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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씨 Jul 07. 2023

여러 다큐들에 대한 생각과 분석

환경,인간,사회 문제


The Bomb (2015) <핵폭탄>

-방사능, 핵반응의 발견과 이의 발전과정, 그리고 현재

주요 쟁점

1, 두 나라의 권력 구도 속 핵무기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2, 이러한 핵무기에 대한 대중의 인식 변화

3, 핵무기의 상업적 이용 및 핵발전

1, 두나라의 권력 구도 속 핵무기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강의를 토대로 한다면 첫째, 핵무기는 하나의 잠재적 위험 수단을 자기 방어 및 공격무기로 변화시킨 사례라고 생각한다.  다큐에 따르면 핵반응의 무기화에 대한 가능성은 히틀러하의 나치 독일이 처음 발견했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발견 과정 속 히틀러가 이러한 발상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가졌기에 실제로 실용화되지는 않았지만 이는 미국으로 하여금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 자신들이 아닌 지금껏 몰랐던 어떤 물질로 인해 전쟁의 양상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위협을 통해 미국은 독일의 히틀러와 달리 핵반응의 가능성을 국가적 사업, 발전 방향으로 잡았다. 물론 미국도 그 당시 전쟁이라는 특수적 상황과 더불어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통한 선전포고로 인해 인적 손실이 심했기에 이러한 장기적 프로젝트에 관해서 미국 내에서도 반발이 있을 것임을 예상했고 핵무기의 위험성도 컸기에 비밀리에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맨해튼 프로젝트이다. 이러한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나의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부정적으로 보게 되는 것 같다. 이는 전쟁의 본질적 문제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라고 생각한다. 나의 입장은 전쟁이라는 문제의 본질적 해결을 국제기관 간의 협업을 통한 평화적 해결이라고 보았지만 미국은 핵무기의 개발을 통한 압도적 무력으로 전쟁을 장기간으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닌 단기간에 끝내는 것을 본질적 해결책으로 본 것 같다(이념, 민족 간의 갈등으로 인한 전쟁은 불가피한 요소라고 생각한 것 같다). 물론 이러한 결정에는 여러 경제적, 사회적 이유가 바탕이 되었으며 특히 전쟁을 하나의 비즈니스로 보는 현대의 미국의 모습을 대입해 보자면 전쟁을 통한 경제적, 국제적 이익을 보려 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 것 같다. 그 후 이러한 핵무기의 개발, 전쟁의 종식은 평화로운 세상으로의 도약이 아닌 또 다른 대립으로의 길을 열게 되었다. 바로 냉전시대의 시작이다, 냉전의 시작은 전쟁이 끝난 후 이념적 갈등에 의해 세계가 두 개로 나뉜 것이다, 이러한 냉전은 전쟁이 끝난 후 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소련, 미국이 패권국가로써 도약하기 위한 하나의 싸움으로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두 국가 모두 전쟁 후 발생한 인적, 경제적 손실을 이념적 대립을 바탕으로 복구하기 위해 저마다 군, 이념을 이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 과정 속 핵무기, 핵반응을 하나의 강력한 무기임과 동시에 하나의 국가 홍보수단으로써 자신들 국가의 군사력 및 사회구조적 강력함을 드러낼 수 있는 하나의 좋은 수단이 되었었다고도 생각한다.

2, 이러한 핵무기에 대한 대중의 인식 변화

 하지만 이러한 무분별한 핵 관련 상품의 개발은 국제정세적 측면에서는  우방국들로 하여금 미국이라는 방패가 존재함을 느끼게 했지만 방사능의 여파를 몰랐기에 이 과정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났고 이는 전적으로 정부의 안일함으로 인해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뉴요커 잡지가 히로시마의 상황을 보여주는 특집을 만듦으로써 시민들이 경각심을 느끼기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소련과의 냉전 시대 속 핵무기, 더 나아가서 ‘수소폭탄‘의 개발은 어쩔 수 없는 숙명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된다. 아까 미국이 전쟁을 보는 관점에 대해 다룰 때 국제사회의 협력을 통한 해결과 같은 어찌 보면 이상적 해결방식을 제시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핵무기가 개발된 시점에서는 핵무기의 발전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만약에 한 국가가 이러한 개발을 포기한다면 서로의 힘의 균형은 깨질 것이고 이는 즉각적인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힘의 균형을 위해서는 국가 간의 경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 속에서 쿠바 사태와 같이 두 국가가 전쟁 발발 전까지 몰고 간 사건이 발생했지만 이러한 것도 결국 서로가 경쟁을 통해 개발한 핵무기의 성능을 알고 이러한 힘이 서로 비슷하여 전쟁을 한다면 종말로 갈 것을 알았기에 함부로 전쟁을 시작하지 못하고 서로 물러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고 생각한다.

