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앞에 선 대학신문 수습기자. 좋은 기자란?

대구 퓰리처상 사진전에서 배운 '좋은 기자'의 길

by 슌 shun

“기자는 기레기도 될 수 있고, 언더독이 될 수도 있다.”
누군가의 말이 사진전을 보는 내내 마음속에 맴돌았다.

며칠 전, 대구에서 열린 퓰리처상 사진전을 찾았다. 전시장 안은 조용했지만, 벽에 걸린 사진들은 그 어떤 말보다 큰 목소리로 나를 압도했다. 베트남 전쟁의 총성과 함께 울부짖는 아이들의 모습, 민주화 운동 현장에서 돌을 들고 서 있는 시민들의 눈빛, 그리고 자연재해 속에서 손을 맞잡고 서로를 붙드는 사람들의 장면까지. 한 장의 사진이 담고 있는 무게는 글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사진 앞에 서니 기자가 가진 힘과 동시에 그 책임이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었다.
어떤 기자는 목숨을 걸고 전쟁터를 기록했고, 어떤 기자는 사회의 가장 낮은 곳을 향해 카메라를 들었다. 그들의 사진은 단순히 ‘보도 자료’가 아니라, 세상에 꼭 알려야 할 진실의 기록이었다.

나는 지금 한밭대학교 국자신문사 수습기자다. 아직 기사 한 줄을 쓰는 데도 멈칫거리고, 선배 기자들의 피드백을 받을 때면 부족함이 여실히 드러난다. 어떤 날은 기사 문장을 다섯 번, 여섯 번 고쳐도 다시 돌아오는 빨간 펜 앞에서 마음이 무너지기도 했다. “내가 기자라는 길에 맞는 사람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 적도 많다.
그런데 이번 퓰리처상 사진전은 내게 또 다른 대답을 주었다.


좋은 기자란 대단한 수상 경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목소리를 왜곡 없이 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권력과 자본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기록하는 것. 그것이 내가 지향해야 할 기자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퓰리처상 사진전은 내게 단순한 전시가 아니었다. 그곳에서 나는 기자라는 이름이 지닌 무게를 마주했다. 기자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과 사람을 연결하는 다리였다. 한 장의 사진이 역사를 바꾸었듯, 한 편의 기사도 누군가의 인생을 흔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전시장을 나서며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어떤 기자가 되고 싶은가?”
그 질문의 대답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화려한 수상이나 명성보다는,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되는 기자, 누군가에게 “그 기자는 끝까지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줬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기자가 되고 싶다.

앞으로 내가 쓰는 기사는 교정지 위의 글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목소리이자 삶의 기록이 되어야 한다. 때로는 사회의 가장 어두운 구석을 비추는 작은 불빛이 되고, 때로는 흔들리는 사람 곁에 조용히 서서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창이 되고 싶다.

아직은 대학교 수습기자로서 실수도 많고 부족함도 많지만, 오늘의 울림은 내 안에 확실한 기준을 세워주었다. 기사 한 줄을 쓸 때마다 떠올릴 것이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까, 아니면 작은 위로가 될까?”

퓰리처상 사진 앞에서 나는 다짐했다.
나는 ‘기레기’가 아닌, 진실을 끝까지 지켜내는 언더독 기자가 되겠다고.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 기자의 글 덕분에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날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