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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lievibes Nov 17. 2024

리틀 마이 키친

아쉬운 것 중 하나는, 파리 살 때 오븐도 낡고 냉장고도 낡고 모든 것이 낡았지만 참 소박하고 무언가 앤틱하고 빈티지하면서 내가 숨쉴 곳이기도 했던 나의 부엌에서 이것저것 요리한 걸 사진으로 많이 담아 둘 걸.하는 것이다. 그 바이브, 그릇, 풍경 모두가 나만의 요리를 펼치기에 모든 것이 최적이었는데, 왜 멀리 보지 않았을까. 왜 나아가지 못했을까. 왜 그땐 그런 것들로 나의 우울과 방황으로 풀어낼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너 그때 요리 안하고 뭐했니?"하는 아쉬움. 씁쓸함.이 있다.


요리할 때 가장 신나하는데 요리는 여전히 내겐 일상이자 삶이다. 사랑 가득 담아 만든 음식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어줄 때 날 위한 요리보다 타인을 위해 요리할 때 더 큰 만족감을 느낀다. 손이 큰 편이라 대접하는 일이라면 양껏 넉넉히 한다. 남기면 또 먹으면 되고 부족한 것보다, 부족해 보이는 것보단 넉넉하게 해두는 편이 좋은 성미다.


내 요리엔 레시피가 없다. 계량도 없다. 감으로 하는데다 정말이지 대중없다. 그래서 정말이지 나만의 요리.가 된다. 과정 자체도 즐거울수밖에 없는 게 그때그때 떠오르는 대로 즉흥적으로 직관적으로 하기 때문에 재밌다. 내가 이토록 창의적인 사람이었던가.할만큼 정말이지 맛도 모양도 그렇게 나온다. 그러다 예상치못하게 정말 맛있는 맛.이 나올때, 주변사람들로부터 큰 호응이 있을 땐, 잊지 않기 위해 기억을 더듬어 메모해둔다.


한 번은 파리지엔느 친구 제시카가 초대한 저녁식사에서 카리브해식 부야베스를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남은 걸 집에 싸가 다음날 먹었는데도 더 맛있어져 감탄하며 먹었었다. 그녀 어머니가 카리브해 출신이었는데 이뿐만 아니라 꺄눌레며 버터 쿠키며 소울 넘치는 그녀의 음식솜씨는 여전히 기억하고 싶은 맛이다.


파리 현지 친구들에게 가장 인기 많았던 한국 요리는 잡채와 야채전이었다. 술은 와인과 소주였다. 이렇게 또 다시 추억은 방울방울.이 된다.


가장 자주 해먹던 음식은 파스타 아니면 버터 가득 바른 로스티드 치킨과 감자구이였다. 치킨이 오븐에서 제대로 구워지는 동안 나오는 기름으로 익어가는 감자를 정말이지 사랑했다.    



추억을 더듬어보니 그 시절 요리를 정말이지 몰입해서 해볼 것을. 그렇게 한참을 돌고 돌아 나는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무얼 할 때 행복한 사람인지. 나는 왜 그것을 좋아하는지. 나는 왜 그것을 해야하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참으로 나란 사람... 아쉬움도 많은 사람인 걸 인정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는 걸. 하면 된다. 이런 방식으로 지난 아쉬움을 시작.으로 바꾸어 놓는다.

 

마이 리틀 키친.이라는 설명이 가장 적확한  시절  키친. 새삼 그립고  그리운  무얼까. 비오는 파리의 나의 부엌은 낭만  자체였다. 함석지붕  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절로 음악이 되어주었고 모노프히나 프헝프히 마트에서   와인  병에ㅡ 치즈, 트라디시옹 드미 바게뜨, 소시쏭, 버터면 충분했다. 이보다   낭만은 없었다.


오븐 가까이에 앉아 있으면 그 열기가, 온기가 날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아침이면 캡슐 커피를 내려 먹었다. 꼭 미엘(꿀)을 넣어 먹었는데 그렇게 티와 커피는 언제곤 내 기분을 소생시켜주는 것이었다. 보약과도 같은 것이었다.


화이트 와인 한 병과 제육볶음 거리를 장바구니 한가득 사왔다. 화이트 와인 하나 들고 내일 점심 언니네로 해갈 것인데, 곧장 와서는 재료를 다듬고 양념하는 과정이 얼마나 즐거운지. 미세하게나마 또 어떤 새로운 맛을 구현할지. 사실 요리하는 그 모든 과정이 설레고 기대되는 순간들이다. 있는 귤도 스퀴즈해서 즙으로 넣었고 양념이 푹 잘배이도록 스테인리스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었다.


누군가에게, 내가 아닌 타인에게 무언가를 대접한다는 건 실은 내 자신에게 더 큰 감동과 기쁨을 준다. 타인을 감동하게 하고 기분좋게 하는 일은 실은 나 자신을 감동하게 하고 나 자신을 기분좋게 하는 일이다. 같다.


그러니 이 모든 과정과 준비가 결국은 나를 위한 거란 걸. 요리의 매력이란 그런 것이다.


그렇게 뚝딱 하고 나니, 자연스레 글쓰기가 하고 싶어졌다. 파리 그 시절 나의 작은 부엌이 생각났고 마이 리틀 키친.이라는 문장이 직관적으로 떠올랐기 때문. 내 안에서 마치 "그래 이거다. 제목은 마이 리틀 키친!"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늘 그렇듯 요리는 사랑이다.

매일 요리하는 나는, 실은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스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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