3, 핵무기의 상업적 이용 및 핵발전

앞선 내용을 통해 국제적 핵무기 생산의 확대가 결국 종말이라는 결과를 불러올 것임을 알게 되었고 이를 막기 위해 핵억제 정책, ATOMS FOR PEACE와 같은 국가 간 협의를 만들게 되었고 더 이상 핵무기를 무기로써 사용하기보다는 하나의 에너지원으로 사용하자는 의견이 주가 되게 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 속에서 인도, 파키스탄의 핵무기 개발 등과 같은 문제가 발생했지만 이 문제의 경우 미국이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무기를 제지하거나 이를 자극한다면 인도양 전체의 영향력을 잃을 수도 있기에 그냥 두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소수 개발국의 핵무기 억제 정책은 모두가 알듯이 더 이상 핵무기를 생산하지 못하게 하여 자신들의 권력구조를 더욱 확고히 하게 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은 모두가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미국은 핵에너지 개발에 있어서도 원전을 동맹국 간 우호의 상징으로 사용했다는 점도 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핵무기의 생산이 멈추고 핵무기가 과거와는 달리 더 이상 전쟁에서 활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점을 단순히 알고 생각하는 것에서 넘어서 전 세계적인 실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과학자에 대해 말할 때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을 주로 예시로 든다. 이처럼 우리는 더 이상 핵무기와 같은 무기를 과학적 성과로 보기보다는 이러한 무기가 미칠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 생각해야 하며 이러한 에너지를 민중을 위해 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될 것 같다. 특히 한국의 경우 아직 분단국가이고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만큼 핵무기의 사용에 있어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한국 사회 내에서의 전략적 핵무기 배치 의견과 같이 방패가 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우리를 파멸시킬 수도 있는 이러한 의견을 줄여나가고 핵에너지와 관련해서도 더 이상 기후문제, 환경오염과 같은 문제의 본질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하나씩 철거하여 이러한 에너지에 쓰였던 기술력, 인력, 자본을 새로운 에너지의 발견, 생산, 확충과 같은 방향으로 바꿔나가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분단국가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국방, 무기 관련 이슈를 정치, 사회제도와 함께 가져가야 한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러한 것이 함께 자멸하는 길임을 대중이 다시 한번 상기해 보았으면 좋겠고 나도 이번 영상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잠시 가졌던 생각(핵무장)을 바꿔나갈 수 있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우리는 화성에 갈 수 있을까? Can We Make It to Mar?

 우주탐사에 대한 인간의 고민과 화성 거주 가능성.

주요 쟁점

1, 화성 탐사를 위한 준비는 무엇이 필요할까?

2, 화성 탐사의 의의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현재 전지구적 과제 중 하나인 우주탐사가 발전해 온 과정을 설명하고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겠지만 우주탐사의 시작은 두 국가, 즉 냉전 상황 속 서로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특히 핵무기의 개발이 냉전이라는 키워드 아래에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따로 군사기지를 적국의 근처에 건설할 필요가 없는 ICBM 즉, 대륙간탄도 미사일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주로 미사일을 쏘아 올려야 하는 인공위성은 ICBM개발 및 실험을 위한 중요한 핑곗거리였다. 이러한 의도 속 양국은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 개발을 하였고 이는 더 나은 기술의 발견을 불러왔다. 물론 모두가 알고 있는 NASA(미국항공우주국)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 또한 우주탐사는 정부로 하여금 하나의 홍보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는데 특히 미국의 유인 프로그램인 머큐리 프로젝트,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있으며 이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대중에게 정부의 정책 및 세금 이용의 타당성을 홍보했고 이에 대중은 열광하는 모습을 보였다. 즉, 이러한 과학적 성과는 정치, 이념적 냉전의 상황 속에서의 경쟁과정을 통해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우주탐사의 최종목표라고 불리는 화성탐사에 대한 내용은 무엇이 있을까?

1, 화성 탐사를 위한 준비는 무엇이 필요할까?

-화성 탐사의 문제점은 크게 보면 인간의 생존 가능성이며 작게 보면 5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미세유성의 위험성

-미세유성은 우주에 존재하는 유성을 말하며 엄청난 수를 자랑한다. 특히 우주의 진공상태에서의 미세유성에 속도는 우주선에 매우 큰 위협이 되며 이로 인해 많은 과학자들은 미세유성으로부터 생존가능한 우주선을 만들기 위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미세유성의 속도로 인해 단순 강철 등의 재질로 우주선을 제작한다면 진공상태로 인해 오히려 더 큰 파손을 불러온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미세유성의 속도를 줄여줄 수 있는 스펀지와 같은 성질을 같고 있는 우주선 외피를 제작하고 있다. 하지만 우주탐사에서의 위험은 이걸로 끝나지 않는다, 바로 인간이 만들어낸 우주쓰레기 때문이다. 우주쓰레기는 우주산업의 특성상 우주선 발사 이후 발생한 연료통과 같은 쓰레기, 그리고 인공위성의 수명과 같은 특징으로 인한 쓰레기로 나뉘며 이의 양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점점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현재 스타링크와 같은 우주 관련 산업이 특히 많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우주쓰레기의 중가는 어쩔 수 없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산업의 발전이 긍정적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산업의 잔재물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토의는 전혀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우주그물을 통한 쓰레기 수거와 같은 해결방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현재 과학의 발전을 본다는 이는 먼 미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현시대에 맞는 새로운 방안의 토의가 매우 절실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즉, 미래세대에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을 맡기기보다는 현재의 과학발전 상황에 맞는 본질적 문제 해결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 무중력

-중력의 존재유무는 인간의 생존에 매우 큰 부분이다. 인간의 신체는 지구 중력에 맞게 만들어졌으며 이러한 중력의 영향에서 벗어난다면 , 생활에 큰 제약이 발생한다. 또한 중력의 영향으로 인간 신체의 근육을 지구의 환경보다 적게 쓰는 경향으로 인해 몸의 근육, 뼈의 중량 등이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지구에 돌아왔을 때 신체적 결함, 부상 등을 불러오고 더 나아가 신체장애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우주정거장에는 다양한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해결책도 우주탐사가 1~2년처럼 장기적으로 변한다면 인공중력 등의 시설도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3, 우주선

