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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니 Jan 12. 2019

혼자, 말

'우리'를 쓸 때마다 어색한 기분이 든다. 한 번도 다른 사람을 나와 같다고 생각해본 적 없기 때문일까? 나 이외의 사람들과 하나로 묶기가 주저된다. 그들과 나 사이 강 하나가 지나는 듯해서 '하나'라고 말할 수 없었다. 


어딜 가든 '혼자' 있다. 도서관에 가서도, 커피를 마셔도, 일을 할 때도, 놀러 갈 때도 나와 묶을 사람이 없다. 내가 만들지 않는다. '처음'이란 단어로 시작을 해버리면 낯가림이 심한 나는 다가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젠, 말을 걸기 조차 섞기 조차 어려워졌다. 


햇빛이 뜨겁게 내리쬐던 8월의 한 자락, 관심 있던 차(茶) 수업을 들었다. 10일 간 진행된 수업에서 나는 신기하게도 다른 누군가와 말을 섞지 않았다. 조용히 몇 단어를 내뱉었을 뿐, 손을 들어 의견을 피력하거나 하다못해 차를 마시고 어떤 맛이 나는지 내 느낌조차 말하지 못했다. 진도가 거의 다 나갔을 때, 조심스레 입을 뗐는데 놀란 선생님은 "말하는 거 처음 봐요."라고 말하셨다.


같은 달, 우연히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사람의 심리를 다룬 책을 읽었다. 책에선 말로 상처 받은 사람들은 함부로 말을 떼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어떤 말들에 상처를 입었던가 곰곰이 생각해봤다. 




친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어려운 이야기를 나를 예쁘게 봐주고 관심을 가져주던 사람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던 적이 있다. 그 사람은 내 손을 잡고 같이 아파해주었고, 나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지만 속이 후련했다. 막힌 심장이 드디어 맑은 피를 쏟아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일은 나의 발목을 잡았고, 약점이 되어 그 사람에게 휘둘리는 빌미를 제공했다. 그 사람은 나를 도와준다는 핑계로 강요에 가까운 부탁을 해댔고, 결국 참지 못한 난 불같이 화를 냈다. 난 당신을 믿었는데 이런 식으로 나를 이용하기 위해 그동안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냐고.


내가 말수가 줄어든 건 이때부터였다. 어쩌면 '우리'란 말로 묶지 나를 않았던 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무의식의 가슴 아픈 노력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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