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드서핑을 왜 하니?
내가 처음 윈드서핑을 시작한 건 벌써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는 나의 '첫여름휴가'이자 내가 선택한 '첫 수상 스포츠/아웃도어 액티비티'였는데, 어쩌다 나는 윈드서핑을 하게 됐을까?
때는 2020년 6월, 유럽엔 코로나 락다운이 한창이었다. 3월부터 갑작스레 시작된 락다운은 온 유럽을 마비시켰고, 날이 따뜻해지면서 감염자 수가 줄고는 있었지만 코로나는 여전히 우리의 삶을 지배했다.
하지만 3-4개월간 지속된 락다운으로 우리는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나태함과 무기력함에서 벗어나지 못해 허덕였고, 생산성과 집중력은 곤두박질쳤다.
그러던 어느 날. 줄어드는 감염자 수와 조금씩 완화되는 락다운 조치에 영향을 받은 건지, 친구가 우리도 가까이로나마 여름휴가를 가자고 제안했다.
여름휴가
나를 들뜨게 하기에 충분한 단어였다. 신이 난 나는 바로 휴가지를 물색했다. 락다운으로 어차피 도시 관광에는 한계가 있었고, 사람들과 최대한 접촉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다 보니 '자연'으로 행선지가 정해졌다. 또 여름휴가이니만큼 물놀이를 할 수 있는 바다나 호수가 있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그러나,
그저 바다나 호수에 가는 건 나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한국에서 대학 졸업 후, 유럽에 워홀로 와 홀로 서면서 나는 내 색깔을 하나 둘 찾아가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내가 몸을 쓰는 활동적인(active) 액티비티/스포츠를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그런 활동을 하며 성장하지 않아서 유럽 친구들과 함께할 때면 내 체력과 근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백번 느꼈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누구보다 액티비티를 사랑했다. 아드레날린이 솟아 나오는 것을 느꼈으며, 몸은 지칠지언정 마음은 늘 신이 났다.
액티비티를 할 때면, 이걸 나에게 경험시켜 주는 나 자신이 너무 좋았고 자랑스러웠다.
유럽에 온 지 1년이 채 안된 당시에도 나는 이를 조금씩 알아가던 중이었나 보다. 나에게 "여름휴가 때 뭐 할까?"라는 질문이 주어지니, 나는 각종 수상 스포츠를 검색해서 제안했다.
윈드서핑, 카이트 서핑, 카타마란 …
우리가 살던 함부르크의 가까운 곳에서 할 수 있다고 나오는 액티비티 옵션은 죄다 제시했고, 친구는 당황했다. 일이 커졌다고 느꼈으리라. 친구는 '언젠가' 해보고 싶다고 생각은 했을지언정 이렇게 바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여러 수상 스포츠 옵션 중, 유럽인의 배경지식으로 가장 배워볼 만하다고 판단된 윈드서핑을 하기로 결정했고, 그 즉시 스쿨에 전화해 문의했다. 락다운으로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아서인지 예약은 수월했고, 처음 계획했던 다음 주보다 이번주 날씨가 좋다는 소식에 우리는 바로 다음날 떠나기로 결정했다.
헐레벌떡 근처에 사는 다른 친구에게서 텐트를 빌려왔고, 차를 렌트하여 다음날 우리는 떠났다. '언젠가 해봐야지'라고 마음속에 품어만 왔던 일이 고작 하루이틀 만에 실현된 것이다.
우리는 3일 동안 하루 4시간씩, 총 12시간 수업을 들었다. 위는 당시 수업을 들었던 수상 스포츠 센터의 현재 가격표인데, 가격이 조금 오른 것 같다. 나는 당시 200유로 정도 지불한 것으로 기억한다. 선생님 한 분에 학생은 친구와 나, 둘 뿐이었다.
첫날 이론수업으로 시작해서 바로 실습으로 이어졌고, 마지막날에는 모든 수업을 마친 후 필기시험을 봤다. 독일이었던지라 독일인 선생님께서 독일어(10~20%)와 영어(80~90%)로 혼합된 수업을 해주셨는데,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고 필기시험에서 50점 만점을 받았더랬다 :)
Wind + Surfing
바람과 파도
윈드서핑은 단어 구성 그대로 바람과 파도가 가장 중요한 스포츠다. 특히, 바람이 중요하다.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사실 이 말은 틀리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따라 결정되는 Dead Zone으로는 갈 수 없다.)
