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아자동차
넓은 세상을 함축해 살아가는 현대인은 자동차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주중 아침이면 시내에 위치한 사무실로 출근해 하루를 보내고, 짙은 노을이 자리하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주말엔 가벼운 짐을 꾸려 교외로 훌쩍 떠날 수 있는 21세기 사피엔스에게 자동차는 입을 수 있는 가장 큰 옷과 같다.
‘자동차는 옷이니 다양하게 갖춰 두고 돌려써야 한다’ 따위의 실없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자동차는 옷이니 용도에 맞게끔 제공해야 한다’가 오늘의 담론이다. 개인에 국한한 미시적인 지적이 아니라고. 그 큰 옷을 만드는 제조사가 용도는 무시한 채 한 대의 차량만 고집 해 다양성이 싹틀 기회를 덮어버리는 건 21세기 자동차 가치에 역행하는 발상이다.
‘카니발’은 기아 자동차에서 1998년부터 생산한 전륜구동 MPV(Multi-Purpose Vehicle)로 출시한 지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러 번의 연식 변경을 통해 시대 흐름에 발맞춰왔다. 오늘날까지 범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는데, 특히 다자녀를 둔 아버지들에게 인기가 상당하다. 화물 운반에 최적화된 ‘스타렉스/스타리아’와 함께 대형 MPV 장르 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고 있다.
그러나 약 25년 동안 이어진 카니발의 대형 MPV 시장 독식은 문제가 있다. 가족용 밴, 택시, 화물용, VIP 의전, 정부 기관 차량 등 분야를 막론하고 언제 어디서든 등장하는 카니발은 이제 슬 슬 진부하다. 선수 한 명이 전천후 모든 역할을 수행하는 올라운더all-rounder보다는 몰개성이자 획일에 가까운 형상이다.
대형 MPV에 대한 선호는 일본에서 시작되었다. 유럽이 해치백에 열광하고, 미국이 픽업트럭을 선호하듯 일본은 MPV에 미소 짓고 박수를 보낸다. 대중차로써 인식도 강하고, 고급 차량이라 여기는 풍토도 지배적이다. 일본의 자동차 제조사는 어떤 방식으로 대형 MPV 시장을 개척하고, 구성할까?
대중을 위한 브랜드와 고급 브랜드를 나누고, 독자적인 하이브리드 엔진 기술로 전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항상 선두급을 놓치지 않는 토요타Toyota는 우리나라에서 친숙한 ‘시에나’와 ‘알파드’뿐만 아니라 ‘노아’, ‘복시’, ‘에스콰 이어’, 플래그십 MPV ‘그란에이스’ 등을 판매하고 있다. 토요타 그룹의 자회사 렉서스Lexus는 ‘LM’으로 럭셔리 부 문을 꿰차고 있다. 모터스포츠부터 항공 사업까지 망라하는 혼다Honda는 ‘엘리시온’과 ‘오딧세이’, 그리고 ‘스텝왜 건’ 등을 선보인다. 의전, 택시, 패밀리 카 등 일본의 대형 MPV 용도는 우리나라와 크게 다를 바 없겠지만 슬라 이딩 도어를 갖춘 카니발급 차량이 이만큼이나 다양하다.
국산 대형 MPV를 선호하는 다양한 수요에 기아 자동차는 ‘카니발 세분화’로 응수하고 있다. 옵션과 구동 계통을 잘게 쪼갠 결과 카니발의 엔트리 모델은 3천만 원대부터, 최상위 모델은 1억 원을 넘는다. 시장과 고객에게 새로 움을 제공해 다양한 용도를 뒤받치는 대신 ‘옵션질’에 주력하는 모습이 썩 좋아보이진 않는다.
자동차 제조사가 판매하는 차량 라인업은 상품임과 동시에 제조사의 헤리티지를 구성하는 각 획劃이라 생각하는 데, 대형 MPV의 고장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가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띄게 두드러진다.
카니발은 일본의 MPV를 따라 뒤늦게 4륜 구동과 하이브리드 엔진을 탑재했다. 토요타의 ‘알파드’와 ‘시에나’에겐 2.5리터 하이브리드 엔진이 익숙하지만 카니발은 쏘나타에 들어가던 1.6리터 하이브리드 엔진으로 뒤늦게 따라간다. 10년 뒤 도로를 누빌 차는 아마 전기차일 거다. 전기 모터로 움직이는 차는 내연기관 엔진보다 경제적이고, 빠르다. 종합적으로 효율적이다. 감성을 찾는 내연기관파는 마니아층으로 남을 뿐, 다시금 주류를 꿰찰 순 없을 거다.
짧고, 찬란했던 내연기관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는 전기차 시대 전환의 과도기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좋은 난세亂世이기도 하다. 모델 하나를 꾸준히 팔아 번 돈은 달콤하겠지만 미래를 대하는 현인의 방식은 아니다. 연구 하고, 개발하고, 투자해 다양한 라인업을 구축했으면 한다. 고급 세단과 고급 SUV 시장에선 별다른 영향력을 풍 기진 못했지만, 도래할 순수 전기 고급 MPV 시장에선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고 본다. 4륜 구동 순수 전기 MPV 가 머지않아 세상에 나온다면 그 차는 카니발이 아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