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는 단독주택 단지입니다.
아름답고 개성 있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앞집은 유럽풍의 목재 주택이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옆집은 넓은 잔디밭과 아름드리나무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보입니다.
유난히 더웠던 지난여름,
열린 창문으로 들려오는 개구리울음은 더 이상 자연의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밤새 “개굴개굴” 이어지는 소리는 더위를 잊게 하기보다는 불면의 밤을 길게 만들었습니다.
잠이 들 만하면 다시 시작되는 울음소리에, 이웃들도 모두 밤잠을 설쳤다고 합니다.
연못 근처라면 어울릴 법한 개구리가,
어쩌다 우리 단독주택단지로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이곳의 평온한 밤과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며칠 동안 숙면하지 못한 탓에 하루하루 피로가 쌓여 갔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개구리울음이 사라졌습니다.
동네는 다시 고요함을 되찾았습니다.
며칠 후, 텃밭에 나가 고추와 방울토마토를 수확하고
밭에 물을 주려고 큰 대야를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안에는 수백 마리의 아주 작은 올챙이들이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개구리가 대야 속에 알을 낳고, 그것이 부화한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생명을 보호해야 할까, 아니면 이웃의 평화를 지켜야 할까?’
수 백 마리의 개구리가 자라면 더 크게 밤마다 울음소리가 이어질 게 분명했습니다.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들 사이로 문득 성경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애굽에 내렸던 열 가지 재앙 중 하나, 개구리 떼의 재앙.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이성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선택의 기준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지 주지 않는지였습니다.
군율을 지키기 위한 읍참마속의 심정과 이웃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올챙이 버림의 심정의 결이
어느 정도 맞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대야의 물을 땅에 쏟아부었습니다.
그렇게 한여름의 ‘올챙이 사건’은 막을 내렸습니다.
시간이 흘러 10월 하순,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던 어느 날,
우연히 다시 대야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쌀쌀한 날씨였지만 놀랍게도 그 안에는 십여 마리의 큰 올챙이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이번에도 같은 선택을 했습니다.
대야의 물과 함께 올챙이들을 다시 흙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개구리야,
알을 낳으려거든 너희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연못에 낳으려무나.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는 너희 울음이 노래가 아니라 소음이 된단다.
그리고 올챙이들의 생명도 결코 안전하지 못하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