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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글 May 09. 2024

시간이 지나면 정말 해결되는 건가요

딸만 셋인 우리 집은 항상 시끌시끌하다. 터울이 꽤 나지만 동생들과의 단톡방도 역시나 늘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인지 둘째 동생의 반응이 좀 심상치 않았다. 무슨 이야길 하건 굉장히 시니컬하기도 했다가 또 어느 날은 굉장히 우울해하기도 했다. 한평생 같이 살아와서 그런가. 동생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남자친구랑 헤어진 건가.


별거 아니겠거니, 가벼운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뭐 해."



"언니? 나 지금 커피 사고 들어가. 왜?"




"너 무슨 일 있어? 요새 감정 기복 무슨 일이야."




"......"


가만히 있던 동생은 갑자기 아기처럼 뿌엥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언니 나 공부 엄청 열심히 했는데 왜 취업이 안되지? 나 또 떨어졌어!! 거긴 엄청 가고 싶었는데. 나 너무 우울해."




동생은 임상병리사 국가고시를 높은 성적으로 합격했지만, 마땅한 취업 자리를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해하고 있었다. 별말 안 하길래 괜찮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나름 한다고 하는데 왜 안되는지 모르겠다는 동생의 말에 마음이 짠해졌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을 바꿀 수 없을 때 사람은 무기력해진다. 열심히 준비했지만 취업이 되지 않을 때나, 내 마음을 아무리 말해도 상대는 나를 보지 않거나, 돈을 아무리 벌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거나, 아무리 그리워해도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거나.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이런 무기력함은 곧 우울이 되어 나를 지배한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우울을 마주한다. 우울에 마냥 잠식당하기도 하고, 나보고 어쩌라는 건가 신을 탓하기도 하고, 갖은 노력을 쏟기도 한다.


나름의 방법으로 우울을 버티고 견디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굉장히 뻔한 말이지만 정말 그렇다. 


달리 생각하면 이런 우울은 후회 없이 에너지를 쏟은 후에 내뱉는 거친 호흡과도 같다. 그렇기에 우울을 극복한 나는 꽤 멋진 사람이 된다.

그래서 나는 우울이나 불안을 느끼는 이들을 존경하고 응원다. 그것이 무엇이든 노력하고  온 에너지를 쏟았음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생과 전화하며 특별한 위로의 말을 전하진 않았다. 그리고 사실 할 수도 없었다. 그냥 다 지나간다는 말을 해주었다. 네가 열심히 노력하면 잘될 거라고, 너무 상심하지 말라고, 지나갈 거라고. 물론 동생이 잘 들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상황이 무조건 나아진다는 추상적인 뜻은 아니었다. 다만 시간은 정말 약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말 진리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시간이 지나 저절로 해결된 것이 아니라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된 미래의 내가 해결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하는 내 동생이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노력했으면 한다. 그리고 지금의 힘듦이 동생의 삶을 지켜줄 원동력이 되리라 믿었음 한다. 지금 겪고 있는 힘듦을 더 나아진 미래의 동생이 멋지게 해결할 모습이 벌써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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