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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 Nov 21. 2023

무식해서 용감했던 농사의 추억 2.

-농지를 매입할 때 고려했어야 했던 4가지-

 


 지금은 밭을 정리하였고, 직장으로 인해 읍에 있는 빌라로 분가를 하게 되면서 농사를 짓고 있진 않지만, 시골에 살고 있는 이상 언젠가는 다시 작물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올 거라 생각한다. 아니, 꼭 왔으면 하는 마음이다. 작은 텃밭이라도 좋고, 조금 더 커도 겠다.

 앞으로 다시 땅을 구입하게 된다면 최소한 이 네 가지는 꼭 살펴보고 매입하고자 아무것도 모르고 맨땅에 헤딩했던 우리의 실수를 기록해 본다.

(꼭 농지를 사지 않고 임대하는 방법도 있긴 하다.)





 1. 주변 도로와 진입공간

 우리 땅은 작은 산을 올라가는 중간쯤에 있었고, 가는 길은 논들을 지나 올라가야 했다.

고로 좁은 논길에 위치해 있었다는 것.

논길을 지나 밭에 올라가기 직전 'ㅗ'자형 도로에서 좌회전을 해 올라가야 하는데, 폭이 좁아 핸들을 돌려 올라갈 때나 내려갈 때마다 바퀴가 빠질까 안 빠질까 매우 조마조마했다.

처음 땅을 보러 다닐 땐 내가 운전을 안 했기 때문에 '뭐 괜찮은가 보다'했다. 그런데 막상 직접 왔다 갔다 해보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특히 차를 바로 들어가면 우리 밭에서 차를 돌려 나와야 하는데, 후에 작물을 심고, 입구에 경운기를 주차하게 되면서 우리 땅에도 여유 공간이 없어졌다.

결국 후진으로 차를 빼거나, 아예 처음부터 후진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아.... 좁고 꼬불꼬불한 언덕길과 'ㅗ'자길을 후진으로 다녀야 하니  얼마나 앞으로 갔다 다시 뒤로 갔다를 반복했는지 모른다. (때때로 운전 때문에 밭에 가기가 싫은 적도 있었다.)

아이들과 같이 갈 때는 창문을 다 열어 고개를 내밀게 하여  알림이 역할을 시키기도 한다.

"바퀴가 빠질 것 같아? 안 빠졌어?"를 외치며...

 심지어 운전 베테랑 신랑도 새벽에 물길 트러 갔다가 바퀴가 한두 번 빠졌고, 경운기운전 초보인 아빠도 밭에 물 대러 내려가다가  앞둑의 비탈로 떨어져 큰일이 날뻔했다. (다행 아빠는 경운기가 떨어지기 직전에 점프해 내려 다친 곳은 없었다. 아....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고 가슴이 쿵쾅거린다. 농촌에서는 경운기 사고가 자주 일어나고, 아주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으시는 어르신들도 많이 보았다. 그때 이후로 경운기를 볼 때마다 멀리 피하고 싶고,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결론은 내 땅으로 가기에 진입로가 너무 좁지는 않은지, 차를 돌릴공간이나 주차할 곳이 있는지, 혹시 나중에 집을 짓게 되면 큰 차들이 지나갈 수 있고 주변 여건이 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길있다고 별생각 없이 구입을 했다가는 아주 애를 먹을 수 있다.



아래 밭에 떨어진 경운기 위험천만 아찔한 날









 2. 물을 댈 수 있는가?  

  도로는 좁지만 어쨌는 처음 구입한 땅, 푸르르고  뭔가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 좋아 처음 구입하고는 신랑과 꿈에 부풀어 밭에 자주 들르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뒷밭 주인이자 마을 전 이장이셨던 삼촌이 우리를 보고는 올라오셨다. (우리는 매입한 땅과는 다른 마을에 살고 있어, 그 마을에서는 '도대체 누군가~' 다들 궁금하셨을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알고 보니 우리가 매입하기 전까지 우리 땅에서 조사료(소풀)를 심으셨더랬다.

 삼촌은 어디서 왔는지, 땅은 어떻게 구입했는지, 무슨 작물을 심을 건지 궁금해하셨고,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를 나누다가...

