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적인 성미다. 식재료는 그때그때 프렙하는 걸 즐기지만, 이 새벽 5시에 양배추를 찔 것은, 계획에 없었다. 며칠 만에 다시 꺼내온 두툼한 차렵이불을 정리하곤 일어났다. 배가 고팠다. 6시쯤 1-2시간 산책을 다녀와서 먹을 요량으로 차제에 양배추를 삶아놓고 나가기로 한 것.
배추 1통을 쌈싸먹을 크기로 요리조리 한겹 한겹 조심스럽게 때론 거칠게 벗겨냈다. 얇게 벗겨내는 일은, 아주 사소하고 시시한 것 같으면서도 일순간 몰입하게 하는, 움직임 명상이 되어준다. 그렇게 넓적하게 잘 벗겨진 것은 겹겹이 차곡차곡 쌓아올린 뒤 불을 올려두었고 그 사이 조금 단단한 부분들은 착착 썰어서 한 번에 삶을 요량이었다.
보통이면 두 세번 먹을 분량을 소분해서 프렙하는데, 이번엔 양배추 1통을 소분하고 나니 전체 다 삶아놓아버리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3차례를 반복하고 나서야 양배추 쪄내는 일을 마쳤다. 양배추를 찌고 삶은 물이 아쉬워 그 물을 유리병에 담아 냉장고에 두었다. 세수를 해볼 참인데, 왠지 피부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해봐서 아니면 말고다.
그 반복된 행위가 전혀 힘들지 않았는데, 실은 그동안 아무 생각이 없었다. 어떤 생각도 나지 않았다면 설명이 될까. 몰입의 순간이었다. 그렇게 4군데 스테인리스통에 야물게 담고 나서야 제 정신을 찾은 기분이었다. 무언가에서 깨어난 듯한 몽환적인 느낌. 고요한 순간이다.
잠을 푹 잘자고 일어났을 때, 그러고 난 뒤의 새벽 5시는 이토록 평화롭다. 여전히 고요하고 동트기 전까지 생각보다 많은 걸 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의 경우 그렇다고 무언갈 막 하려 애쓰지 않는 시간인데, 책을 몇 장 읽거나 글쓰기를 하거나 프렙을 하거나 명상하거나 걷는 시간이다.
새벽 5시 30분에 공원을 나가면 나보다 먼저 나와 걷거나 뛰는 사람들이 있다. 말은 하지 않아도 그 시각 사람들의 존재가 든든하달까. 감사하달까. 아직은 새벽5시 30분에 집밖을 나가면 어두컴컴한데 동트기 전까지 공원에 있는 사람들 덕분에 무섭지 않다. 고마운 일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한 시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연결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실은 늘 도움이 되고 있구나. 우린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새벽5시에 양배추를 찌다가 기어코 일으켜진 한 생각이, 한 점이, 하나의 느낌이 기어코 날 글쓰기로 이끌었다. 이 글쓰기가 끝나면 주섬주섬 패딩을 껴입고 걸으러 나갈텐데 그렇게 한참을 걷다보면 날이 밝아온다. 그 동틈을, 날이 밝아옴을 나는 매일 아침 공짜로 관람한다. 자연이 주는, 우주가 주는 선물이다.
그렇게 서서히 걷히는 하늘을 볼 때, 황홀경이 내게 온다. 어두컴컴했던 하늘이 아주 서서히 걷히는데, 그 걷힘이 금세 파란 하늘로 바뀌는 것. 마치 커튼이 걷히고 막이 펼쳐지는 듯한, 아침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는 별의별 환희를 느낀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살아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내겐 이런 것들이 명상 다름 아니다.
그러다 하늘과 대화하기도, 그렇게 생의 의지를 다진다.
잔잔했다가도 거세게 몰아치는 폭풍우, 파도...는 내게 숙명이 되어버린지 오래.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된 순간 받아들이는 것이 유익하다. 삶에서 오는 비바람, 자기 만의 고뇌, 상처, 슬픔, 번뇌, 카르마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며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우주 안에서 자기 만의 투쟁을 하고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됐다. 완전하게 사라질리 없다는 사실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아차리는 일이다. 고요를 어떻게서든 내게로 데려오는 일이다.
새벽5시에 양배추 1통을 찌고선 나는 여느 날처럼 걸으러 나간다.
동트는 하늘을 만나고 대화하고 눈을 맞춘다.
자기 생의 의지를 다지기 위해.
내 안의 빛을 만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