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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IND WORKS Nov 21. 2024

Reelay Review 10 : 패스트 라이브즈

셀린 송 [패스트 라이브즈] 사운드트랙

Reelay Review 10

PAST LIVES

패스트 라이브즈

우리가 인생에서 겪는 대부분의 인연은 곁에 머물렀으면 하는, 운명이길 바라는 떠나갈 우연입니다.

우연과 운명 사이에는 인연이라는 다리가 존재합니다. 인연이라는 그 다리는 물리적인 거리와 관계없이 무한히 연속됩니다. 이번 생을 하나의 전생으로 바라본다면, 다음 생의 인연이 될 사람들을 현생에서 더 소중하게 꾸려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비록 결론이 운명이 아니라 할지라도.



릴-레이 리뷰 열 번째 영화는 셀린 송 감독의 데뷔작, [패스트 라이브즈]입니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어린 시절 한국에서 애틋한 감정을 나누었던 나영(노라)과 해성이 20여 년간 엇갈린 인연 끝에 재회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노라는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며 어린 시절 첫사랑 해성과 멀어졌고, 이후 뉴욕에서 작가로 살아가며 남편 아서와 결혼합니다. 해성은 한국에서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던 중, 노라를 만나기 위해 뉴욕을 방문하게 되고 노라와 해성, 그리고 아서는 한 자리에서 서로의 관계를 마주합니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에서는 ‘인연’이라는 단어가 중요하게 등장합니다. 인연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과 운명을 뜻하며, 영화는 이 단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셀린 송 감독은 [Past Lives]라는 제목에 대해 '우리가 이루지 못한 것들, 그로 인해 얻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Past Lives'를 직역하면 '과거의 삶들'이고, 과거의 삶이란 불교 사상에서 이야기하는 '전생'의 인연을 의미합니다. 과거의 삶에서 연이 닿았던 사람들이 현생에서 다시 그 연이 이어진다는 운명적이고 보편적인 믿음으로, 노라와 해성의 관계는 이러한 인연의 형태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인연이라는 단어를 과거로부터의 연결과 현재의 선택이라는 두 가지 측면으로 바라봅니다. 노라와 해성의 관계는 어린 시절 경험했던 정서적 유대감이 연속되어 각자의 시간과 삶 속에서 서로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들고, 아이러니하게도 재회를 통해 진정한 이별을 하게 됩니다.



Past Lives Cassette Tape 01

패스트 라이브즈 삽입곡 카세트테이프

Music From The Motion Picture

Past Lives Soundtrack Cassette Tape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에는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이외에, 8곡 정도의 삽입곡이 사용되었습니다. 정말 짧게 지나가는 배경음이나 효과음이라 나온 줄도 몰랐던 음악도 있지만 영화에서 오리지널 스코어만큼이나 감정을 풍부하게 해주는 음악들이 있었기 때문에, 영화에 삽입된 음악들로만 구성된 앨범이 발매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직접 만드는 수밖에 었었습니다.

Past Lives Soundtrack Cassette Tape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 삽입곡 목록을 메모해 플레이리스트로 제작했습니다. 라이선스 문제로 스트리밍이 되지 않는 곡 몇 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들어볼 수 있고, 영화 초반에 주변음으로 깔렸던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이니었음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곡 ’Quiet Eyes‘는 영화의 엔딩곡으로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에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Past Lives Soundtrack Cassette Tape
Past Lives Soundtrack Cassette Tape

커버 이미지는 뉴욕에서 재회한 노라와 해성이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사용했고, J카드 내부에는 이별의 순간이 담긴 사진과 영화 오프닝 씬에 사용된 아서와의 삼자대면 장면을 사용했습니다. 노라와 해성의 시선이 교차하는 모습이 도드라지는 사진을 위주로 사용해 영화에서 그려지는 둘의 관계성을 강조했습니다.


Past Lives Soundtrack Cassette Tape

[Track List]


Side A

1.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2. Hey That’s No Way To Say Goodbye

3. Nice

4. Blazes Away


Side B

1. Officer Of The Day March

2. Don‘t Look Back

3. You Know More Than I Know

4. Quiet Eyes


https://music.apple.com/kr/playlist/past-lives-tape/pl.u-xlyNNYkCA438JM



Past Lives Cassette Tape 02

패스트 라이브즈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카세트테이프

Past Lives Original Motion Picture Soundtrack

Past Lives Soundtrack Cassette Tape

영화 패스트라이브즈의 사운드트랙은 스트리밍 플랫폼의 커버와 피지컬 앨범의 커버의 디자인이 다릅니다. 음원버전은 영화에서 나영(노라)과 혜성이 뉴욕에서 재회하는 모습이 담긴 스틸을 사용했고, 바이닐로만 발매된 피지컬 앨범 재킷 커버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국 작가 ‘Na Kim'의 그림으로 작업되어 있습니다.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카세트테이프는 후자인 Na Kim 작가의 그림을 활용해 작업해 봤습니다.

