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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그네스 Dec 25. 2023

기대와 달랐던 스페인에서의 크리스마스

    나는 지난 2년 간 크리스마스를 스페인에서 보냈다. 그전까진 유럽 크리스마스 마켓이 유명하다는 걸 들은 게 전부였다. 그러다 재작년 크리스마스를 처음으로 유럽에서 보냈는데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실망도 정말 컸다. 이전부터 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가 가장 큰 연중행사라는 것을 익히 들었기 때문에 내가 기대했던 건 한국 크리스마스 보다 더 성대한 버전이었는데 여기서 한 가지 놓친 사실이 있었다. 한국과 비교하자면 크리스마스+설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이라는 거. '가장 큰 연중행사'라는 수식어에서 명절 연휴라는 것만 쏙 빼고 얼마나 성대할지만 기대하고 있었던 거다. 한국은 크리스마스가 워낙 피크이기 때문에 이 날 가게들이 쉴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를 못했던 것 같다.  오히려 크리스마스 준비 기간도 그렇게 화려하면 당일은 얼마나 더 신날까 하는 기대까지 했었다..ㅋㅋㅋ 함께 즐길 가족이 없는 외국인에게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는다는 것은 꽤 큰 타격이었다. 심지어 그때 모처럼 크리스마스에 1박 2일 그라나다 여행 계획을 짰는데 무려 1년에 2번뿐인 알람브라 궁전의 휴무일이 바로 크리스마스 당일이었다. 그뿐 아니라 대부분의 식당, 마트, 상점이 문을 닫아서 밥을 먹으러 가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다. 겨우 문이 열려있던 가게를 찾아 밥을 먹었는데 유일하게 문 연 가게에 대한 감동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밥이 진짜 맛있었다.



    그때 먹었던 피자인데 비주얼은 저래도 세상 맛있었다. 유럽 피자의 기본기인 밀가루, 치즈 조합이 아주 완벽했다. 사진은 앞접시 크기가 무슨 피자 한판만 한 걸 보고 재밌어서 찍었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기대했던 크리스마스 마켓. 당시에 또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껴보겠다고 마드리드랑 바르셀로나 크리스마스 마켓은 다 다녀봤는데 내가 생각한 크리스마스 마켓과 느낌이 많이 달랐다. 내가 생각한 것은 멀드 와인이나 핫초코 같은 음료가 있고 자잘한 음식을 파는 그런 마켓이었는데 이건 무슨 야시장 잡상인 같은 물품만 잔뜩 있었다. 특히 콩알탄. 진짜 적어도 1분에 1번씩 딱딱거리는 콩알탄이 터졌다.



    점등식을 할 정도로 예쁜 조명 장식들은 참 많았다. 단지 크리스마스 마켓이 내 기대에 못 미쳤을 뿐.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건 스페인만 그랬던 거다. 다른 유럽에는 내가 기대한 크리스마스 마켓이 있었다.)


    그래서 이듬해 크리스마스에는 칼을 갈았다. 크리스마스 당일뿐 아니라 이브와 같은 날에도 줄줄이 쉬는 가게나 마트가 워낙 많아서 어딜 돌아다니는 건 꿈도 안 꾸고 맛있는 거나 해 먹으면서 집에 틀어 박혀 있어야지 하고 생각했다. 근데 이번에는 일정이 내 발목을 잡았다. 여행 일정이 애매하게 잡혀있어서 크리스마스를 집에서 보내려면 적어도 23일까지는 마트에서 장을 다 봐놔야 하는데 (24일부턴 많은 마트가 문을 닫고 그나마 연 곳은 대부분의 상품이 이미 품절된 상태이기 때문) 문제는 내가 여행을 마치고 24일에 바르셀로나에 도착해 버린 거다. 그래서 이미 마트가 다 문을 닫는 바람에 해도 안 드는 방에서 집에 있던 재료들로 대충 끼니를 때우고 손가락이나 빨고 있었다. 진짜 비참했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3년 만에 한국에서 보내게 됐는데 종강하고 연말 모임에 너무 바쁘게 지내다 보니 어느새 내일이 크리스마스가 되어 버렸다. 크리스마스에 휴무는커녕 오히려 월요일이 휴무인 가게들도 화요일 휴무로 바꾸고 모두 오픈하는 한국이 (소비자 입장에선) 참 좋다.. 그리고 이번에는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것도 참 의미 있는 것 같다. 결론은 12월 초중순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유럽 방문 추천 그러나 중순이 넘어간 때부터 1월 초까지는 크리스마스 분위기 보다도 진짜 집에서 손가락만 빨게 되는 수가 있으므로 피하는 것을 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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