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게르만어, 프랑스어는 로망스어로부터 파생된 뿌리부터가 완전히 다른 언어이다. 그런데 오늘날 프랑스어를 배우다 보면 영어와 굉장히 비슷한 부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romesse와 promise, environnement와 environment처럼 단어의 유사성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영미권 사람들은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할 때, "Bon appétit"이라는 불어를 쓴다. 분명 기원이 완전히 다른 언어인데 어쩌다 일상에서 불어를 사용할 정도로 긴밀한 관계가 된 것일까?
사실 이러한 사례는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바로 한국어와 일본어의 관계인데 한국어와 일본어는 같은 한자 문화권이긴 하지만 기원 자체가 아예 다른 독립적인 언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리, 조미료, 가족, 온도처럼 비슷한 단어들이 아주 많이 존재한다. 일본의 잔재를 지우려 노력하지만 여전히 오뎅, 맘마, 기스처럼 한국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일본어 단어도 있다.
이렇게 한국어와 일본어의 사례를 이야기했으니 이제 뿌리가 다른 영어와 프랑스어가 왜 오늘날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는지 그 이유를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역사적인 이유 때문이다. 지리적으로 밀접한 나라는 인적, 물적 자원의 교류는 물론이거니와 역사적으로 깊게 연결이 되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언어까지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AD 43년부터 시작된 로마제국의 브리타니아(現 영국) 침략은 로마제국의 언어이자 프랑스어의 뿌리인 라틴어가 브리타니아 지역에 그 영향력을 미치는 첫 발판이 된다. 이후 AD 1066년에 영어가 프랑스어와 비슷해지게 된 가장 핵심적인 사건이 일어나는데, 바로 노르만정복을 통해 노르만인(現 프랑스인)이 잉글랜드의 왕이 된 것이다. 왕이 교체되었다는 것은 곧 그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는 일이었기 때문에 이 사건으로 인해 언어는 물론 정치나 사회적으로도 아주 많은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영어로 돼지는 pig, 소는 cow라고 한다. 그런데 돼지고기는 pork, 소고기는 beef이다. 서민의 영역이었던 가축은 영어 단어로 표기가 되고, 귀족의 영역이었던 고기는 당시 귀족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노르만인의 영향으로 porc, bœuf인 프랑스어와 비슷한 모양을 띄게 된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현재 사용되는 영어 단어의 40% 이상이 프랑스어에서 유래된 것이며, 군사용어, 법률용어, 정치용어 등의 특수 용어에서는 이러한 사례를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하나씩만 가볍게 살펴보자면 군사 관련 용어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soldier(군인)은 고대 프랑스어인 soulde의 영향을 받았고, 법률 관련 용어로는 attorney(변호사)가 있는데 이 또한 프랑스어의 기원이 되는 라틴어(attorn)에서 온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치 관련 용어로는 president(대통령)를 떠올릴 수 있는데, 마찬가지로 고대 프랑스어인 president의 영향을 받았다.
사실 현대 영어는 굉장히 흥미로운 언어이다. 본래 게르만어 기원이기 때문에 독일어와 비슷한 부분이 많은 동시에 오늘 이야기한 대로 프랑스어의 영향을 많이 받아 라틴어에서 온 단어도 수없이 많다. 이것은 곧 라틴어로부터 파생된 또 다른 언어인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과도 많은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이 점이 우리가 유럽어를 봤을 때 다 비슷하다고 느끼는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에게는 영어가 가장 익숙하기 때문에 영어에 영향을 준 다른 유럽어를 봤을 때 영어와 비슷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반면, 같은 유럽 대륙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게르만어나 라틴어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이 있다. 바로 슬라브어 계열의 러시아어를 비롯한 수많은 동유럽 언어가 그러하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이러한 슬라브계열의 언어에 대해 알아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