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달 Oct 08. 2023

내가 뭘 할 수 있을까요?

내가 뭘 할 수 있을까요

https://brunch.co.kr/@27beb38fb0834d7/118

[결석]에서 계속



3층, 4층짜리 빌라들로 가득한 동네, 평일 대낮에도 열린 창문 밖으로 부부 싸움하는 소리가 온 골목에 퍼지는 동네. 한낮에 슈퍼마켓에서 소주를 사서 마시고는 길에서 비틀거리는 사람을 가끔 마주치는 곳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우리 학교 각 반에 기초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이 20% 내외. 방과 후 사설학원 수업을 듣는 학생이 한 반 5명 이내 정도입니다.      


작년에는 3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우리 반 여자아이 하나가 졸업앨범비를 차일피일 미루고 내지 않고 있었지요. 어느 날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는데, 졸업앨범비 5만 원을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 아이는 저보다도 더 좋은 휴대폰을 사용하고, 화장품을 사고, 고가의 물건들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담임교사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에서 생겼을까? 용기였을까? 아무에게라도 별도의 도움, 별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면, 최대한 이용할 수 있다. 뭐 그런 마음이었을까.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졸업식에 더욱 확실해졌지만요. 그 친구 어머니는 졸업식에 누가 봐도 비싼 듯한 밍크코트를 걸치고 왔고, 바로 어제 네일숍에서 신상네일을 붙인 것 같은 손가락으로 최신 휴대폰을 누르고 있었습니다.      


서윤이네 집은 찾기가 수월했습니다. 빌라들로 가득한 구역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생뚱맞게 3개 동짜리 20층 있었어요. 서윤이는 당연히 기초수급자나 차상위는 아닙니다. 이 동네에서는 그래도 번듯한 집에서 살고 있으니까요. 102동 14층 3호. 띵동. 약간의 정적이 흐르고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누구세요?”

“아, 네. 저, 서윤이 담임입니다.”

“네?!”     


당황한 듯한 목소리와 함께 서둘러 문이 열렸습니다.      


“아, 선생님. 어떻게 오셨어요?”


“네, 그냥. 서윤이 얼굴 좀 보고 싶어서요. 많이 아픈가 걱정도 되고.”     


서윤이 어머니는 어깨까지 오는 컬진 머리칼을 서둘러 동여매고 서윤이 방문 손잡이를 돌립니다.       


“네, 아휴. 이쪽으로 오세요. 지금 방에 있는데. 서윤아! 선생님 오셨다.”     


나는 서윤이 어머니의 말이 끝나기 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재빠르게 방안을 스캔합니다. 정리 정돈이 잘 되어 있는 여중생의 방, 핑크빛이 감도는 침구. 오른쪽으로 책상과 스탠드가 보였습니다. 책상 위에는 영어평가문제집이 펼쳐져 있었고, 지우개 가루도 약간 보입니다. 창문은 꽁꽁 닫혀있었고, 공기는 상쾌하지 않았습니다.      


“야, 서윤. 뭐야. 침대 위에서 편안하게 쉬고 있었니?”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 말을 걸어봅니다. 서윤이는 황급히 일어나 침대 위에 앉고 발을 침대 밑으로 내립니다. 얼굴에 홍조를 띤 것이 영락없는 사춘기 소녀입니다.      


“선생님. 헤헤. 저 감시하려고 집까지 오신 거예요?”     


말은 저리해도 왠지 반가워하는 표정입니다.      


“그래. 야. 무슨 부반장이 이래? 마음이 조금 힘들다고 막 학교 빠져도 되는 거야? 나도 마음이 조금 슬픈 날에는 출근하지 말고 그냥 집에서 뒹굴뒹굴해야겠다.”     

“아휴. 선생님은 안 되죠. 어른이잖아요.”

“아니, 뭐 어른이면 힘들어도 무조건 참아야 해?”

“그게 아니라. 음. 선생님이 안 오시면 가르치는 애들이 다 걱정도 하고, 음. 그러니까. 진도도 못 나가고 차질이 생기잖아요. 그러니까. 선생님들은 조금 더 참아야죠.”     


재잘재잘 말은 잘하는 서윤이. 이렇게 얘기하니 우울함이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      


“뭐야. 서윤이 너도 부반장이라 역할이 커. 애들한테 영향을 많이 준다고. 뭐냐, 왜 우울한지, 뭐가 힘든지 선생님한테 얘기해 주면 어떨까?”     


서윤이는 잠시 침묵하더니, 결심한 듯 나를 똑바로 보고 조용하지만, 귓전에 울리도록 정확한 발음으로 말합니다.      


“선생님, 죄송해요. 제가 주기적으로 우울한 것 같아요. 엄마도 어쩌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저도 그러고 싶진 않은데, 주체할 수가 없어요. 아마도 아빠 때문인 것 같아요.”     

“아빠? 아빠가 왜? 말해봐. 선생님이 그냥 알고만 있을게.”     


서윤이는 아까보다 조금 더 침묵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말을 이었습니다.      


“선생님, 사실, 저희 아빠는 폭력을 써요. 엄마를 때리고. 저도 언젠가 때릴 것 같아요. 아빠는 오빠가 운동해서 오빠 뒷바라지를 하는데, 가끔 오빠를 때리는 것 같아요. 지금 경기도에 있어요. 엄마는 저를 데리고 집을 나왔어요. 아직 이혼을 못 하는 건 저랑 오빠가 결혼을 안 해서래요. 저도 엄마, 아빠 인생을 이해하고 싶은데, 오빠도 걱정되고, 아빠가 여기까지 찾아올까 봐 마음이 불안해요. 그런 생각이 들면 제가 너무 우울해져서 저의 우울한 모습을 애들이 보는 게 싫고. 저는 그냥 당당하고 싶어서. 애들 앞에서 초라해지기는 너무 싫어요.”     

이 말을 하면서 서윤이는 울고 있었습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난감했고, 그냥 ‘그렇구나’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지요. 이 소녀가 안고 있는 마음의 짐이 너무 커서 이 아이를 병들게 했구나. 너를 너무나도 버겁게 짓눌렀구나. 어른인 내가, 선생님인 내가, 여기에서 무슨 물을 한들, 너에게 위로가 될까, 해결책이 될까. 아무것도 해줄 수 없고, 도움을 줄 수도 없는 가정사.      


“그래, 그랬구나. 그런데, 서윤아. 그래도 선생님은 네가 보고 싶기도 하고, 애들도 너를 궁금해하잖아. 공부도 잘하고, 평소에 밝은 네가, 건강하게 보이는 네가, 갑자기 며칠씩 안 오는 건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일단, 쌤은 간다. 내일 아침에 문자 줘라. 학교 가고 있다고, 그런 문자 기다릴게.”     

그렇게 말하고 서윤이 어머니와 어색한 인사를 하고 나도 나의 집으로 숨었습니다.      


계속 -

매거진의 이전글 결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