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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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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퐁당 Jun 17. 2023

며느리??


 

  명절 범한 가정, 저녁을 먹고 과일까지 깎아 놓은 며느리는 본인은 과일을 먹지 않고 설거지를 하고 있다. 그런 며느리에게 시어머니가 말한다.

시어머니 : 와서 과일 먹고 하지?

며느리 : (퉁명스러운 말투로) 아니에요 입병이 나서 안 먹어도 돼요.

시어머니 : 아이고 힘들어서 입병이 났나 보다.

며느리 : (뒤돌아 보지 않은 채) 치우는 게 맘이 편해서 치우는 거예요. 집에서 살림만 하는 여자가 힘들긴 뭐가 힘들겠어요.

시어머니 : 몸이 안 좋아서 그렇겠지.


살림하는 여자들이 보통 하는 말이다. 살짝 비꼬며 한 말이지만, 비꼰듯한 걸 꼬집어 말하는 사람은 없다. 살림만 하는 여자가 힘들긴 뭐가 힘드냐니, 애까지 낳고 살림도 해 난 죽을 맛이고, 특히 40대에 둘씩이나 낳은 나는 아이를 낳은 것만으로도 힘들어죽겠는데 자신을 비하하듯, 비꼬는 듯, 말하는 것에,  나에게 한 말이 아님에도 같은 여자로서 듣는 순간 기분이 나빴다.  이 며느리는 항상 퉁명스러운 말투이고 시댁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어울리지 못한다기보다는 싫어서 함께 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시집와서 소위 시월드라는 곳에서 여러 가지 사건이 있었을 테고, 남편과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을 테지. 그래도 그렇지, 내가 결혼하고 5년, 변함은 없고 더 심할 때도 있었다. 처음엔 별 감정 없이 좀 무뚝뚝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이 반복되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궁금해졌다. 이런 며느리를 ‘사정이 있겠지’ ‘원래 성향이 그런가부지’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이 여자의 행동에 ‘시월드에 문제이지 무슨 잘못이 있겠어’라고 넘어갈 수 있을까? 시댁을 두둔하는 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보통 뚱한 며느리들의 일반적인 태도가  이렇다.


시월드에선 말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이 하나둘 생기고 다들 알지만 묵인하는 일들도 생겨나는 걸 알았다.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 데로 모든 걸 말하고 살겠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난 느끼는 대로 말해야겠다. 아니 말하고 싶다. 어떻게 느끼는 대로 말할 수 있냐는 말은 맞는 이면서 틀린 말이다. 사람이니까 느끼는 대로 말하고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 짐승들도 각각의 소통방법이 있다. 인간은 언어를 한다. 서로 느낀 점을 솔직하게 말하고 의견을 나누어야 좀 더 발전되는 거라 생각한다. 본인이 말 못 하는 사정을 남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다만, 타인에 대한 배려 없이 자신의 욕구충족만을 위한 무례함이 내포된... 타인이 자신의 감정쓰레기통인 듯 쏟아내는 듯한 솔직함은 피해야 하는 게 맞고, 타인에 대한 배려의 부재가 아닌, 상황을 똑바로 바라보고 그 상황에서 솔직하게 느끼는 대로 말하는 것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5년 전 들어온 둘째 며느리는 이 집에서 퉁명스러운 며느리를 만났다.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르지만 첫째 며느리의 시댁에서의 행동에 부자연스럽고 불편함을 느낀다. 아무도 그것을 지적하는 사람은 없다.
기본적으로 나는 결혼에 대한 생각이 좀 남다르다. 예를 들면, 장모님이 사위에게 설거지를 시키지 않는데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자연스럽게 설거지를 시키는 것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다. ‘옛날부터 그랬으니까’ ‘시집은 원래 그래’ ‘남자가 무슨 설거지를’이라는 의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었고 여성들의 역할도 많이 바뀌었다.
한 가족이 서로 함께 먹은 것을 설거지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며느리가 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을 며느리가 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여자만 해야지 라는 인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친정에서 친정엄마에게 ‘사위도 시켜'라고 하면, 친정엄마 또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듯 바라본다. 시어머니가 시키거나 시댁 가면 당연히 하는 거고 사위에게는  ’ 사위를 왜 시키냐 ‘라는 거다. 나의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무조건 시키거나 하진 않지만, 며느리가 하는 것을 자연스러워하고 아들이 나서서 설거지를 하면 ‘놔둬라 내가 할 테니’라고 한다.  며느리를 사랑하지 않는 마음은 알겠는데 그래도 제발 티 내지 마라. 그래도 둘째 며느리는 그런 소소한 사건들이 생겼지만 뚱해지지 않았다. ‘아들이 할 때만 도와주시는 거예요?’라고 애교 섞어 말해본다. 둘째 며느리가 뚱해지지 않는 데는 아직 이런 일련의 사건이 쌓이지 않아서 일수도 있고, 남편과의 관계가 좋아서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남편과의 관계가 별로 좋지 못한 첫째 며느리는, 그러니 이해해야 하는 걸까? 안쓰럽게만 바라봐야 하는 것일까?
뚱한 큰며느리의 행동은 주위를 물들인다.

