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한 편의 단편영화, 아니 장편영화와 같다
요즘은 자기 전에 책을 읽는다. 이래저래 디지털 기기들을 가까이하고 사는 요즘, 자기 전 잠깐의 독서가 디톡스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책장을 이리저리 살펴보니 문득 몇 달 전 구입한 시집 한 권이 눈에 들어온다. 예능 방송에 출연한 나태주 시인의 이야기를 듣고 감명받아 구매했던 책이다. 그로부터 한 세 달은 지났을까, '감명'이라는 표현이 무색하리만큼 여전히 표지가 빳빳한 새 책이다.
읽는 행위를 좋아하지만 사실 시를 읽는 걸 즐겨하지 않았다. 평소 즐겨보는 에세이나 자기 계발서와 달리 심리적인 장벽이 느껴졌다고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집은 한 편 한 편 짧지 않은가, 자기 전에 읽기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읽기 시작한 시 한 편에서 생각지 못한 잔잔한 울림이 전해진다.
나태주 시인이 유명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작품을 읽어보니 마치 단편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아니, 장편영화를 굵직하게 압축하여 훑어보는 듯한 기분이다.
짧은 글만으로 장면을 상상하게 하고 감정이 떠오르게 하고 공감을 자아낸다니, 평범해 보이는 단어들의 이면에는 많은 것들이 응축되어 있는 듯했다.
시의 주제는 주로 가족과 사랑, 평범한 일상 속의 행복, 그리고 살아오면서 느낀 것들에 관한 것이다.
화려하지 않은 담백한 어휘 속에 마음을 녹여내고, 고스란히 다른 이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학창 시절 언어 과목에서 매번 발목을 잡았던 '시‘의 아름다움을 이제야 체감하는 기분이다.
한동안 시를 읽는 즐거움을 이어가 보려고 한다. 한편으로는 ‘세상엔 내가 놓치고 사는 즐거움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더 많은 것들을 열린 마음으로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일까, 자연스러운 것일까,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느껴지지 않던 것들이 느껴지고, 좋아하지 않던 것들이 좋아진다.
시를 읽는 것이 나에게는 그렇다.
그렇게 취향과 가치관이 쌓여가는 것이 아닐까.
두서없는 글을 나태주 시인의 시 한 편으로 마무리한다.
[미루나무 길]
여름날 한낮이었지요
그대와 둘이서 길을 걸었지요
그대는 양산을 받고 나는 빈손으로
햇빛이 따가우니 그대
양산 밑으로 들어오라 그랬지만
끝내 나는 양산 밑으로
들어가지 않았지요
그렇게 먼 길을 걸었지요
별로 말도 없었지요
이런 모습을 줄지어 선
미루나무들이 보고 있었지요
그런 뒤론 우리들 마음속에도
미루나무 줄 지어선 길이 생기고
우리들도 미루나무 두 그루가 되었지요
오래 오래 그렇게 되어버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