"그런데 물은 어게 대려고? 농지를 살 때는 물이 있는지... 샘이 있는지 보고 땅을 사야 하는데~ "말씀하신다.

아... 우리는 몰랐다. 아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작물을 키우려면 물을 줘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고려하지 않았다. 한 가지에 정신이 팔 다른 한쪽은 전혀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참 어이가 없었다.

 양쪽 논이나 밭에 작은 또랑이나 샘이 있긴 하지만 텍도 없었다. 그 샘은 그 샘이 있는 땅에 줄 정도밖에 안 된다. 400평의 밭은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하다. 비가 제때제때 와준다면 모를까...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방법은 300~400m 거리에 있는 저수지에 물펌프와 호수를 연결하여 주는 방법, 두 번째 방법은 관정을 뚫는 방법.

하지만 첫 번째 방법은 길이만큼 호수와 펌프를 구입하는 비용이 상당했다. 구입하더라도 호수를 남의 밭으로 가로지를 수도 없고, 길에 계속 길게 놔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두 번째 방법도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든다. 나중에 진짜 집을 지으면 모를까 아직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사실 도로를 경험해 보고는 집을 짓는다는 생각은 슬슬 접고 있었다. 그리고, 땅 구입 비용 이외에 경제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여유도 전혀 없었다.

결국 우리가 선택한 제3의 방법은 경운기였다. 신랑과 친정 아빠의 고민으로 나온 방법이다.

당시 사돈어르신이 갖고 계시던 경운기를 중고로 저렴하게 구입하고 아래 논 근처 물이 많이 있는 수로에 가서 커다란 통에 담아와 다시 밭에 뿌리는 방법이다. 경운기 엔진에 호스를 연결하면 통에 있는 물을 올려 뿌릴 수 있으니 펌프를 따로 사지 않아도 되고 일석이조였다.

(또, 경운기로 밭도 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트랙터가 있는 전이장님 깨 부탁드려 밭을 갈았다.)

 때문에 친정아빠는 사돈어르신께 경운기 운전을 대략적으로 배우시고는 바로 실전에 투입되셨다. 신랑은 경운기는 자신 없다 하니 그나마 자신감 있으신 친정아빠에게 운전대가 돌아간 것이다. 평지도 아니고 좁은 언덕길을 다니시는 것에 불안한 마음이 계속 들었지만 아빠는 계속 괜찮다, 어렵지 않다 하셨다.

 물 댈 때마다 괜히 사서 고생하는구나 싶고, 언덕 밑으로 빠지는 사고가 있었을 때는 농사고 뭐고 식구들 고생만 하는 것 같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빠한테 너무나 죄송하고 감사했다.

 

좁은 논길 위에 있는 우리 밭. 스프링클러멍~ 하고 있는 식구들 (feat. 중고 경운기)

 







 3. 집과의 거리   


 농사를 지을 당시에 나는 면사무소 공공근로일을 하고 있었다. 집이나 직장에서 밭으로 가려면 차로 15분 거리를 가야 했는데... 가깝다고 생각될 수 있겠지만, 막상 근무가 끝나고 피곤한 몸으로 왔다 갔다 하려니 영 내키지 않고, 내일로 미루고 싶을 때가 많았다. 또 식구들 저녁 준비해야 하고 아이들도 챙겨야 하는데, 마음이 여간 조급하고 바쁜 것이 아니었다.

 낮이 길 때는 그래도 가서 잡초도 뽑고 깻잎도 따오고 했지만, 낮이 짧아질수록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 막상 마늘이 한창 클 때는 자주 가보지 못해 잡초가 마늘보다 키가 더 커져있었다.

(우리는 마을 분들의 잦은 제초제 권유에도 절대 뿌리지 않았기에 영양가 많은 땅의 잡초는 마늘보다 더 무럭무럭 자라났다.)

 농지는 집과 가까이 있어야 잡초도 수시로 뽑아주고, 필요할 때 농작물을 바로 수확해 먹기도 하고, 물도 편하게 주고, 비가 많이 오면 물길도 바로 내주어야 잘 관리할 수 있다.

금이라도 번거로운 거리에 있으면... 나의 관심과 행동에 따라 밭과 농작물은 못난이가 됐다가 이쁜이가 됐다한다.