시월드에 오고 남편이 형수님이라 부른 형의 부인에게 형님이라고 불러야 한다. 그러나 많이 만날 일도 없었고 부를 일도 없었기에 별생각이 없던 게 사실이고 형님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조폭도 아니고 웬 형님’이라는 생각은 있었던 거 같다. 그래서 일부러 부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딱히 부를 일이 없어 그냥 지나온 것 같은데... 어느 날 친척 중 한 명이 남편에게 ‘너 와이프 왜 형수님에게 형님이라고 안 해?’라고 물었다고 한다. '글쎄 안 했나'라고 대답했다고 하며, 나에게 말해주었다. 나도 글쎄 안 했나? 생각했는데 ‘형님이라고 해야지’라는 말에 난 일부러 안 해야지 생각한 적이 없는데, 일부러 안 한 것처럼, 그 사람은 스스로 결론짓고 부정적으로 생각해 버리는구나 생각했다. 크게 동요하지 않고 그다음 만날 때 말하는 첫마디에 형님이라고 붙였고, 문자를 보낼 때 보통 ‘안녕하세요 저 누구예요’ 하던 것을 ‘형님 저예요’로 시작을 했다. 그냥 아 그런 옛날스러운 별거 아닌 것을 스스로 생각하며 그게 존중받는 걸로 착각하는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결혼하고 시댁에 자주 갔다. 근처에 사는 형님댁에도 들려야지 라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했고 딸만 셋인 형님에게 여자아이들이니 쿠키나 귀여운 것을 사가지고 가고 싶었다. 두어 번 사다 주니 사 오지 말라고 문자가 왔다. 부담스럽다는 것이 이유였다. 1,2만 원 이하의 쿠키들이 과연 부담스러울 거 까지 있는 걸까?  이후로 사가지고 가는 것을 멈췄다. 어디갈때 꼭 뭘 들고 가야 하는 게 나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보니 시댁에도 갈 때마다 이것저것 사가지고 갔다. 어머니가 이런 거 안 먹어 보셨을 거 생각하며 새로운 것을 생각해 냈다. 그런데 사가지고 간 음식 등 물건에 대한 불평을 시어머니는 여러 번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사실 엄마도 소소한 불평들은 있어왔는데,  시어머니가 하느것과 좀 다르게 느껴지는거같다> 그런 것들이 쌓였고, 사가지고 가는 것에 망설임이 생기기 시작했다. 난 정말 기분 좋게 사는 건데 불쾌했다. 그렇다고 내가 퉁명스러워지진 않았지만 시월드에 대한 감정에 약간씩 흠이 생기는 것 같았다. 이런 건가? 그동안 봐온 며느리들이 처음엔 순수한 마음이었다가, 시월드의 여러 사람들과 남편의 태도로 인해 퉁명스러워지는 걸까? 생각이 들었다. 아직 나는 퉁명스러워지진 않았고, 성격상 그럴거같지는 않다.

이제 결혼한 지 5년 처음과 마음이 달라진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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