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난이도 ★★★★★+★★ 인 겨울 아이슬란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오랜 버킷리스트, 아이슬란드 오로라
수능 공부에 지쳐있던 고등학생 시절, 노트 한가득 버킷리스트를 작성한 적이 있다. '아이슬란드에서 오로라 보기'는 그때부터 약 10년 가까이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한 버킷리스트였다.
아이슬란드는 한국에는 2016년 꽃보다 청춘으로 한 차례 유명세를 탔고, 영화 '인터스텔라'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지구상의 그 어떤 곳보다 '외계 행성' 같고, 위대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 아이슬란드는 그 자체로서 나에게 신비로운 미지의 세계였다. 그래서 나는 늘 아이슬란드에 가보고 싶었다. 외계 행성에 가보지 못한다면, 그 영감을 주는 지구상의 공간에라도 가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아이슬란드는 참 멀고 비싼 곳이다. 한국에서 아이슬란드에 가려면, 이미 먼 유럽 땅에서 최소 한 차례 더 경유를 해서 가야 한다. 그래서 약 20시간의 비행에 총 1~2번의 경유는 기본이고, 항공권 가격도 더 비쌀 수밖에 없다.
아이슬란드가 한국에서 가기 어려운 곳이니만큼, 유럽에 처음 자리 잡을 때부터 아이슬란드는 유럽에 있는 동안 꼭 가봐야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놀러 갈 곳이 상대적으로 적은 겨울(11월~3월)이 오로라 보기에는 적기였으므로, 매 겨울마다 아이슬란드에 눈독을 들이곤 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는 여행하기도 쉽지 않은 곳이다. 기본적으로 차량으로 여행해야 하는데, 겨울철 휘몰아치는 눈폭풍 속에서 눈길과 빙판 위를 운전하려면 상당한 운전실력이 필요하다. 장롱면허 소유자로서는 반드시 마음이 맞고 기꺼이 운전을 해줄 일행이 필요했다.
유랑, 동행을 구하다
22년 말, 크리스마스와 새해 연휴를 앞두고 유랑 동행 페이지를 살펴보고 있었다. 별다른 기대 없이 스크롤을 내리고 있는데, 눈이 번쩍 뜨이는 게시글을 발견하였다.
8박 9일의 아이슬란드 여행 동행을 구하는 글이었는데, 모집인원 4명 중 3명은 이미 모집하여 출발이 확정이었고, 크리스마스와 새해 연휴를 활용하고자 하는 나의 일정에도 부합했다. 또한 일행을 모집하신 분(이하 리더)께서 이미 숙소와 차량도 모두 예약했고, 운전자와 예비 운전자도 있어 조인만 하면 되는 운 좋은 상황이었다.
들뜨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리더님께 카톡을 남겼다. 리더님은 곧바로 필요한 공동비용을 공유해 주셨는데, 비용 또한 아이슬란드 물가 수준과 연말 연휴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 저렴했다. 리더님께서 발품을 많이 파셨다는 걸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도 리더님은 비용을 듣고 연락을 철회하는 분들이 많다고 하셨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오는 경우엔 항공권도 비싸고 물가 수준도 높아, 반드시 아이슬란드에 가려던 분이 아니라면 비용과 시간 면에서 다른 유럽 나라를 선택했으리라.
나보다 먼저 연락하신 분의 참여의사를 하루이틀 대기한 뒤, 마침내 일행에 조인하게 되었다! 그렇게 모인 우리 넷은 성별과 연령 등 여러 면에서 참 좋은 조합이었다. 희한하게 4명 중 3명이 독일에 살아 독일에 대해서도 할 얘기가 많았다. 내가 유랑을 통해서 실제로 동행을 구해 여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다행히도 온전히 즐거운 경험이 되었다!
아이슬란드 액티비티
숙박비와 식비를 최대한 아끼며 계획을 짜던 우리 넷은, 액티비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거침이 없어졌다. 여차하면 '여기까지 왔는데!' 수법을 사용하며 새로운 경험은 죄다 해보고 싶어 했다. 결국 함께하는 8일 동안 렌트비와 숙박비(인당 568유로)보다 액티비티 비용(인당 587유로)이 더 나오고 말았다^^
8일 동안 함께한 액티비티/투어
(총 인당 587유로로 예약했으나, 이후 기후 상황과 일정에 따라 몇 차례 변경)
빙하 트래킹
스노 모빌
온천 체험: 블루라군, 스카이라군
이후 2일 동안 혼자 한 액티비티/투어
(총 287달러)
실프라협곡 스노클링 (196달러)
사진작가와 함께하는 소규모 오로라 헌팅 투어 (91달러)
생략한 주요 액티비티/투어
고래관측 투어
파그라달스퍄 화산지대 하이킹 - 용암이 굳어 더 이상 흐르지 않는 상태라 생략
*참고 웹사이트: Guide to Iceland (https://guidetoiceland.is/)
빙하 트래킹
당시 변덕스러운 기후로 인해 일정 조정 끝에 방문한 빙하는 Falljökull이었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자 투어 업체에서 아이젠(신발에 착용)과 아이스픽켈(손에 드는 장비), 겨울용 등산화, 헬멧 등을 대여해 주었고, 착용도 도와주었다. 이런 장비를 착용하고 나면 괜스레 전문가가 된 기분이 든다.
