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모 꿈을 꾸었다. 꿈속 이모는 백발이 된 채 "너 이러면 이모가 진짜 서운해."라는 말을 반복했다. 내가 기억하는 모습과 달리 많이 늙은 이모를 보며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모가 어디 아픈 걸까, 이모 안색을 살피다가 잠에서 깼다. 아침 여덟 시였다.
사실 그리 이른 시간은 아니지만, 주말이면 꼭 늦잠을 자는 나를 생각하면 거의 미라클모닝 급이었다. 평소 같으면 다시 잠에 들었겠지만, 오늘 아침엔 어쩐지 다시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어릴 때 예체능 쪽으로 진학 준비를 하며 3년 가까이 이모네에서 자랐다. 엄마아빠는 시골이었던 우리 집보다 대도시였던 이모네가 레슨 받기 더 좋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모네에는 세 살 터울의 오빠, 여섯 살 터울의 언니가 있었다. 언니는 전형적인 모범생이었고, 오빠는 맨날 게임을 하는데도 성적은 잘 나오는 신기한 사람이었다.
언니와 큰 관심도 없던 지오디 노래 테이프를 침대에 누워 몇 번이고 들었고, 밤마다 함께 라디오를 들었다. 언니가 공부하는 수학을 전공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언니 남자친구 이야기를 들으며 잠에 들기도 했다.
오빠와는 정말 친남매처럼 지냈다. 그때의 오빠는 나를 쥐방울이라고 불렀고 나는 그 애칭을 싫어했다. 오빠가 쥐방울이라 부르면 차마 오빠에게 대들진 못하고 부들부들 떨며 오빠의 게임을 방해하는 형태로 복수하곤 했다. 오빠와 허구한 날 싸우다 보니 오빠가 나를 싫어하나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치만 오빠는 늘 친구들에게 나를 친척동생이 아닌 내 동생으로 소개했고, 학교에 내는 가족 관계에도 누나 1명, 여동생 1명으로 써서 전화가 오기도 했었다. 이모 말로는 내가 본가로 다시 가던 날 학원에서 돌아온 오빠가 텅 빈 내 방을 보고 펑펑 울었다고 했다.
이모는 나를 정말 막내딸처럼 대했다. 내가 반장이 된 학기에는 우리 반에 피자를 돌리고, 소풍날엔 엄청난 도시락을 싸주었다. 매일 아침 눈도 못 뜨는 내 입에 수프를 넣어 주고, 레슨 갈 때마다 선생님과 먹으라며 간식 도시락을 만들어 주었다. 손재주가 좋았던 이모는 언니가 입었던 옷을 수선해 내가 입을 수 있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아마도 내가 사춘기가 없었던 건 엄마보다도 이모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어린 마음에 동생들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했던 엄마의 사랑을 이모에게서 느꼈는지 첫째에서 막내가 된 나는 평생 부릴 애교를 저 기간에 다 부렸다. 한참 동안은 엄마보다 이모에게 더 살갑게 굴어 엄마가 서운해하기도 했었다. 어버이날에는 엄마, 아빠, 이모, 이모부 몫으로 네 송이의 카네이션을 준비했고, 형제관계를 말할 때면 동생 둘이라고 말하면서도 언니오빠를 떠올렸다. 지금도 첫째 같다, 막내 같다를 함께 듣는 이유도 아마 저때의 영향인 것 같다.
이렇게나 돈독했던 이모네 가족이었는데, 아빠 장례식을 기점으로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었다. 아빠의 장례식 형태를 놓고 이모네 식구들과 친가 쪽 식구들 사이에 거의 뭐 종교 전쟁이 일어났다. 아직 동생들이 장례식장에 오기도 전이었고 나는 바닥에 앉아 아빠의 영정 사진을 보면서 점점 커지는 어른들의 목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저게 뭔 의미가 있나, 아빠가 보면 어처구니없겠다, 지금 저게 중요한가, 엄마 슬퍼하는 건 안 보이시나.'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분명 어른들이 싸우고 있었는데 눈을 감았다 뜨니 갑자기 내가 응급실에 누워 있었다. 엄마는 상복을 입은 채 내 손을 잡고 미안하다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아 어리둥절했다. 엄마 말로는 내가 제발 그만하시라고 말하면서 일어나다 갑자기 픽 쓰러졌다고 했다. 엄마는 쓰러진 나를 끌어안고 혼비백산했고, 오빠가 나를 업고 바로 옆 응급실로 달려왔다고 한다. 의도치 않게 내가 기절한 덕분에 어른들의 싸움은 중단되었고, 검사 결과 딱히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반나절만에 다시 장례식장으로 돌아왔다.
어른들의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이날 이후로 외가 쪽 식구들과 교류가 뜸해졌고 명절에도 잘 가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종교에 치를 떨며 엄마 몰래 개종을 감행했다.
법정 스님의 책을 읽다가 <시절 인연>이라는 글이 너무 좋아 다이어리에 필사를 해 두었던 적이 있었다.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시기가 있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나게 될 인연은 만나게 되어 있고, 애를 써도 만나지 못할 인연은 만나지 못한다."
저 때는 헤어진 남자친구와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해 한참 생각이 많을 때였다. 나는 아직 정리가 안 됐는데 왜 일방적으로 이 관계가 끊어지는지, 내가 노력하면 이 관계를 바꿀 수 있을지, 이 힘든 시기가 지나긴 하는 것인지 궁금했고 모든 것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남자친구로 인한 번뇌였지만, 저 구절은 인간관계로 힘들 때마다 큰 힘이 되어주었다. 모든 인연이 오고 가는 때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졌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그 과정에서 열심히 노력했으면 그것으로 된 것이니 자책하지 않아도 됨을 배웠다. 내가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관계를 조금이나마 어른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주었고, 타인과의 관계보다 나에게 더 집중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 되었다.
'시절 인연'은 가족에게도 적용이 되는 말일까. 아마 다른 인연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은 아닐지라도 큰 맥락은 얼추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내가 마음 한편으로 미뤄두었던 이모와의 관계를 다시 떠올렸다는 자체가 인연이 오는 시기가 된 것이 아닐까. 이전까지는 이모를 떠올리며 관계를 봉합하려 억지로 애를 썼다면, 이제 드디어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 시기가 다가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