반면, 파도는 없어도 괜찮다. 오히려 초보자에게는 파도가 약한 호수나 강이 윈드서핑을 배우기에 더 적합할 수 있다. (연중 수개월동안 바다가 얼어붙어있는 핀란드의 발트해 해안에서는 보드 밑에 스케이트 날을 달고, 겨울에도 바람만을 이용하여 윈드서핑을 즐긴다고 한다.)
윈드서핑의 장점
1. 배우기 쉽다.
어느 수상 레포츠에 비교를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윈드서핑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배우기 쉽다.
윈드서핑 장비는 크게 보드와 리그(돛)로 구성되는데, 보드는 상당히 무겁고 탄탄해서 뒤집어질 염려 없이 안정적이다. 바람과 파도가 엄청 센 상황이 아니라면, 보드 위에서 가만히 앉거나 서서 쉬어도 될 정도다. 리그는 본인 신체 사이즈와 힘, 숙련 정도 등에 따라 다양한 크기를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몸집이 작은 여성 초보자의 경우에는 작은 리그를 사용하면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다.
윈드서핑은 첫날 이론수업 후에 바로 보드에 올라가서 타볼 수 있을 정도로 진입장벽이 낮다. 3일이면 충분히 배워서 이후 혼자서 렌트해서 탈 수 있다. 이렇게 스스로 조종해서 속도감을 즐길 수 있는 스포츠 중에 이토록 진입장벽이 낮은 게 또 있을까 싶다.
2. 날씨/지역에 대한 제한이 까다롭지 않다.
윈드서핑과 같이 바람이 중요한 다른 수상 스포츠로는 카이트 서핑이 있는데, 카이트 서핑은 바람의 영향을 정말 많이 받는다. 바람이 약한 날에는 아예 탈 수가 없다. 우리가 느끼기에 '이 정도면 바람 많이 부는데?'라고 생각한 날에도 바람이 약하다며 수업이 우르르 취소되곤 했다. 심지어 그곳은 바람이 좋아 카이트 서핑으로 유명한 네덜란드 해안가였다. 선생님은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늘 당일 아침 또는 전 날 밤이 되어서야 수업 'Go' 사인을 주곤 하셨고, 수업 장소까지 왔는데 수업이 취소되는 날도 있었다.
또 파도가 중요한 서핑도, 파도가 약한 날이나 약한 지역에서는 아예 보드 위에 제대로 올라설 수가 없다.
반면 윈드서핑은 약한 바람도 이용해서 충분히 탈 수 있고, 앞서 말했듯이 파도는 없어도 된다. 특히 엄청난 속도를 경험하고자 하는 게 아닌 초보자라면, 적당한 바람이 부는 날 물 위에서라면 얼마든지 탈 수 있다.
그래서 한강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것!
윈드서핑의 단점
1. 바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어찌 보면 바람과 '돛'을 이용해서 '항해'를 하는 스포츠이니 만큼, 바람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바람이 부는 방향과 변화를 그때그때 인지하고 있어야 하고, 변화하는 바람의 방향에 맞춰 그 바람을 어떻게 활용해서 어디로 가야 할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공대생인 친구는 이를 잘 이해했던 반면, 나는 조금 헤맸다. 하지만 돛을 움직이며 시도하다 보면 감이 생긴다. 또, 같이 윈드서핑하는 사람이 있거나 선생님이 계시면 의논하면 되고, 장비를 렌트해 주는 곳에서도 늘 그날 그 지역의 바람에 대한 조언을 해주시곤 하니 참고하면 된다.
2. 장비 대여가 필수이다.
많은 수상 스포츠가 그러하듯 윈드서핑도 장비가 크고 무겁고 가격대가 있어, 대여가 필수다. 프리다이빙처럼 거의 맨몸으로 즐길 수 있는 수상 스포츠도 있으니,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나는 이후 내 웻슈트(서핑슈트)는 구매했고, 장비만 렌트해서 타고 있다. 내가 윈드서핑하러 가는 집 근처 호수에서는 보통 10~15유로(한화 2만 원) 정도 지불하면, 내가 지칠 때까지 마음껏 탈 수 있다. (독일 물가를 고려하면 상당히 저렴한 편이다.)
How far I'll Go
Moana를 아는가? 윈드서핑을 조금만 할 줄 알게 되면, 곧 Moana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망망대해에, 또는 그 넓은 호수 한가운데에서 바람을 가르고 시원한 속도감을 느끼며 항해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Moana의 주제곡 'How far I'll go'을 큰 소리로 불러도 눈치 볼 사람 하나 없다. 이 넓은 바다 위에 나 혼자니까!
모두가 한 번쯤 윈드서핑을 통해 항해하는 Moana가 된 기분을 느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