그런 기분을 만끽하는 것도 잠시, 우리는 곧바로 차를 타고 빙하에 더 가까이 이동하여 트래킹을 시작했다. 좁게 난 길을 따라 가이드가 앞장 서면, 15~20명 정도 되는 그룹이 일렬로 줄지어 따라갔다. 진짜 빙하 위에 올라서기 전, 가이드님께서 아이젠 착용방법과 주의사항을 알려주셨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빙하를 걸을 때는 보폭을 넓고 높게 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젠이 바지를 찢는 불상사를 방지하고, 얼음에 깊이 박혀 미끄러지지 않는다. 빙하 위에서는 가이드님께서 중간중간 멈춰 서서 설명도 해주셨고, 사진 찍을 시간도 주셨다. 빙하 위를 직접 걷고, 만지고, 맛보며 빙하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가 빙하 트래킹을 하러 간 날은 영하 17도의 맑은 날이었다. 심지어 밖에서 숙소 문을 열려고 하는데 손잡이가 얼어붙어, 옆집에서 끓는 물을 공수해 와 문을 열어야 하는 날씨였다. 하지만 우리는 눈보라로 거의 취소될 뻔하던 빙하 트래킹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했고, 신날 뿐이었다.
트래킹의 난이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빙하가 아닌 곳을 걷는 것도 포함해서 투어가 총 3~4시간 정도 소요.되므로, 한국에서 등산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체력 소유자라면 누구든지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아쉽다면 아쉬웠다. 조금 더 스릴 있고 기력을 쓰는 액티비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빙하 트래킹은 사실 액티비티라기보다는 잘 짜인 투어였다. 하지만 여전히 빙하 위를 걷는다는 건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새롭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여행 난이도 ★★★★★+★★,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 아이슬란드의 단점: 예측불가한 날씨
"If you don't like the weather, wait a minute."
지금 날씨가 마음에 안 든다면, 몇 분만 기다려라. 날씨는 곧 바뀔 테니까.
겨울 아이슬란드의 날씨는 정말 예측불가하다. 특히 우리가 갔을 때는 눈폭풍이 몰아쳤고, 예정대로 일정을 소화하는 게 결코 쉽지 않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A와 C에 숙소를 예약했는데, C까지 가는 길이 심각한 눈보라로 도로마저 통제되어 꼼짝없이 B에 갇힌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연휴에 B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되어, B 지역의 몇 개 없는 숙소를 모두 전전하며 급하게 방을 구해야 했다.
우리가 만난 다른 4인 가족은 비슷한 상황 속에서 숙소마저 구하지 못한 채 B에 고립되어 차 안에서 밤을 지새우셨다고 했다. 기름이 거의 다 떨어져 히터도 마음대로 틀지 못하고, 거센 눈보라에 차가 계속 흔들렸다고 말씀하시는 가장 분의 이야기는 마치 재난영화 같았다.
아이슬란드의 이런 위급 상황과 여행 정보를 공유하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이 있는데, 여기엔 온갖 고생담이 가득했다. C까지 가서 비행기를 타고 귀국해야 하는데, B에 고립되어 며칠 째 꼼짝 못 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이 경우, C의 날씨는 괜찮아서 비행기가 정상 운영한다면, 꼼짝없이 비행기 표 값은 날리게 된다.
'나는 아니겠지'라고 하기엔, 고속도로 위 눈에 박힌 차들을 너무 쉽게 마주할 수 있었다. 우리 차도 숙소를 몇 백 미터 앞에 두고 눈길에 차가 박혀 숙소 주인과 함께 6명이서 몇 시간 동안 눈을 퍼내야 했다.
