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별난 30대 퇴사자의 삶
퇴사 후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카페투어를 다니며 만난 사장님들, 새로운 모임과 일을 통해 만나게 된 사람들, 브런치와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며 알게 된 사람들까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종종 받은 질문이 있다.
"부모님이 퇴사를 말리지는 않았어요?"
당연히 말렸다. 몇 개월간 퇴사 문제를 놓고 부모님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줄다리기를 했었다. 처음으로 부모님께 퇴사를 말씀드리던 날, 그날은 모처럼 동네 돈가스집에서 외식을 하던 날이었다.
좋아하는 돈가스는 입에 대지도 못한 채 어머니와 설전을 주고받았다.
퇴사하려는 아들과 그런 아들에게 세상 물정을 가르쳐주려는 어머니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멀쩡하게 대기업에 다니던 아들이 하루아침에 퇴사를 하고 맨땅에 헤딩을 하고 싶다고 하니 말리지 않을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세상의 모진 풍파 속으로 제 발로 뛰어들어가려는 아들을 보고 어머니는 필사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의무감이 드셨을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이런 반응에 대해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완강한 부모님의 모습에 적잖이 속이 상했었다. 회사를 다니며 느끼는 심정과 앞으로 살고 싶은 방향에 대해 소상하게 밝히고 나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이해해주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유예기간이 필요했다. 한 달 정도 시간을 더 가지며 퇴사 이후의 삶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고민해 보고 다시 이야기를 해보는 것으로. 돈가스 사태는 우선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전화위복이라고 했던가, 한 달이라는 유예기간을 가지며 나도 앞으로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고민하는 시간을 보냈다.
타임라인을 그려 시간표도 짜보고, 도전하고 이뤄보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자세히 적어내려 갔다. 그 과정을 통해 퇴사에 대한 확신과 새로운 도전에 대한 열망을 키워갔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했던가.
앞으로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성, 살면서 이루고 싶은 것들, 추구하고 싶은 것들,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바탕으로 부모님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세상이 정해주는 기준이 아닌 내가 추구하는 의미 있는 방향성을 가지고 살고 싶다는 말에, 끝내 부모님은 퇴사 결재란에 도장을 찍어주셨다.
사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퇴사를 하기 전 나의 계획은 여전히 맨땅에 헤딩 수준에 가까운 지극히 이상적이고 원론적인 것들에 불과했다. 러프한 방향성이 있긴 했지만 부모님 입장에서는 여전히 꿈과 희망만이 가득 찬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들리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그 안에서 아들의 진심을 봐주신 것인지, 나의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해 주신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로부터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소소하게 뭔가를 하나씩 이뤄내는 모습을 보며, 부모님은 누구보다 큰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신다.
인스타그램 계정 팔로워 수는 나보다도 더 관심이 많고, 써 내려간 브런치 글들은 부모님 지인들에게 공유하는 소소한 자랑거리가 되었으며, 프리랜서로 하게 된 일에 대해서도 기특한 눈으로 봐주신다. 나로 인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다며 머쓱한 칭찬까지 해주신다.
그러고는 농담처럼 이렇게 말씀하신다.
"누구 아들인지 참 별종이다, 별종이야ㅎㅎ"
주체적인 삶을 찾아 회사 밖에서 이것저것 시도하는 아들의 모습이 신기하면서 기특하기도 하고, 응원해주고 싶기도 한 부모님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여전히 방황하는 30대로서 보내고 있는 2024년의 가을. 어느 때보다 유별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 속에 수많은 삶의 모습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많은 사람들이 유별나게 살았으면 좋겠다. 한 번쯤 유별나게 살아봐야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의 모습이 뭔지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선택을 통해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삶을 기대하며 산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값지지 않을까.
유별난 나의 내일과, 모든 별종들의 내일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