 간혹 보여줬던 배넷웃음, 조막만 한 손과 발가락, 뒤집기도 못해 아등바등거렸던 두 다리, 무슨 생각하나 궁금했던 100일 된 아기의 무표정 등 사진을 보는데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 거다. 이랬던 적이 있었다고? 그때 그 아이와는 영영 헤어졌다는 생각에 슬픈 마음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들도 곧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해지겠지. 첫째의 조잘거림과 생떼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더 잘 받아주고 감사해야지. 둘째의 괴성과 숱 없는 뒤통수도 곧 기억도 안 날 테니 더 사랑해 주고 관심을 줘야지라고 다짐했다. 떨어져 있어 보니 육아가 더 기대되고 기다려졌다. 정말 희귀한 경험이라며 서로 뿌듯해했다. 그리고 돌아간 첫날 선물이 찐 핑크가 아니라고 생떼 부리는 첫째와 도착하자마자 소리치고 징징거리는 둘째의 콜라보에 이성을 잃은 건 비밀 아닌 비밀이다.
PS. 후쿠오카 팁 3가지
1. 오호리공원을 가라(공원뿐만 아니라 근처 시내거리도 상당히 이쁜 편이다, 특히 근처 빵집들 대추천)
2. 전기 자전거를 활용하라(생각보다 편리하고 가격대비 만족도가 높다)
3. 현지인이 줄선집에 구글맵 평점 4.0 이상이면 고민말고 들어가라(그때 그때 튀겨주는 야채튀김, 구수한 라멘집 등 실패한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