우주선은 지구의 방사능과 비슷한 것으로 지구에서 인간이 인위적 방사능에 노출되면 몸의 DNA구조를 파괴시켜 몸을 붕괴시키는 것처럼 우리 몸의 세포를 암세포로 만드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우주선의 부정적 영향은 우주에 거주하는 시간에 따라 커지며 이는 화성 탐사와 같은 장기프로젝트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장기간 작은 공간에 있어야 하는 우주비행사들의 심리에 있어서도 큰 영향을 줄 것이고 장기적으로 이것이 암뿐만 아니라 우울증에 따른 자살까지도 불러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4, 진공상태에 빠른 우주복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주 환경 속에서 인간은 중력의 부재로 인해 우주복 없이는 신체구조를 유지할 수 없다. 따라서 우주복의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이러한 우주복은 기동성을 저해시키고 이는 장기적으로 화성에 도착했을 시에 발생할 수 있는 위급 상황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다큐에서 말한 바와 같이 기동성을 극대화시킨 우주복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우주복의 개발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소 2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아직 화성에 인간이 가본 것이 아니기에 화성에 대한 조사가 더 필요하고 이러한 조사의 자료를 바탕으로 더 발전시켜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5, 음식

-화성에서의 장기간 생존에 있어 가장 중대한 요인은 심리적 요인이 크다고 본다. 인간의 생존에 있어 가장 큰 즐거움이자 생물학적 생존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앞선 강의에서도 이러한 음식 개발에 큰 공을 들인다고 언급한다. 우주에서 살아야 하는 우주비행사들은 환경적 제약으로 인해 즐길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맛과 같은 즐거움을 통해 에너지를 보충함과 동시에 활력, 사기를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장기간 보관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맛에 영향을 미치는 살균과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안다. 따라서 더 나아가서는 이러한 문제의 본질적 해결을 위해 조금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영화 ‘마스‘에서 주인공이 농사를 통해 자급자족하며 이에 행복감을 느끼는 것처럼 미래에는 우주선, 화성에서 직접 농사를 지을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론

-이러한 화성탐사와 같은 우주탐험은 많은 위험요소가 내포되어 있고 비용 또한 많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더불어 환경오염과 같은 전지구적 문제가 우리의 앞에 있고 이에 우선순위를 둬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광활한 우주 속 지구는 작은 먼지와 다름없다. 우리 선조들이 새로운 대륙, 땅을 찾기 위한 여정을 계속해왔듯이 현대의 인류도 이러한 탐험들을 지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In the Family

-특정 DNA 인한 사회적 두려움, 그리고 이것이 가정 및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다큐

주요 쟁점

1, 유전자 검사의 필요성.

2, 예방적 절제과정에 대한 논란

-유전자 검사의 필요성

유전자 검사란 개인을 넘어서 그 가족 구성원들의 유전자에 대한 전체적 정보를 파악하는 검사로 과거에는 범죄 및 여러 조사를 위해 공익의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 자신이 알지 못하는 개인적 정보에 대한 궁금증으로 인해 이러한 검사가 공익에서 사익으로까지 넘어온 상황이다. 해당 다큐는 이러한 유전자 검사 중 특정 유전자, 즉, 유방암 및 난소암을 일으키는 BRCA유전자를 가진 여성의 생각, 이러한 유전자에 대한 사회의 시선, 더 나아가 해당 여성의 가족에 미치는 영향과 같이 개인적인 것도 보여준다. 영화의 감독이자 BRCA 유전자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여성은 현재 한 남성과 교재 중으로 교재 첫날 이후 자신의 상황과 앞으로의 미래에 존재할 리스크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하지만 남자는 이에 대해 미래 알고 있었고 이는 두 사람이 아직 미래에 존재할 고난에 대한 우려가 적었음을 알 수 있다. BRCA유전자를 갖고 있는 여성의 경우 꾸준한 검사를 통한 예방, 아니면 난소, 유방을 제거하는 사전적 예방제거술로 대비방법이 나뉜다. 이는 암으로 인해 발생하는 개인에 대한 피해가 그 어떤 질병보다 크기에 주로 두 번째 방식이 선호되며 젊은 여성의 경우 아이를 낳은 다음 수술을 하는 경우가 많다. 감독의 경우 아무래도 젊었고 아이도 갖고 싶었기에 첫 번째 방식에 대한 의견을 구하기 위해 전국에 있는 여러 환자들을 만나며 여러 케이스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대부분의 BRCA 유전자를 갖고 있지만 아직 암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러한 유전자 검사, 주변인들로부터의 정부가 오히려 감독 개인에게 심리적인 압박감을 계속해서 주었다는 것이다. 특히 온라인을 통한 정보의 교류가 매우 빠른 현대상에 맞게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정보의 교환은 이러한 정보가 진실이 아닐 수도 있고 과장되었을 수도 있지만 감독에게는 희망과 절망을 오고 가게 하는, 어찌 보면 스트레스를 유발한 하나의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은 당시 결혼에 대한 생각도 하고 있었기에 이러한 스트레스는 자연스럽게 약혼자와의 관계 악화 등 개인 사생활에 있어 심각한 파장을 불러왔다. 물론 적당한 양의 정보의 환자 스스로를 깨우치게 만들고 이를 통해 실제로 더 나은 의사, 수술 방식, 무지에서의 탈출 등의 긍정적 영향을 불러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과도한 정보는 오히려 개인이 병과 관련된 것에 모든 신경을 쓰도록 만든다. 따라서 이러한 유전자 검사는 BRCA와 같은 특정적이지만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유전자에만 사용되어야 하며 지금의 할리우드 스타들이 행하는 유전자 검사는 정확성 측면에서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경우의 수가 존재하기에 이러한 소수의 인플루언서들의 트렌드는 오히려 대중의 유전자에 대한 두려움을 심화시키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예방적 절제과정에 대한 논란