대신 여름에 온다면, 해도 길고 날씨도 선선하여 여행하기 좋지 않을까 싶다. 동양인들은 아이슬란드에 오로라를 보기 위해 주로 겨울에 많이 오는데, 내 주변 유럽인들은 "그 추운 아이슬란드를 겨울에 간다고? 당연히 여름에 가야 하는 거 아니야?"와 같은 반응이 많았다. 알아보니 아이슬란드도 여름이 성수기였고, 여름에는 멋진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백패킹하며 발 가는 대로 다닐 수도 있을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아이슬란드는 그저 '한 번 떠나볼까'하고 가볍게 갈 만한 곳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겨울 아이슬란드는, 아무리 여행을 많이 해봤다고 하더라도 철저한 사전준비가 필요한 곳이다. 나는 동행 따라 큰 준비 없이 덜컥 갔었는데, 기본적으로 신발부터가 문제였다. 겨울철에 아이슬란드 가는 사람이라면, 겨울용 부츠부터 제대로 준비하자! (없으면 발이 얼어붙고, 현지에서 사기엔 너-무 비싸다)
겨울 아이슬란드의 장점: 오로라 헌팅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을 감안하고서라도 겨울에 아이슬란드를 가는 우리의 이유는 바로 오로라일 것이다. 사실 오로라 헌팅이 주목적이라면 극지방 겨울의 추위와 어둠은 어딜 가나 감당해야 한다. 노르웨이를 가도 감당해야 하고, 캐나다를 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는 크게 3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오로라 지수가 높아야 하고, 하늘이 구름 없이 맑아야 하며, 주변이 어두워야 한다. 이 세 박자가 맞기 쉽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오로라 지수가 높은 날이면 도심 밖 구름 없는 곳을 찾아 오로라 헌팅에 나선다. 우리도 몇 차례 오로라를 찾아 나섰고 허탕도 많이 쳤는데, 다행히 가장 선명한 오로라를 이동 중 고속도로 위에서 보았다.
크고 선명한 오로라는 육안으로도 바로 보이지만, 약한 오로라는 카메라를 활용하면 잡아내기 좋다. 요즘은 카메라 기술이 발전하여 우리 눈보다 카메라 성능이 더 좋은 모양이다.
오로라 찾는 Tip
1. 밤에 구름의 모양이 수평이 아니라 수직이라면 오로라일 수 있다.
2. 카메라 노출을 최대로 하여 사진촬영을 해본다.
3. 실시간 해당 지역 오로라 지수를 확인한다.
우리는 이렇게 휴대폰 카메라로 오로라를 먼저 찾은 후에, 오로라 지수가 높으면 자리를 잡고 기다리곤 했다. 운이 좋으면 육안으로 감상 가능한 크고 선명한 오로라가 찾아와 주었다. 오로라 헌팅 투어도 사실 오로라 지수와 날씨가 좋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기 때문에, 차량이 있는 경우엔 틈틈이 이동 중에 헌팅을 하는 게 좋다.
오로라 외 또 다른 겨울철 볼거리로는, 레이캬비크 새해 불꽃놀이가 있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시점에 많은 도시에서 그러하듯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서도 불꽃놀이를 하는데, 아이슬란드 사람들 불꽃놀이에 정말 진심이다.
레이캬비크 불꽃놀이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기업에서 주최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 시민들이 불꽃을 구매해 오고, 해당 수익금은 겨울철에 고생하는 아이슬란드 구조대원들을 지원하는 데 사용된다고 한다. 엄청난 양의 불꽃이 할그림스 교회(hallgrímskirkja) 앞에서 11시 30분 무렵부터 2~3시간가량 마구잡이로 터지는데, 불꽃에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일출도, 일몰도 긴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에 도착한 둘째 날, 일출이 너무 아름다워 아침에 허겁지겁 카메라를 챙겨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극지방인지라 일출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날은 조금 허탈했지만, 덕분에 일출과 일몰을 많이 감상할 수 있었다.
어느 날은 일몰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가 고등학생 시절의 버킷 리스트를 이뤄주는 어른이라니,
10대 시절의 막연한 꿈을 실현시켜 주는 20대라니!
아이슬란드가 오랜 버킷 리스트였던지라, 아이슬란드를 여행할 땐 내가 내내 참 자랑스러웠다.
20대 끝의 나는 10대 시절에 작성한 '아이슬란드 오로라 보기' 버킷리스트 옆에 체크 표시를 하고, 또 다른 버킷리스트를 끄적였다.
언젠가는 여름에 와서 배낭 메고 아이슬란드를 마음껏 돌아다녀야지,
그리고 아이슬란드가 아니더라도 어느 지역에서든 화산 트래킹을 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