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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평범한 사람인 줄 알았다

by 삼도리


평범하다. 무난하다. 특별하진 않지만 모자라지도 않은, 둥글둥글한 모습. 이런 것들이 나를 표현하는 단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어릴 적부터 나는 겁이 많았다. 놀이터에 가서도 미끄럼틀이나 그네 같은 기구들을 선뜻 타기가 겁이 났다. 한참 지나서야 그런 것들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그마저도 다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은 '안전제일'을 떠올리며, 손에 힘을 꽉 쥔 채로 딱히 즐겁지 않은 놀이기구를 탔던 기억이 난다.



근데 또 생각해 보면, 어떤 때는 새삼 대범했다. 아직까지도 부모님을 통해 회자되는 나의 아주 어릴 적 이야기인데, 누나와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중에 동네 형들이 누나에게 장난을 쳤던 모양이다.


어떤 사명감에 불타올랐는지 모르겠는데,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내가 손에 오줌을 묻힌 채로 형들을 쫓아냈다.(물론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의 아주 어릴 적 이야기다..) '얘는 어릴 때 그렇게 용감하고 대담했다'며, 요즘도 가족 모임을 할 때면 잊지 않고 이 이야기를 꺼내들곤 한다.




30대 중반을 향해가는 지금, 지난 시절들을 돌아보면 내 성격은 참으로 입체적이었다. 때로는 소심해서 누구에게 말도 못 붙일 정도로 조용했었고, 때로는 반에서 오락부장을 할 정도로 앞에 나서고 관심받기를 좋아했다. 이제는 이런 양면적인 성격을 상황과 필요에 따라 적당히 꺼내 쓸 수 있는 유연함이 생겼지만, 여전히 스스로가 일관적이지 않을 때가 많다고 느낀다.


성격처럼 내 삶의 목표도 참으로 입체적으로 변해왔다. 학생때와 사회생활 초기에는 시키는 일을 참 잘했다. '좋은 학교에 가라', '좋은 직장을 가져라'. 시키는 일을 묵묵히 하는 것이 참 편했다.


모두가 내 손에 목표를 쥐어줬기에 그걸 향해 달려가기만 하면 됐다. 이유는 딱히 궁금하지 않았다. 그냥 그건 '당연한' 거였으니까. 학생은 공부를 하고 졸업했으면 좋은 직장에 가야지. 그래야 사회 구성원으로서 마땅한 '몫'을 해내는 것이니까.




문제는 거기서 발생했다. 삶의 목표에 내가 없었다. 좋은 구성원이 되고 누군가의 기대에 부합하기 위해 살아가는 삶을 살아갈수록 내 내면과는 점점 더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작년에 썼던 퇴사 직후의 글과 비슷한 맥락의 글을 1년이 지난 후 다시 쓰고 있는 것은,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때문이 아닐까.


서두가 길었지만 재입사했던 회사를 그만뒀다.


생각보다 내가 회사 생활에 미련이 없는 사람이었다. 다시 시작한 회사 생활은 그저 적당한 돈을 벌면서 남는 시간에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안정적으로 하기 위한 것. 그 수단에 불과했다. 여기서부터는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안정적인 삶을 우선순위에 두고 인내하며 직장을 다니거나, 박차고 나와 내 뜻이 향하는 곳으로 나아가거나.


퇴사를 한번 경험해 봐서일까, 많은 고민을 거듭했지만 결국 다시 회사 밖의 삶을 선택했다. 물론 이전의 퇴사와는 경우가 조금 다르긴 하다. 장기적으로 하고자 하는 일의 방향성을 정했고, 거기서 소소하지만 수익을 만들기 시작했다. 원하는 방향이 정해졌으니 이제 거기에 몰두하고 싶었다. 더 늦어지기 전에. 마음이 사그라들기 전에.




누군가는 참을성 없고 끈기가 부족하다며 나를 타박한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주변에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난 세월 동안 내가 내린 선택에 단 한 번도 후회를 남기지는 않았다. 그만큼 주어진 순간에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고, 많은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각자가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니 기간이 길고 짧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1년이 걸리는 과정이 누군가에게는 일주일로 충분하기도 하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늘 그렇지만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고 믿는다.


그렇게 또 홀로서기가 시작됐다. 알 것 같으면서도 잘 모르겠고, 잘 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때로는 어려운 순간들이 또 찾아오겠지. 그렇지만 뭐가 됐든 경험해 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법이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최선의 선택을 내리는 결정만이 있을 뿐이다.

3개월간 묵혀두었던 브런치의 먼지도 살살 털어본다. 오랜만에 쓰는 글이 낯설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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