예방적 절제과정에 대한 논란은 꾸준하게 존재해 왔다. BRCA의 경우 아무래도 암을 일으킬 확률이 높기에 발병 전에 미리 전절재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수술들이 여성성을 지워버린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정신적, 신체적으로 큰 영향을 주기에 대부분의 BRCA유전자를 가진 여성들은 초기에는 예방적 절제과정이 아닌 장기적 검사를 통한 대비를 선택한다. 특히 결혼을 하지 못한 여성의 경우 아이를 갖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면 더욱더 조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감독도 같은 경우로써 초반에는 배우자와의 결혼 및 자녀를 위해 수술이 아닌 검사를 택한다. 하지만 예방적 절제 과정을 한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를 계속하며 이러한 감독의 생각은 수술을 하는 것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바로 암의 무서움 때문이다. 물론 수술을 받지 않고 아이를 낳은 이후 암에 걸린 사람들의 의견은 다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존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암으로 인해 사망하거나 고통을 겪었기에 찬성하는 의견을 가진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다르다. 개인적으로 남성의 입장이기에 타당하지 않은 의견일 수도 있지만 두 사례 모두 결국에는 유방, 난소를 제거하기에 여성성을 없애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여성성에 대한 제거 이후 여성의 삶은 모두 피폐하거나 정체성의 혼란 등이 올 수 있기에 검사를 통해 수술의 시기를 최대한 미룬 후 여성으로서 삶을 조금의 시간이라도 더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신적 측면에서 더 긍정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현재 의료 관련 산업은 이러한 여성성에 대한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여러 해결책을 강구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실리콘 삽입술이 있으며 수술 후 여성성에 대한 혼란이 온 여성들에게는 이러한 시술이 여성성을 회복하고 삶을 이어나가는 데 있어 당당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아직 가장 중요한 난소암에 대한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직 보완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유전자 검사

해당 다큐에서의 제약사의 의견에 따르면 감독이 왜 유전자 검사의 가격을 낮추지 않느냐고 질문하자 해당 제약사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낮아질 수도 있지만 유전자 검사의 가격은 연구, 생산 인프라 등에 투자한 모든 금액을 포함하는 가격이기에 해당 가격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자신들의 연구가 없었다면 결국에는 이러한 유전자가 존재했다는 것도 모른 체 사람들은 죽어나갔을 것이라는 것이다. 즉, 자신들이 행한 사회적 공로가 해당 가격의 책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제약사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해당 제약사가 존재하지 않거나 해당 기술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분명히 다른 기업이 기술의 진보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개발에 성공했을 것이다. 또한 가격의 책정에 있어서도 이러한 방대한 가능성 중 기업이 만약 친기업적 성향이 아닌 친대중적 성향을 가졌다면 분명 가격이 낮아졌을 것이다. 즉, 기업의 도덕성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러한 제약사의 주장이 단순히 기업적 측면에서 이익을 내기 위한 그들만의 이기적인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해당기업은 미리 특허로 제정, 이를 통해 환자들이 자신의 기업 외에는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없도록 했기에 특히 더 부정적인 입장으로 보게 되는 것 같다.

문제는 이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유전자 검사의 불평등성은 인종 간에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현재의 미국사회는 양극화 현상으로 인한 빈부격차가 매우 크다. 이는 부자, 빈민으로도 나누어지지만 백인, 흑인으로도 나누어진다. 이러한 인종 간의 불평등성은 의료보험이 민영화된 미국사회에서 흑인들이 병원에 방문하여 검사를 안 받는 것뿐만 아니라 유전자에 대한 정보에서마저도 다른 인종과의 격차를 만든다. 이로 인해 자신이 BRCA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하고 죽어가는 흑인 여성들이 발생했다. 또한 이러한 적은 검사수는 흑인 유방암 및 난소암 유전자에 대한 적은 표본 및 정보로 이어지고 이로 인해 막상 변이 된 유전자를 찾더라도 암으로의 발전가능성을 확신하지 못하는 모습을 가져온다. 따라서 다큐에 등장하는 많은 흑인여성들은 이러한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다양한 검사에 참여하고 이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말한다. 이에 대해서는 어떤 부분보다 감명받았던 것 같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은 불평등이 있으면 이에 적응하지 말한 실천적으로 참여해서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에 적응하여 그냥 살아가고 있다. “개개인의 실천적 경험이 개인의 가치관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사회전체의 가치관을 바꾼다” 하는 말이 있다, 이처럼 이러한 시도들은 앞으로 미래의 미국사회의 불평등뿐만 아니라 흑인 스스로의 가치관 또한 변화시키는 문제에 대한 긍정적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결론

-감독의 이러한 다큐적 시도는 병의 전체적인 개념 및 치료방식뿐만 아니라 실제로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의 심리상태 및 가족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하지만 무례하지 않게 나와서 특히 좋았던 것 같다. 평소 이러한 사회적 압박감에 따른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던 나에게는 무관한 제3의 인물의 설명이 아닌 실제 관련자가 제작자로 참여함에 따른 효과는 무엇이 있을까? 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게 된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우생학 십자군 전쟁 The Eugenics Crusade

