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와 3박 5일로 방콕을 다녀왔다.B와 나는 엄청난 무계획형이다. 나름의 계획은 짜지만 그날그날의 기분이나 몸상태에 따라 계획을 휙휙 변경한다.
우리도 나름의 계획은 짠다. 잘 바뀔 뿐.
3박 5일이라는 짧은 일정임에도 엄청나게 널널하다. 사실 식당들을 빼면 하루에 한 곳 가는 셈이고, 심지어 유명한 왓 아룬 사원도 가지 않았다.
우리는 유적지를 관광하는 것보다 그 나라의 음식을 먹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 체력이 좋지 않아 이곳저곳 다니는 것을 힘들어한다.
그래서 우린 여행 계획 전 꼭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번에 B는 마사지와 수영, 나는 아이콘시암의 전통의상&화장 체험, 짜뚜짝 주말 시장이관심사였다. 그래서 일정표를 보면 우리가 하고 싶은 것들을 넣었고, 둘 다 중요시하는 식당은 꽤나 정성껏 찾았다. 우리가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여행 방식인 셈이다.
호텔 수영장. 여유롭고 좋아서 3일 내내 갔었다.
짜뚜짝 시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사람도 많고 물건도 많다.
시장에서 우연히 찾은 맛집_똠양꿍, 파인애플 볶음밥, 팟타이, 코코넛 주스이다. 팟타이가 가장 맛있었고, 코코넛 주스는..... (후략)
반쏨땀_쏨땀, 항정살 구이, 치킨으로 기억한다. 아닐 수도(?) 한식과 유사한 맛이라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탄잉_새우튀김, 팟타이, 망고밥이다. 왕비님의 동생의 아드님이 만드신 식당이랬는데 고급지고 맛있었다. 팟타이가 조금 특이한 느낌이었다. 망고와 밥이 생각보다 잘 어울렸다.
쏨분씨푸드_뿌빳퐁커리와 망고밥이다. 뿌빳퐁커리는 정말 충격적으로 맛있었지만, 계속 먹으니 김치가 필요했다.
랍 우본_옥수수 쏨땀, 항정살구이, 치킨 반마리이다. 모닝글로리는 너무 당연해 사진도 찍지 않았다.
아이콘시암 지하의 쑥시암은 야시장을 실내로 옮긴 느낌이었다. 사람, 물건, 음식 모두 많았다.
제일 기대했던 태국 의상&화장 체험이다. 쑥시암 내에 있었는데 정말 너무 재밌었다.
여행을 다닐수록 나의 취향을 알게 된다. 나는 고급진 느낌보다는 현지 느낌이 나는 것을 더 좋아한다.
툭툭이는 여행지의 공기와 분위기를 맘껏 볼 수 있어 좋았다. 단 매연은 어쩔 수 없다.
툭툭이에서 본 풍경. 아무렇게나 찍어도 느껴지는 이국적인 풍경이 좋았다.
그 나라를 경험해 보고 싶어 일부러라도 지하철을 꼭 이용한다.
관광객보다는 현지 주민이 더 많았던 랍우본
현지 마그넷과 책, 여행 노트. 우리는 이렇게 세 가지로 여행을 기억한다.
우리 집 문에 방콕 마그넷이 추가되었다.
방콕 가기 전 공항에서 산 책이다. 낯선 곳에서 여유롭게 책을 읽는 시간도 좋고, 다녀와서 책을 보면 여행지에서의 기억이 떠올라 좋다.
짜뚜짝 시장에서 산 노트. 들고다니면서 서로 틈틈이 적었다. 음식은 어땠고, 지금 기분은 어떻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등등. 나중에 보면 정제되지 않은 생각들이 생생히 떠오른다.
노트를 가만히 보니 우리가 유난히 "~할걸"을 많이 쓰고 있었다. 입국심사 줄 왼쪽으로 설 걸, 짜뚜짝에서 선물들 살걸, 그랩 부를걸, 코끼리 반바지 살걸, 건망고 맛있는데 더 살걸.
할걸, 할걸, 할걸, 걸, 걸, 걸, 껄, 껄. 무의식의 흐름으로 나는 우리의 여행을 "껄껄 여행"이라고 명명했다. 이렇게 이름 붙이고 나자 저런 말을 뱉을 때 웃음이 났다.
사실 자칫 잘못하면 서로를 탓하게 될 수도 있었다. "거봐, 이제 없지? 아까 그거 사쟀잖아."라는 남 탓으로 충분히 갈 수 있는 상황들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서로 "껄껄 여행이라 그래 껄껄"이라고 말하자 어쩐지 즐거운 기분까지 들게 되었다.
그 결과여행은 굉장히 행복했다. 돌아오는 길에 B는 껄껄 여행이라며 웃어넘기고 짜증 내지 않아 줘서 고맙다고 말해 주기도 했다.
여행은 늘 낯섦을 동반한다. 그렇기에 찾아보고, 준비해도 변수는 존재한다. 뭐 맛집이라고 생각한 식당이 맛이 없을 수도 있고, 웨이팅이 길 수도 있고, 내가 생각한 동선이 효율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럴 때 하기 쉬운 것이 남 탓 혹은 내 탓이다. 탓하기 시작하는 순간 불쾌하고 부정적인 기분이 든다. 즐거우려고 시작한 여행이 부정으로 물드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하지만 말의 힘은 사뭇 대단하다. 껄껄 여행이라고 말하는 순간 기분이 좋아지고 방금까지의 사안이 별거 아니어진다. 웃어넘긴다는 표현이 실행되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웃어넘기지 못하더라도 여행지에서만큼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은 웃어넘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 현재 여행을 즐기는 나에게도, 미래에 여행을 추억할 나에게도 좋은 기억을 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