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두 번의 큰 지출이 있었다. 한 번은 영상 편집을 위해 맥북을 구매했을 때, 그리고 두 번째는 이번 카메라 구입 건이다. 꽤 오래전부터 사진 찍는 걸 좋아했었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카페에 가든 여행을 가든, 좋은 순간을 간직하기 위해 사진으로 기록하는 걸 참 좋아했다. 순간을 온전한 나만의 취향으로 담아내는 과정이 참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다 작년부터 카페투어를 다니며 사진을 좀 더 본격적으로 찍게 되고, 더 나은 결과물을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레 카메라에도 관심이 생겼다.
수입이 안정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몇 백만 원을 호가하는 카메라를 구입한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직감적으로 나는 알고 있었다. 앞으로도 쭉 사진을 찍을 것이라는 걸. 그게 업이 되든 취미로 남든 말이다.
구입을 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생전 처음 제대로 들여다보는 카메라의 종류는 참으로 다양하다. DSLR부터 미러리스, 소위 말하는 똑딱이 카메라까지. 그리고 그 안에서도 종류가 나뉜다. 브랜드도 다양하고, 풀프레임 바디인지 크롭 바디인지, 렌즈는 또 어떤 걸 사야 할지, 결심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되려 머리 아픈 학습의 시작이랄까.
몇날며칠을 유튜브와 네이버를 뒤적여가며 정보를 수집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게 된 작가님들에게 조언을 구해가며 나에게 딱 맞는 카메라와 렌즈를 찾았다. 중고로 구입하면 100만 원 초중반대에 구입할 수 있는 나름 합리적인 녀석이었다.
중고로 매물을 구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적당한 매물을 찾아 드디어 나에게도 카메라가 생겼다. 냅다 여자친구에게 카메라를 자랑했더니 재밌게 찍어보라며 카메라 가방을 선물로 보내준다. 여자친구 하나는 정말 잘 만났다. 팔불출 같지만 인생 최고의 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카메라를 들고 난생처음으로 출사를 나가봤다. 인스타그램에서 자주 보이는 말랑말랑한 감성사진 있지 않은가, 그런 걸 한 번쯤 남겨보고 싶었다. 노을질 무렵 집에서 가장 가까운 양화한강공원으로 향했다.
봄과 가을이면 사람들로 붐비는 한강공원의 여름은 한적함 그 자체다. 인적이 드물어 수풀이 우거져있고 가끔 낚시나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만이 조용하게 오고 간다. 여름에 오게 된 건 처음인데, 익숙한 풍경과는 다른 느낌이라 오히려 흥미로웠다.
잠깐의 감상을 마치고 출사를 나왔으니 신중하게 카메라를 들어본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카메라로 자유롭게 구도를 잡아 셔터를 연신 눌러본다.
"재밌다, 너무 재밌다."
8월의 한강은 아름다운 풍경과는 대비될 정도로 무더운 열기를 뿜어댔다. 그럼에도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핸드폰으로 찍는 것과는 확연하게 다른 맛이다. 이래서 출사를 다니는구나, 사진을 찍다 보니 자연스레 공감이 된다.
그렇게 어둠이 깔릴 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카메라와 셔터 놀이를 했다.
사진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가 뭘까. 내가 생각하기로는 정해진 답이 없어서인 것 같다. 아무리 유명한 사진작가라고 한들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사진을 찍는 구도든, 색감 보정이든, 정해진 답은 없다는 것이다. 그저 자신만의 취향으로 결과물을 만들어 낼 뿐이다.
이런 자유분방함과 열려있는 생각들이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출사를 마치고 며칠 뒤에는 카메라를 들고 카페로 향했다. 평소 좋아하는 동네인 보문동으로 향했다. 보문동은 언제 와도 분위기가 참 좋다. 정겨움과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풍경에, 아늑한 카페들도 많이 자리하고 있다.
역 바로 근처에 위치한 카페 '내음성'을 찾았다. 특유의 편안한 분위기로도 유명한 곳인데, 작업을 하거나 조용히 책을 보거나 각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장님께 촬영 양해를 구하고 조용히 사진을 몇 장 찍어봤다. 실내 공간을 촬영하는 것은 야외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제한된 공간에서 촬영을 하다 보니 빛과 조명, 구도를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참 중요해진다.
카메라를 사용하니 핸드폰보다 컨트롤할 수 있는 요소들도 더 많아지고 심도 표현도 훨씬 디테일하다. 개인적으로 야외보다는 인테리어 촬영에 더 흥미를 느껴, 앞으로도 열심히 포트폴리오를 쌓아가고 싶다.
카메라를 구입한 지 오늘로 딱 일주일이 되었다. '왜 이제야 샀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재미있게 사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테리어 사진작가'라는 분야에도 관심이 생겨 사진을 더 열심히 찍어보려고 한다.
이렇게 또 하나의 새로운 경험의 문이 열렸다. 이 과정은 또 어디로 연결될까, 아직은 뚜렷하지 않은 목표에 집중하기보다, 즐길 수 있는 현재에 집중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또 재밌는 기회들이 찾아오지 않을까.
카메라 구입을 기념하며 브런치에도 글을 남겨본다. 앞으로 사진 생활의 기록도 함께 남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