-우생학의 발견 과정과 역사적 배경

주요 쟁점

1, 사회적 혼란에 따른 제노사이드와 같은 민족주의의 발전

2, 오늘날의 우생학

사회적 혼란에 따른 제노사이드와 같은 민족주의의 발전

-흔히 우리가 말하는 제노사이드, 인종청소, 인종차별은 사회가 혼란할 때 발생한다. 이는 사회의 혼란을 사회구조적 환경에서 찾지 않고 외부에서 찾는 것으로 주로 인종, 지역, 민족에 따라 나타난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시로는 다큐에서처럼 세계화에 따라 혼란스러웠던 미국사회에서의 우생학이 있다. 우생학의 시작은 골턴과 같은 사람의 초인류, 즉 우수한 인간들끼리의 결혼이 초인류를 불러올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되었으며 이에 대한 근거를 찾기 위한 연구들은 많은 연구자들의 과제로써 행해졌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은 유럽 사회에서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이민자들로 인해 혼란스러웠던 미국사회에서는 큰 영향을 준다. 경제발전에 따른 인구의 도시밀집현상은 사회의 질을 나빠지게 하는 것으로 보이게 하였고 이와 더불어 이민자들의 급증은 미국 사회에서 우생학을 신봉하던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의 문제가 특정 민족, 인종에 있다는 생각에 확신을 심어주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는 주로 미국에 원래부터 살던 지배세력층, 기득권층에서 유행했다. 이를 통해 이러한 사회적 흐름은 어찌 보면 지배세력이 사회적 혼란에서 벗어나 대중을 통제할 수단으로써 정말 달콤한 지배수단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과정 속에서 단순히 당시 사회에서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던 백인들의 우생학만이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다. 백인들과는 조금 다른 이유일 수도 있겠지만 당시 저명한 흑인 인사들 사이에서도 흑인들 사이에 지능적 우월자가 있으며 이를 통해 더 나은 흑인을 배출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이는 당시 사회가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 보여주며 공권력 또한 이에 동참하여 전국적으로 많은 주에서 강제 불임 시술이 합법화되었다. 이러한 다수가 동참한 사회권력은 그 어느 것도 막을 수 없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큰 힘을 갖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탄압을 계속했다. 나는 서로가 다르고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인류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에 내가 그 시대에 살았고 우생학에 따라 평범한 사람으로 분류되었다면 과연 나도 이러한 정책을 비난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다수의 광기는 무서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우생학에 따른 집단의 광기는 미국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다들 알다시피 나치독일의 민족주의 또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초기의 독일은 우생학에 대한 관심도가 높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나치에 의해 변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전국적으로. 강제불임수술 등이 행해졌다. 그리고 이러한 민족주의가 최악의 상태로 나아간 것이 나치의 제노사이드, 즉 유태인 학살이다. 하지만 이러한 독일 나치의 우생학은 미국의 우생학과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당시 독일에서도 집단적 광기에 따라 발생하기는 하였으나 주로 나치라는 특정 그룹, 그리고 그 그룹이 현대에 와서도 매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우생학은 계층을 가리지 않고 유행했으며 이러한 우생학에 따른 시술에 대중이 동참했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이것이 같은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미국 사회가 민주주의를 추구했고 사람들 사이의 자유가 어느 정도 존재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차이점을 가진다.(독일은 당시까지도 우생학에 따라 흑인, 황인, 유대인을 인간이 아닌 동물로 취업할 정도였지만 미국의 경우 차별이 존재했고 이것이 매우 심각했더라도 독일에 비해서는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사회적 논란을 불러올 수도 있지만 북한과 중국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의 경우 인권 문제가 매우 심각하고 지도층에 의해 숙청 등 강제적 정책이 시행된다. 물론 중국도 단일 집권자를 통한 독재정치 체계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것이 북한과 같은 수준의 인권멸시로까지는 진행되지는 않는다.

오늘날의 우생학

-오늘날의 우생학으로 대표적인 것으로는 IQ테스트가 있다. 이는 특정 형식의 문제를 풀어 개인의 지능을 수치화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수치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연구자들의 목표가 반영된 산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IQ테스트에 매료되어 사람에 대한 판단의 기준을 IQ로 삼았던 때가 있었다. 이에 다라 IQ가 높은 사람을 우상시했고 낮은 이는 한마디로 멍청한, 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이러한 IQ테스트에는 큰 오류가 존재한다. 애초에 초기 IQ테스트는 공부를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을 위한 교육제도를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지금과는 매우 다른 관점이었다. 또한 인간의 모든 것을 IQ테스트로만 바라본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는 아직까지도 인간 뇌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한 연구자들의 판단 오류이며 따라서 많은 연구자들이 IQ테스트는 하나의 기준일 뿐 모든 인간을 판단하지 못하며 인간 개개인은 각기 다른 특징과 지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전의 IQ테스트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

결론

-지금까지의 내용으로만 보자면 우생학은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처럼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이는 사실인가?, 나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사회는 특정 기준이 필요하며 과거의 우생학의 비판적 사례의 길로만 가지 않는다면 충분히 과학적으로 사용할 만한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전자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 그리고 이를 자연스럽게 여긴 과거의 사람들, 이를 자신들의 정치에 이용한 정치인들, 이를 새로운 종교의 한 면으로써 활용한 사람들과 같이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자신들의 논리를 펼치기 위해 부당하게 사용했다는 점에서는 동의하며 앞으로의 미래에 있어서는 이러한 우생학의 따른 집단적 광기를 제어하기 위한, 평등, 자유, 질서에 따른 정책이 만들어져야 하며 정책이전에 사람들의 가치관이 먼저 바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개개인들의 실천적 참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교육이 해결책이 될 수 있으며 현재 많은 국가에서는 이민자에 대한 문제로 인해 이민자 혐오가 생겨나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덴마크의 경우 현재 매우 많은 수의 이민자들을 받고 있음에도 서로의 가치를 이해하고 개개인의 특성을 중요시하는 교육제도 덕분에 다른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적어 이민자들과 함께 융합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아직도 동남아시아인에 대한 상대적 우월감을 갖고 있는 한국의 오래된 정서도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교육과 함께 문화를 바꿔나간다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이러한 편견 및 혐오도 살아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존 구멍 - 우리는 어떻게 지구를 구했는가>