Past Lives Soundtrack Cassette Tape
Past Lives Soundtrack Cassette Tape

Na Kim의 커버 아트는 나영과 해성의 시선을 통해 '인연'이라는 영화의 테마를 엿볼 수 있습니다. 간결하면서도 상징적인 이미지를 통해 영화가 다루는 과거와 현재의 연결, 그리고 그 사이에서 형성된 감정을 잘 시각화한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미묘한 감정을 추상적인 디자인 요소로 표현하며, 음악과 영화의 정서를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해주는 것 같습니다.

Past Lives Soundtrack Cassette Tape
Past Lives Soundtrack Cassette Tape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은 밴드 그리즐리 베어의 멤버 '크리스토퍼 베어(Christopher Bear)'와 '다니엘 로슨(Daniel Rossen)'이 작곡을 맡았고, 서정적이고 미니멀한 사운드트랙은 러닝타임 간 주인공들의 감정을 더 깊이 있게 전달해 줍니다.

추가로, '샤론 반 에튼(Sharon Van Etten)'이라는 아티스트가 작업한 마지막 트랙 [Quiet Eyes]는 단독 싱글로도 발매되었습니다. 해당 싱글의 커버아트는 나영과 해성이 어린 시절 처음이자 마지막 데이트를 즐겼던 장소인 과천 MMCA에 설치된 이일호 작가의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응시]라는 조각상의 이미지가 사용되었습니다. 서로의 눈을 마주 보고 있는 조각의 모습이 마치 20년 후 뉴욕에서 서로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 나영과 해성의 모습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https://www.na-kim.com/


[Track List]


SIDE A

1. If You Leave Something Behind

2. Crossing

3. You Gain Something Too

4. Do You Remember me

5. I Remember You

6. Across The Ocean

7. Crossing II

8. In Yun

9. We Live Here

10. Why Are You Going to New York


SIDE B

11. Staring at a Ghost

12. Bedroom

13. An Immigrant and a Tourist

14. Eight Thousand Layers

15. See You

16. Quiet Eyes


https://music.apple.com/kr/playlist/past-lives-tape/pl.u-8aAVVZbTXzP4vV?l=en

카세트테이프라는 소재가 지닌 연속성과 과거의 물건이라는 성질이 [패스트 라이브즈]에서 말하는 인연을 설명하기에 적절한 명분이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고 인연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다가 영화의 상황과 겹치는 개인적인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20대 중반, 엄밀히 말하자면 첫사랑은 아니지만 누군가를 처음이라면 처음, 깊게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전역 후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만나게 된 사람이었고, 처음엔 손님으로 만났지만 후에 함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같이 일을 하며 호감이 생겼고, 정식으로 연애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서로에 대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가까이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이 관계에 대한 정의를 확실하게 내리고 싶어 졌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연애를 시작하기에는 아직 마음의 여유가 부족한 상태였고, 그렇게 이별 아닌 이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정리가 끝나갈 무렵, 서로 다른 상대와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쯤 뒤, 다시 혼자가 되어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던 중, 익숙한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영화 보자."

여보세요라는 말도 꺼내기 전에 불쑥 들려온 영화 보자라는 말에 얼떨결에 대답을 했습니다.

"지금?"

"응. 지금 너네 집 앞으로 갈게."

그렇게 영화 한 편을 보고 그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반갑고, 그때의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물을 필요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불과 1년 전, 그렇게 바랬던 그 사람과의 연애를 시작했지만 이 전과는 많은 것이 변해있었습니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삶의 방향 같은 것들이 변해있었고, 과거의 추억과는 다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복학을 해서 다시 학생의 신분으로 돌아간 남자와 이제 막 졸업을 하고 사회초년생이 된 여자의 현실적인 갈등은 야속하게도 본질적인 문제와는 관련 없는 주변의 다른 사소한 요소들로 발현되었습니다. 미성숙했던 자신을 꾸짖을 틈도 없이 이별의 순간은 찾아왔고, 지금 생각하면 잔인하지만 이기적인 이별을 먼저 이야기했습니다. 지금은 또 다른 각자의 인연을 만나 새로운 사랑을 하고 있지만 그때의 시간들이 지금은 [패스트 라이브즈]에서 말하는 전생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번 생에는 여러 우연이 겹쳐 운명으로 끝을 맺지 못한 인연.

특이하게도 그 사람은 음악으로 기억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지금은 삭제했지만 두 번의 만남동안 함께 들었던 음악들을 플레이리스트로 만들어둔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음악들은 과거의 시간으로부터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통로가 되어주었고, 지금은 다시 새로운 플레이리스트를 쌓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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