가장 좋은 것은 집 옆에 짝꿍처럼 같이 꼭 붙어있는 곳이 좋겠다.



밭에 따라 온 둘째 딸. 경운기는 놀이터~










 4. 그 외의 것들  


*전기: 전기 사용이 예상되는 경우, 주변에 전봇대가 있는지 확인하면 좋을듯하다. 우리는 앞에 전봇대가 있지만, 굳이 필요 없어 신청하지는 않았다. 저녂까지 있을 때는 불빛이 있었으면... 했지만, 밤에 불빛은 작물성장에 좋지 않다. 예초기 충전도 배터리 두 개로 집에서 해오고, 펌프도 경운기로 해결. 집을 짓는 꿈도 사라져 가고 있었기에...


*마을분들과의 관계: 농촌은 마을단위의 굉장히 단단한 집단이 형성되어 있다. 그 속에 들어간다는 것이 매우 조심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도시에서 귀촌할 때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낯선 부분이지만, 마을 분들과 관계가 좋아야 여러모로 그 안에서 농사를 짓든, 생활을 하든 마음이 편안할 것이다.

나도 처음 고흥에 와서 마을 단위 시스템에 많이 놀랬었다... '이장'이라는 호칭도 그렇고, 과거로 회귀한 듯한 느낌이었다. 어쨌든 마을 분들이 이미 터를 만들고 살고 계신 곳이기 때문에 최대한 낮은 자세와 수용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대부분이 어르신 이기 때문에 더욱더 그렇다.

우리가 구입한 농지의 마을 분들의 경우 우리를 많이 궁금해하셨고, 우리는 마주칠때마다 좋아하시는 음료도 드리며 웃는 얼굴로 인사드리고, 궁금한 것을 물어보실 때는 최대한 잘 대답해 드렸다. 그분들도 모르는 것이나 농사에 대해 여쭤보면 잘 알려주시고, 모종도 주시고, 여러모로 좋은 관심을 주셔서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최대한 우리의 농사로 인해 마을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노력하고 소통하려고 했다.

 귀여우신 윗 밭 할머니, 친절한 옆밭 할머니 할아버지...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신지 한번씩 생각이 난다.



*경제적 여유: 처음에 농사를 지으려면 생각보다 많은 용품과 비용이 든다는 것을 예상 해 보아야 한다.

 밭은 어떻게 갈 것인가? 농기계가 없다면 구매를 하거나 빌려야 한다. 트랙터나 경운기를 구매하거나, 마을에 농기계가 있는 분께 갈아달라고 할 수도 있고, 대여를 하기도 한다. 사든 빌리든 대신 갈든 다 비용이 들고, 밭은 작물을 바꿀 때마다 한두 번씩 갈아줘야 한다.

 예초기, 퇴비, 비료, 요소, 석회, 멀칭비닐, 스프링쿨러, 호수, 모종, 씨앗구입, 소독약, 분무기, 농기계 기름, 수확 시 필요한 도구들, 중간중간 식사비, 간식비, 인건비(넓은 밭은 작물을 심고 거둘떄 인력을 쓴다) 등등

또, 비가 많이 와서 농지 지형이 변형되어 다른 농지에 피해가 되면 포크레인을 불러야 할 수도 있다. (포크레인 부르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ㅜ)

 지금은 모두 생각이 나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필요한 것들이 생겨났다. 아직 일년 수확을 해보기도 전에 비용은 계속 들어갔고... 과연 수고한 시간과 함께 이 금액들을 메꿀 수 있을 만큼의 수확과 수입이 될지 의문이 들었었다. (물론 많은 수입을 기대 한 것은 아니지만, 비용이 계속 들어갈수록 한 번씩 멍~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 농사도 돈이 있어야 하는구나...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2년이 지난 지금 아무리 생각해봐도 신기하다. 어떻게 농사를 짓는다고 했을까... 역시 무식하면 용감하다.

귀촌한지 일년도 안된 아무것도 모르는 부부가 400평 농지 구입 후 느낀 것들을 생각나는대로 적어보았다.

사람마다 경우와 형편이 각각 다르기에 아주 사적인 생각이라는 점을 말해둔다. 성공적인 경험담은 아니지만, 농사라는 것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던 유익한 시간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나의 실수가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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