 Ozone Hole: How We Saved the Planet>  (2019, PBS)

주요 쟁점

1, 오존층

2, 사회, 환경 문제에 대한 과학자들의 의무

오존층

-오존층은 태양으로부터 발산되는 강력한 태양자외선을 일정 부분 막아주는 방패와 같은 역할을 하며 이를 통해 인류는 지구에 살아갈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이를 전지구적 문제라고 정하여 국제사회는 이를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오존층에 대한 인류의 태도가 항상 이러했던 것은 아니었다.  1930년대 염화불화탄소(CFC)의 개발과 이는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초기 CFC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정용 냉장고, 차량용 에어컨의 냉매 등으로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CFC와 관련한 산업의 크기도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CFC를 매우 안정된 물질, 공기보다 약간 무겁지만 환경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다 등의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1974년 CFC가 오존층을 파괴한다는 주장이 마리오 몰리나 등의 과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다. 하지만 당시 과학자들의 주장에는 오직 컴퓨터, 과학적 이론에 따른 주장만이 있었기에 이를 뒷받침할 근거가 적어 불확실성이 존재했다. 따라서 당시 주장을 제기했던 과학자들은 과학계로부터 외면받게 되었다. 물론 이를 통해 에어로졸  용도의 염화불화탄소의 사용금지가 제정되었지만 아직 부족한 것이 실정이었다. 하지만 1984년 나사의 연구에 따라 오존 감소가 과학적 근거를 배경으로 하여 문제제기 되었고 이는 빠른 속도로 대중들 사시에 이슈로써 대두되었다. 이에 따른 결과가 몬트리올 의정서이다. 몬트리올 의정서는 전 세계적 동의를 받고 실제로 시행된 국제정책이라는 점에서 긍정적 측면을 갖는다. 특히 기존에 문제가 되었던 개발도상국에 대한 규제와 관련해서도 개발도상국의 동의를 받아냈다는 점에서 유일했던 전지구의 실천적 참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의정서를 통해 인류는 오존층의 파괴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고 오존층은 회복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의문이 든다. 물론 이것이 실제 사회적 배경이 적용되지 않은 무지에서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에 이러한 오존층의 파괴로 인한 피해가 백인에게는 매우 적은 양이고 흑인들에게만 많았으면 어떤 방향으로 발전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프리카, 아시아 등 여러 국가가 발전했다고 하더라도 아직 국제정세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백인들이다, 물론 오존파괴가 장기적으로 농업종말을 불러오기에 전지구적 행동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몬트리올 의정서처럼이 아닌 지금의 기후위기 정책들처럼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외부에서 문제를 찾는 방식의 해결책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태평양 국가들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으며 이들의 현재 상황으로 본다면 지구공동체는 확실한 정책을 통해 당장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하지만 개발국들은 이에 대해 안타깝다는 목소리를 내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지만 않다. 물론 이것이 백인과 같은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것을 인종차별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인종차별이 아닌 북반구, 남반구에 따른, 역사적 사실에 따른 불평등에 따른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사회, 환경 문제에 대한 과학자들의 의무

-우리가 흔히 과학자들의 의무에 대해 말할 때는 핵무기와 같은 군사산업의 과학자들을 대표적으로 이야기한다. 이는 과학은 만인을 위한 기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에 따라 생겨난 말이라고 생각하며 실제로 군과학자들의 무기개발로 인한 사망자가 이전 시대에 비해 배로 나타났기에  더욱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해당 다큐에서도 이러한 과학자들의  의무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마리오 몰리나는 당시 CFC의 안정성에 대한 주류 과학계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CFC의 문제점을 제기하였다. 이는 주류 과학이 잘못되었음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당시에는 워낙에 CFC에 관한 산업의 크기가 컸고 따라서 이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과학계에서 무시받기만 하였다. 이러한 역경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계속해서 문제제기를 하였고 이에 대중, CFC산업은 그들을 공산주의 스파이로 몰아가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공산주의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한국과 매우 비슷한 것 같다. 물론 당시 상황이 냉전에 따라 반공주의가 사회의 통제수단처럼 쓰이면 세상이기는 하였지만 당시 한국에서도 주류 권력에 반대하는 주장을 하는 이들을 빨갱이로 몰아간 사례가 매우 많았다.   이들의 주장이 대중에게 받아들여지고 사회운동이 이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모든 사회문제를 이념적인 관점으로만 보던 당시의 생각은 너무 많은 피해자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활동은 결국 몬트리올 의정서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를 통해 CFC는 사용이 금지되고 이에 대한 공로가 컸던 마리오 몰리나 등의 과학자들은 노벨화학상을 받는다. 나는 이것을 비주류과학자들의 실천적 참여가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느 사회, 분야에 가든 비주류 학자로서 목소리를 내고 이를 인정받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주류학자들의 목소리에 기업들이 압박 있다면 이는 더욱더 어려워진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성공해 내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이 묵살되어 지구 공동체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었던 경험이었던 만큼 미래 사회는 이러한 비주류 학자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사회적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과학자들도 이러한 환경 문제에 단순히 논문만을 내기보다는 사회적으로 참여하는, 즉 실천적 참여를 하여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과거를 통해 배우자는 나의 생각이며 이전과 같이 위험을 감수한 상태로 산업의 발전만을 위해 달려가지 말자는 것이기도 하다. 더욱이 지금 현대 사회는 CFC와 같은 물질의 금지를 HFC라는 물질로 대체하고 이것이 실패하면 새로운 물질을 찾아낼 것이며 이 물질은 필연적으로 지구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확률이 높다.  따라서 방금 말한 것처럼 문제의 본질을 외부에서 찾지 말고 내부에서 찾아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과학자들과 참여시민이 보여야 할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Nature obsessed

