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은 why가 아니라 what이다

말 한마디가 누군가를 살릴 수도, 깊이 베일 수도 있다

by 꿈달

관리자가 물었다.

“무릎이 많이 아파? 왜 목요일마다 물리치료 받는 거야?”

“물리치료를 꾸준히 받으라고 해서요.”

“수술을 받았다며.”

“네. 그런데 수술이 잘못돼서요.”

“수술 잘못될 게~~” 말끝을 흐리며 가버렸다.


남은 건 허공뿐이었다.

이건 조퇴하지 말라는 건지, 정말 아프냐고 걱정되어서 묻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다음 주 목요일에는 그냥 가족모임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나가야겠다 싶었다.


공감은 왜(why)가 아니다.

“왜 그렇게 했어?”라는 질문에는 따짐이 묻어난다.

공감은 무엇(what)이다.

“지금 어떤 상태예요?”

“무엇이 불편하세요?”

이렇게 묻는 것, 그대로 들어주는 것, 그것이 공감이다.


공감은 거창한 기술이 아니다.

다만 상대의 경험을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그게 왜 그리 어려운 걸까.


그래서 공감교육이 필요하다.

관리자도, 직원도, 어른도 함부로 말한다.

특히 아이들이 무심코 던진 말이 누군가에게는 깊은 상처가 되기도 한다.

공감을 배우지 못하면, 말은 쉽게 흉기가 된다.


공감은 배워야 한다.

그리고 연습해야 한다.

서로의 삶을 조금 덜 아프게 하기 위해서.


말은 글과 같다.

글이 칼보다 무서울 수 있듯, 말도 누군가를 깊이 베어버릴 수 있다.

그러니 말 한마디에도 공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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