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자취를 감춘 듯, 시리도록 아프다. 가을은 아픔을 견뎌야만 꽃을 피울 힘을 갖게 될 거라 말하는 안내자다. 나에게 봄은 아득히 멀다. 영원히 오지 않았으면, 또 왔으면 하는 그런 존재다. 다시 한 해가 시작된다는 건, 365일만큼의 슬픔과 기쁨이 또 존재할 거라는 것. 그중 난 슬픔에 집중할 뿐이라는 것.
무표정인 날이 많을 거고 때론 울상 짓는 날이 점쳐질게 분명하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직시하되 포기하고 싶지 않다. 25가 되면 나도 쉬운 걸 덥석 잡을 수 있을까. 돌잡이 아이가 별 고민 없이 물건을 잡는 것처럼 나도 그럴 수 있을까. 난 아직 복잡한 감정에 시름할 뿐이다. (현재 나는 25고 이 글을 썼던 2017년의 나에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려줘야 할 듯싶다.)
어렵다. 어려운데 선택만 어려웠으면 좋겠다.
지금은 버티는 그 무언가가 존재하지만 한 해가 끝나면 와르르 무너질 것 같다. 이 길이 아닌 데 가야 하는 것과 다른 길을 찾아 도전하는 것. 어느 쪽이 쉬울까. 종료 후 시작이 예견된 일이 과연 무엇을 얻게 해 줄지 고민된다. 고속도로를 쌩쌩 달리진 못해도 내가 달리는 도로에 '공사 중'이란 팻말은 없었으면 한다.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해야 조금은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까?
새해 초면 각자 무엇을 하고 싶은지 버킷리스트를 적어보자던 친구가 생각난다. 매해 리스트 목록은 한결같았고 이루기 위해 시도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누구나 다 해서 도전하기가 겁난다. '누구나'에 속하게 될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