-연구과정 중 나타나는 시행착오와 이를 통한 결과물, 연구원들에 대한 사회적 영향

주요 쟁점

1, 연구과정 중의 시행착오 및 결과

2, 연구자에 대한 사회적 영향

연구과정 중의 시행착오 및 결과

-우리가 대게 알고 있는 연구는 논문이라는 결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주로 언론 등을 통해 대중에게 공개된다. 따라서 연구과정 중 발생할 수 있는 상황들과 연구를 성공시키기 가지 필요한 노력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해당 다큐는 이러한 연구원들의 삶과 연구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흔히들 말하는 ‘대학원생은 무엇을 할 때든 힘들어 보인다 ‘ 의 이유를 작게나마 알 수 있게 되는 다큐이다.  해당 다큐에서 주인공과 같을 정도로 계속해서 나오는 주인공은 몰골만 보더라도 얼마나 힘든 상황에 처해있는지 예상할 수 있다. 주인공과 같은 랩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백그라운드를 갖고 하나의 목표만을 위해 작업을 지속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에는 하나의 특징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구의 경우 이론적, 지적인 지식을 통해 ‘유레카’를 외치며 결과는 내는 것이랄 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구의 실상은 이론적 지식이라는 배경은 필요하되 계속된 작업, 반복적인 작업을 통해 체화된 숙련을 통해 결과는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즉, 속된 말로 ‘막일‘ 작업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예상하지 못하게 결과가 도출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에 따른 연구원 개개인에 대한 압박감도 상당한 편이다. 이는 자신이 맞게 나아가고 있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안갯속의 한 개인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포기하는 이들이 많이 발생한다. 더욱이 학부, 석사 과정과는 달리 이전에 존재했던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한다는 점은 이러한 부담감을 증폭시킨다. 더욱이 연구의 결과에 있어서도 네이처와 같은 메이저 잡지에 실리지 않는다면 개인으로써 얻을 수 있는 명예가 적어진다는 점 또한 문제이다. 물론 이러한 연구도 결과를 만들어낸다면 연구자 개인의 목표를 이루는 것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보아 과학, 화학계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에 충분히 성취감 있는 작업이다.(개인이 얻을 수 있는 연봉 또한 높아진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의 특성은 여러 불합리한 상황들을 만들어낸다. 연구의 특성상 LAB 안에는 다른 박사, 석사 과정생들뿐만 아니라 지도교수가 함께 있는다. 현 한국사회에서는 이 과정에서 대학원생들에 대한 지도교수의 지나친 권력 남용이 자주 발생한다. 또한 연구 성과에 있어서도 지도교수로 인해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3자의 이름이 적힌다든가의 상황도 발생한다. 이는 대학원생들의 졸업에 있어서 지도교수의 힘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바로 졸업의 결정권자가 지도교수이기 때문이다. 물론 네이처에 실리고 이것이 과학계에 큰 영향을 줄 만큼 영향력 있는 연구였다면 괜찮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들이 이러한 큰 성과를 거두기보다는 세분화된 과학연구 중 작은 일부분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연구가 박사 학위에 적합한지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지도교수의 권력은 그 어떤 스승, 선생보다 큰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연구들이 장기적으로 본다면 결국 인간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쳐왔고 이를 통해 인간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과정 속에서 자신의 정신력, 삶을 포기하고 연구에 몰두했던 이들에 대한 존경 없이는 이러한 일련의 연구들이 개인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미래사회에서는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구자에 대한 사회적 영향

-연구자들에 대한 사회적 영향은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대표적으로 금전적 요인과 연구 그 자체의 특징으로 인한 요인으로 나뉜다. 먼저 금전적 요인으로는 박사과정의 경우 대부분의 연구생들이 20대 후반 이상의 나이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원들에 대한 임금은 현재 다른 직종 대비 매우 낮은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연구자로 하여금 사명감을 요구하는 연구생활에 있어 현타가 오게 할 것이며 연구자로서의 미래를 꿈꾸게 하기보다는 기존의 석사 학위를 통한 임금노동으로서의 꿈을 꾸게 할 것이다. 연구 그 자체의 특징에 의한 요인의 연구 연구는 필연적으로 그 연구의 끝을 스스로 알아차릴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이로 인해 기존에 관계를 지속해 오던 이성과의 관계에 있어 소홀해질 수밖에 없고 연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서로에 대한 믿음에도 현실적인 한계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다큐에서도 한 연구자의 경우 약혼자가 있었지만 계속된 연구의 실패로 박사과정생으로서의 시간이 늘어나자 결국 서로 상의 끝에 헤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즉,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연구자로서의 삶은 사명감, 오기가 없다면 결과를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아무리 한 분야에 흥미가 있더라도 연구자가 단순히 그것을 좋아하는 것에서 끝난다면 결국에는 과정에서의 고난으로 인해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번 다큐 시청은 개인적으로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사람들은 항상 말한다 ’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 하지만 이번 다큐를 통해 깨달은 것은 좋아하는 것은 당연히 요구되며 사명감 또한 필요하며 나의 꿈이 이것에 적합한지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생각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Ai에 관한 다큐

