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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글 Feb 05. 2024

모른다고 하면 왜 안 되나요?

새해가 되고, 새로운 사수와 함께 일하게 되었다. 원래도 친했던 분이어서 괜히 일하다 사이가 틀어지진 않을지 긴장하면서 열심히 준비해 회의에 들어갔다.




"그런데 OO이 뭔지 알아요?"




"어..? 어...."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다. 꼼꼼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물어보시는 질문에 '아 저기 왜 체크 못했지.'라는 생각이 들며 당황해 말을 얼버무렸다.


그때 사수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본인은 잘 모르는 부분이었다면서 회의 끝나고 알아볼 테니, 너도 알아라고 말했다.


사수의 입에서 모른다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기에 굉장히 신선했다.





얼추 두 자리의 경력을 향해 가고 있는 나는 이전 회사에서 거의 대선배나 다름없었다. 경력직이 줄줄이 나가 어린 친구들로만 구성되어 있었고, 얼떨결에 꽤 높은 연차로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날은 후배 세 명과 팀장님이 참석한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내가 기획안을 발표하는 자리였고, 발표가 끝나자 후배 한 명이 물었다.




"A 선배님, 그런데 이 언제부터 이렇게 바뀐 것이에요?"




"어, 그때는 제가 입사하기 전이라서요. 제가 알아보고 알려줄게요!"




화기애애하게 회의를 마치고 와서 팀장님이 따부르셨다. 별생각 없이 다시 회의실로 들어갔다.



"A야, 아까 거기에서 그렇게 대답하면 어떡해."




"헉 제가 실수한 부분이 있었나요?"




"그런 건 아니고. 이제 밑으로 후배들이 계속 들어올 텐데. 모른다고 하면 안 되지."




"아하. 그런데 아까 그 부분은 정말 제가 모르는 부분이었어가지고요. 괜히 틀리게 알려주면 곤란한 일이라도 생길까 봐 싶어서요."




"그렇긴 하지. 그래도 그럴 땐 무엇이든 다 솔직하게 티 내는 것이 아니라 얼추 얼버무릴 줄도 알아야 해. 뭐, 대략적인 대답을 해 주고, 지금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으니 찾아보고 알려준다는 식으로 해도 되고."




"네에. 미처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이제 선배 연차가 되었으니, 무엇이든 솔직하게 표현하기보다 조금 포장하는 법도 배워야 해. 알았지? 후배들이 만만하게 보면 어떡해."




그때 이후로 무엇인가 모르는 것이 있어도 솔직하게 모르는 티를 내지는 않았다. 성격이 성격인지라 팀장님이 말한 곧이곧대로 실행하지는 못했지만, 이따가 알려준다며 아는 척을 한 뒤 모르는 부분을 찾아보고 알려주곤 했었다.





전 팀장님의 말이 무조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로는 모르는 것이 약점이 될 수도 있고, 정말로 나를 만만하게 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직접 당해본(?) 결과는 조금 달랐다. 사수가 모른다고 말했다고 해서 회의 내가 그분을 만만하게 본다거나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수에게 더 신뢰가 생겼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표현한다는 것은 나에게 말해주고, 알려주는 것은 확실하다는 뜻이니 말이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이렇게나 믿음을 줄 수 있는 일인 줄은 몰랐다. 회사 생활에 정답이 어디 있겠냐만, 아무래도 모르는 걸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만큼이나 믿음직한 사람도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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