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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드니맘 May 21. 2023

반갑다. 여름아!


5월 중순.

(일교차가 크긴 하지만)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가리킨다. 한 쪽 손에는 봄의 끝자락을, 또 다른 손으로는 여름의 시작을 붙잡고 있는 지금. 마음이 조급해진다.


여름에서 가을, 가을에서 겨울, 겨울에서 봄. 그리고 봄에서 여름...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내 마음을 조급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옷! 방 하나를 옷에게 내어주고 있건만, 그것으로는 부족하여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은 따로 창고에 모셔두고 있다. 결국 매 시즌마다 계절이 지난 옷은 창고에 집어넣고, 돌아온 계절을 위해 옷을 꺼내는 노동을 해야 한다는 것...


사실 남편은 옷이 많은 편이라 아니라 이렇게까지 수고스럽게 옷을 옮길 필요가 없다. 아이도 옷이 많아 봤자 얼마나 많겠는가. 결국 이 노동은 다 내 옷 덕분이다. 하지만 내 옷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정말이지 이상하다. 매년, 매 시즌마다 고민하는 부분이지만 아직 명확한 원인을 찾지 못했다. 어쩌면 내 기억력의 문제일까? 사기 전에는 절대 잊히지 않지만, 사고 나면 바로 잊어버리는...


이미지 출처 : unsplash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이 찾아왔다. 외면하고 또 외면하고 있었지만 하원하는 아이의 이마에, 퇴근하는 남편이 관자놀이에 맺힌 땀방울이 더는 외면하지 못하도록 나를 몰아세운다. 이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 미뤄 둔 옷 정리를 당장 시작해야 하는 시기! 주말 중 하루를 오롯이 옷 정리를 위해 비워두었다.


옷 정리에는 나름의 순서가 있다.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남편 옷 정리!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옷을 빼고, 어떤 옷을 넣을지 생각과 동시에 마무리할 수 있을 정도다. 정리함 하나를 꺼내서 옷걸이에 걸면 끝! 두 번째는 아이 옷! 아이 옷은 이번 시즌에 입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함께 창고에 넣어두었기 때문에, 현실과의 차이를 점검해야 한다. 대충 눈으로 훑어보아도 작아 보이는 옷은 휙휙 던져버리지만, 어쩐지 머뭇거리게 되는 옷을 만나면 아이를 호출해야 한다. "딸내미!!" 큰 소리로 부르면 신나는 일을 기대하며 총알같이 달려오지만, 곧 산더미 같은 옷을 마주하고는 당황한다. 사실 1~2년 전만 해도 사이즈 점검에 비협조적인 딸이었지만, 이제 연차가 쌓이니 패션쇼에 오른 모델처럼 빠른 속도로 입고 벗으며 사이즈 점검을 해 준다. 그런데 이런... 낭패다. 다 작다.


옷 정리의 대미는 언제나 내 옷이다. 시작할 땐 금방 끝날 것 같은데, 막상 꺼내보면 옷이 산더미처럼 쌓이는 마법이 일어난다. 그리고 나는 그 산더미 앞에서 민요처럼 구수하게 신세 한탄을 시작한다. "아, 이제 이건 작아서 못 입겠네.", "아, 이것도 작겠네.", "와! 내가 이걸 입었다고?" 남들은 기억도 하지 못하는 나의 영광스러운 '라떼 시절'을 떠올리며 지금의 내 뱃살을 되돌아본다. 사실 되돌아볼 것까지도 없다. 그냥 고개만 숙이면 친근하게 존재감을 뽐내고 있으니까. 아...이런... 신세 한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낭패다. 다... 작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


오전을 통째로 남편과 아이 옷 정리에, 오후를 통째로 내 옷 정리에 쏟아부었더니 어떤 것도 할 힘이 없다. 그래도 싹 바뀐 옷방을 보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입가에 미소가 올라온다. 이 미소는 옷장 정리를 끝낸 자의 기쁨인지, 쇼핑할 기회를 잡은 자의 기쁨인지는 모를 일이다.


이제 한 쪽 손으로 붙잡고 있던 봄에게 잘 가라고 인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뒤돌아서서 여름에게 외친다.


"반갑다. 여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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