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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도리 May 24. 2024

혼자 제주도에 다녀왔습니다_2

취향으로 채운 2박 3일의 기록

제주에서의 둘째 날이 밝았다. 오랜만에 느즈막히 일어나서 침대에서 늑장을 부리고는 간단히 아침을 먹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아침은 시리얼이 국룰이다. 얼마만의 첵스초코인가.. 어릴 적에 엄마가 콘푸라이트가 아닌 첵스초코를 사 오면 그렇게 기분이 좋았다.


잠이 덜 깬 눈으로 자리에 앉아 밖을 바라보니 평온한 풍경이 펼쳐져있다. 녹음이 가득한 마당에서 귀여운 맹수 한 마리가 아침 인사를 한다.


고양이인데 사람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첫날부터 졸졸 따라다니는 탓에 고양이털로 거의 샤워를 했다.



아침을 챙겨 먹고 가고 싶었던 카페로 향했다. 제주시 구좌읍의 드립커피 맛집으로도 유명한 '로스터리풀잎들'. 이름부터 감성적이다.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된 곳인데 사장님들이 정말 친절하다.


제주 카페 '로스터리 풀잎들'


커피 맛도 중요하지만 기억에 남는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정'을 주고받는 친절한 응대가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단골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직접 볶은 커피와 쌀머핀을 판매하는 곳인데, 산뜻한 청사과향이 느껴지는 케냐 원두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두팩이나 추가로 구매를 했다.



제주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창가석에 앉아 얼마 전에 생일선물로 받은 책을 읽었다. 눈여겨보고 있었던 책인데 선물로 받게 되니 신기할 따름이다.



책을 발행하는 '시티호퍼스'는 세계 각지의 도시들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비즈니스의 형태를 소개하고 인사이트를 공유하는데, 이 책은 새로운 영감을 주는 도쿄의 신선한 비즈니스들을 소개하고 있다.


책을 읽다 보니 시티호퍼스에 더 관심이 생겨 홈페이지에 들어가 에디터 모집 공고를 확인했다. 아쉽게도 현재는 마감상태..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흥미로운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일이 의미 있고 값지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좋은 기회가 생긴다면 에디터로 활동해보고 싶다.




점심시간이 되어 근처에 위치한 작은 식당으로 향했다. 혼자 여행을 오면 주로 가성비 좋은 백반을 먹는다. 나이가 쌓여갈수록 쌀밥이 주는 위대한 힘을 몸소 체감하는 중이다.


고등어구이에 제육볶음이 더해진 백반 메뉴가 무려 9천 원. 제주도의 놀라운 물가에 감격하게 되는 순간이다. 이런 소박한 식당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혼자 다니는 여행의 묘미다.


9천 원짜리 백반집 '재연식당'


든든하게 밥을 챙겨 먹고 여행 중 처음으로 바다를 보러 갔다. 요즘에는 카페와 공간에 관심이 많다 보니 제주도에 와도 바다를 보러 자주 가지 않는다. 그래도 눈도장 정도는 찍고 와야 하지 않겠는가.


날이 조금 흐릿했지만 청량한 에메랄드빛 파도가 잔잔하게 펼쳐졌다. 광활한 자연을 보고 있으면 새삼 나 라는 존재가 얼마나 작은지, 초연해지고 겸손해지는 기분이 들곤 한다.



짧은 감상을 마치고 다음 행선지인 '섭지코지'로 향했다. 10년 정도 되었을까, 제주도에 처음으로 가족여행을 왔었다. 누나가 결혼하기도 전에, 내가 취직을 하기도 전에, 지금보다는 훨씬 젊은 모습의 부모님과 섭지코지에 다녀갔었다.


그때 촬영한 동영상을 요즘에도 가끔 추억처럼 꺼내보곤 한다. 그런 추억이 묻어있는 공간에 10년 만에 혼자 다시 오게 되니 묘한 감정이 교차했다.


지금도 화목한 우리 가족이지만 누나는 결혼을 하고 나는 분가를 하고, 그때와는 확연히 다른 환경에 살고 있다. 매 순간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항상 인지하고 현재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보는 섭지코지는 여전히 평온하다. 푸른 목초지에서 풀을 뜯는 말들이 보이고, 바다 너머로는 솟아오른 선녀바위가 보인다. 잠시 머리를 비우고 산책하기에도 정말 좋은 길이다.


제주도 '섭지코지'


섭지코지에서 조금 더 안쪽으로 향하면 '글라스하우스'라는 공간이 나타난다. 유명한 건축가 안도다다오의 작품으로, 오늘 섭지코지를 찾은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건축가 안도다다오의 '글라스하우스'


동쪽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정동향의 구조로, 수평으로 길게 뻗은 해수를 액자 같은 프레임을 통해 바라볼 수 있다. 안도다다오 건축물의 특징인 노출콘크리트로 된 구조도 감상하는 재미를 더해준다.



서서히 저물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제주에서의 둘째 날을 마무리했다.

빠르게 지나가는 2박 3일의 일정이 벌써부터 아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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