-주요 쟁점

1,  ai 는인간을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

2, 미래의 ai

1, ai는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ai가 인간을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권력을 소유하려는 특징을 갖는다. 따라서 ai가 계속 발전한다면 발전된 ai는 이들의 권력 확보에 있어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ai가 모든 사회 시스템을 대체하는 날이 온다면 이에 따라 과학, 로봇공학 등도 발전할 것이고 인간의 노동은 무의미한 커먼즈에 의한 평등의 시대가 올 것이다. 따라서 권력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ai의 발전을 일정 수준에서 멈추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ai가 모든 시스템을 대체한다고 하더라도 권력을 가진 소수층은 평등 속에서의 계급사회를 만들어낼 것이며 결국에는 ai는 인간의 편의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권력층의 사회 통제 수단으로써 계속 쓰일 것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사회는 많은 방향으로 발전을 거듭하며 이에 따라 여러 분야에서 변화가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대표적으로 산업적 변화가 있을 것이며 1차 산업 종사자는 줄어들지만 인간의 창의성 및 대처 능력을 요구하는 직종의 종사자는 많아질 것이다. 이는 ai의 성질 때문에 그런데, ai는 딥러닝과 같이 많은 정보 속에서 해당 정보를 바탕으로 하여 사건을 예측하거나 계산한다. 이는 많은 영역에서 쓰이며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아닌 chat GPT부터 크게는 애플의 시리 등이 존재하며 우리 일상의 다양한 영역에서 사용된다.  하지만 ai는 아까 말한 바와 같이 기존의 정보에서 모든 것을 바탕으로 하기에 인간이 창조해 내는 미술품, 시, 음악 등과 같은 것들은 인간을 대체할 수 없다. 물론 일각에서는 현재 많은 ai가 노래를 작곡하고 미술품을 그린다는 점에서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거짓이라고 생각한다. 음악, 미술품은 그 자체로 독창성을 가진다. 물론 여러 예술품들이 기존의 그림, 특징 등을 반영한 그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고흐와 같이 아예 새로운 영역을 창조해 내는 창의성은 ai가 절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특이성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일련의 이야기들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ai는 인간을 대체할 수 없으며 권력층의 사회 통제 수단으로 계속 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Ai를 통한 대중의 정보 수집은 너무 간편하고 이에 대한 규제 방안도 제대로 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2, 미래의 AI

아까 말한 바와 같이 미래의 AI는 사회적으로는 지배권력층의 사회통제 수단으로 쓰일 것이며 개개인의 내면적으로는  과도한 정보로 인해 개인적인 삶을 파괴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의 시작은 중국의 사례를 통해 시작되었다. 중국의 경우에는 대중을 통제하는 수단으로써 AI를 활용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발전한 AI를 활용한다면 이러한 광범위한 통제도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중국의 사례에서 단순히 겁을 먹기보다는 이것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대중의 태도이다. AI기술이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많은 분야에서 사용되고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든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받아들이기만 하면 중국과 같은 사례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 대중은 AI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갖고 바라봐야 하며 이를 통해 미래의 AI의 발전으로 인해 발생할지도 모르는 인권침해와 같은 상황도 법제화를 통해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법제화가 당장에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본주의를 따르고 있는 대한민국의 최우선 과제가 성장이라는 것이다. 이는 5차 산업혁명의 주요 과제가 AI를 통한 성장이라는 것에 있으며 만약에 이러한 규제 등이 법제화된다면 기업은 어쩔 수 없이 기술 발전을 늦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기 개발에 있어서도 무기는 인류의 평화를 위한 균형을 위해 사용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인류를 파괴하고 다른 이를 억압하는 도구로써 쓰일 수 있다. 따라서 과학자들도 무기의 개발에 있어 규제를 따르고 일정 수준 이상으로는 스스로 개발을 억제하는 모습을 보인다. Ai도 이와 마찬가지로 이는 인류의 편의와 모두의 평등을 위한 커먼즈와 같은 사회체제에 활용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인류를 억압하고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써도 쓰일 수 있다. 따라서 AI도 무기 개발처럼 어느 정도의 선을 규제 등의 법제화를 통해 만들어놓고 이러한 선 안에서 발전을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무조건적인 규제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앞서 AI의 부정적인 면을 말한 것과는 달리 실제로 AI는 의료, 정신, 산업 분야에서 큰 역할을 할 것이며 이는 인류의 발전에 큰 영향을 도움이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 정치적 문제와는 별개로 다른 문제도 존재한다. 바로 교육의 문제이다. Ai는 그 활용성이 높아 교육격차 해소, 다른 개념의 교육 차별화 등 여러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이에 대한 예시로 chat GPT가 있다. Chat GPT는 학생들이 단순한 과제의 주제, 개념만 도입하더라도 과제물을 작성해 주고 실제로 이것의 퀄리티가 높다는 특징을 갖는다. 하지만 교육의 목적이 무언인가. 여러 차례의 과제, 수업을 통해 개인이 자신의 가치를 갖고 글을 쓰고 삶을 살고 있게 해 주며 개인적으로도 매우 큰 지적 성장을 가져온다. 하지만 이러한 chat GPT의 장점은 학생들이 단순히 정보를 대입하고 실제로 강의에서 자신의 창의력, 가치관을 갖고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 물론 이것이 chat GPT를 쓰는 학생 개개인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적인 사회가 무엇인가?, 대중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이를 개인에게서 죄를 찾기도 하지만 사회 구조의 변화를 통해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 사회이다. 따라서 사회가 나서 아까 말한 바와 같이 AI가 아직 구현해내지 못한 인간의 상상력과 같은 부분을 인간의 장점으로 삼고 학생들이 chat GPT를 쓰지 않고도 과제를 작성하고 개인의 능력 향상을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제도를 통해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일련의 생각들은 기존에도 갖고 있는 것이었지만 이번 강의를 들으며 정확한 개념, 사회에서의 활용도 등에 대한 정보를 얻고 나니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서 근거, 나 자신만의 가치관을 갖고 비판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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