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향한 젠슨 황의 '깜짝 선물'과 그 시사점
엔비디아의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이 한국을 찾았다. 표면적으로는 202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 특별 연설을 위한 방문이었지만, 그의 진짜 목적은 훨씬 더 원대했다. 대한민국의 탄탄한 제조업 기반과 첨단 기술 역량에 엔비디아의 AI 인프라를 결합해, 글로벌 AI 생태계의 핵심 축을 구축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한국 국민들에게 뜻밖의 선물을 안겼다. 10월 31일, 이재명 대통령과의 접견 및 APEC CEO 서밋을 통해 황 CEO는 한국 정부와 삼성전자, SK, 현대차그룹, 네이버 등 주요 기업에 최신 GPU 26만 장 이상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출시된 '블랙웰'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14조 원 규모다. 이재명 대통령의 말처럼, 이는 "젠슨 황이 대한민국의 인공지능 관련 투자를 시작했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황 CEO는 한국을 "소프트웨어와 제조 역량, AI 기술을 함께 갖춘 나라"로 평가했다. 특히 한국의 주력 산업인 제조업이 물리법칙을 이해하는 '피지컬 AI(Physical AI)'의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 세계적인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면서 제조업의 성장을 이끌 잠재력을 높이 산 것이다.
이번 발표에서 눈여겨볼 점은 엔비디아가 국내 주요 기업들과 개별 사업에 특화된 'AI 팩토리(AI Factory)' 구축에 나선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GPU를 제공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칩·시스템·소프트웨어·모델 구조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AI 인프라 구축을 의미한다.
삼성전자는 GPU 5만 장을 활용한 반도체 AI 팩토리를 설립해 생산 속도와 수율을 높일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차, 로보틱스 모델 훈련 및 피지컬 AI 분야에서 엔비디아와 30억 달러 규모의 공동 투자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SK 및 네이버와의 협력 역시 AI 공장 및 GPU 인프라 확대를 통한 경쟁력 강화가 핵심이다.
황 CEO가 삼성, SK 등을 "치맥 형제들"이라 부르며 "엔비디아의 성장을 뒷받침할 핵심 파트너"라고 치켜세운 대목은 인상적이다. 이는 이들 기업의 뛰어난 기술력과 규모가 엔비디아의 장기적 성장에 필수적임을 보여준다. 특히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의 핵심 파트너로 SK하이닉스와 함께 삼성전자를 꼽은 것은, 한국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대목이다.
이번 엔비디아와의 대규모 협력은 한국이 'AI 글로벌 강국'을 넘어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AI 허브 국가'로 자리매김할 절호의 기회다. 황 CEO는 인프라 구축 이후 스타트업, 카이스트 같은 연구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역동적인 AI 생태계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한국이 'AI 주권 국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해외 기업의 AI 운영까지 유치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다.
결국 젠슨 황의 '깜짝 선물'은 한국의 AI 역량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현실적인 투자인 동시에, 한국의 잠재력에 대한 깊은 신뢰를 담고 있다. 이제 한국은 이 기회를 발판 삼아 피지컬 AI 시대의 제조업 혁신과 노동력 문제 해결을 선도하며, 글로벌 AI 생태계의 중심축으로 우뚝 서야 할 때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의 유기적인 협력 체계를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 당장의 GPU 확보를 넘어, GPU가 효율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개방형 AI 모델 생태계를 조성하고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데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엔비디아가 언급한 것처럼, 연구 중심 대학 및 스타트업과의 협력을 확대해 기술 혁신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 동시에 피지컬 AI의 핵심인 로보틱스 및 자율 시스템 분야에 대한 제도적 지원과 규제 완화도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한국은 이 대규모 투자를 마중물 삼아 AI 반도체 및 관련 소프트웨어 분야의 기술 독립성을 확보하려는 장기적 비전을 명확히 해야 한다. 단지 엔비디아의 하드웨어를 '활용하는 국가'에 머물지 않고, AI 시대의 기술 주권을 확보하는 '선도 국가'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이 14조 원 규모 협력의 최종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 정보통신신문 링크 : 한국을 향한 젠슨 황의 '깜짝 선물'과 그 시사점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정보통신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