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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in Sep 09. 2024

자기애, 이상향

점점 값비싸지는 우리의 안목에 대해


오랜만에 글을 다시 쓴다, 

바쁜 것도 있었지만 내 개인적인 마음의 여유가 부족해진 것도 한몫했다.


 글을 쓰지 않는 동안 나는 보지 않았던 드라마의 후속 편을 다시 보았다. 내가 예전에는 참 좋아했던 드라마였고, 후속작이 나온다고 했을 때는 꼭 정주행 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후속작이 나오고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드라마를 다시 보았다, 분명 재미있었지만 그 드라마를 오래 보지는 않았다. 나는 또한 외화 드라마 중에서 내가 유일하고 즐겨 보았던 ‘셜록’을 다시금 보았다. 하지만 보았던 부분까지 만을 보고 4기부터는 다시 시청을 멈췄다.


 마음에서 일종의 가뭄이 일어난 것 같았다, 재미를 느끼지만 한 순간이고 슬픔을 느끼더라도 한 순간이었다. 내 친구들은 과거에 대한 향수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나는 그런 향수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향수병이라고 할 수는 없는 그런 상태였다. 나는 시간이 흐르고 해가 넘어갈수록 두려움을 많이 느낀다.


 음모론자들이 이야기하는 지구 멸망이나, 기운이라든가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 해가 넘어갈수록 내 마음의 여유라는 병이 점점 금이 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사람들의 안목은 날이 갈수록 높아져 간다. 취업에 관한 것, 음식에 관한 것, 옷에 관한 것 더 나아가서 배우자와 자녀, 그리고 부모님에 대한 안목도 무척이나 높아져 간다.


 다들 좋은 일자리와, 맛있는 음식, 명품 옷들을 입고 싶어 하고 아름다운 배우자와, 부유한 가정을 꿈꾸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각자 꿈으로 생각해 오던 것이 이제는 실제로 현실화시키고 싶다는 강한 욕망에 사로잡힌 것처럼 다들 마음을 고친 듯하다. 이에 대해서는 매체가 발달하고 여러 사람, 여러 환경을 접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일종의 상향평준화가 일어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글을 쓰지 않는 동안 여행을 자주 갔다, 전주, 서울, 부산, 담양… 어떤 날엔 1주일 중에 하루를 제외하고는 타지에만 있었다, 그 덕분에 감기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사람은 고독하거나 외로워지기 시작하면 본능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나 해보고 싶은 것에 다시금 시선을 돌린다고는 한다, 연인이나 배우자가 고파진 이들이 예술이나 일, 드라마와 같은 문화생활이나 일종의 수집가가 되기도 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외로워질 때마다 혹은 우울해질 때마다 웃긴 영상이나 아예 생활과는 멀리 떨어진 판타지스러운 셜록 같은 드라마나, 영화를 찾아보고는 한다, 잠깐의 도피를 하는 것이다. 지금 있는 생활에 염증을 느끼기에 잠시라도 그 염증에서 벗어나고자 다른 곳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다.


 지금 사회를 들여다보면 정말로 모두가 언제든지 서로를 헐뜯을 준비가 되어있는 마치 콜로세움 같은 상황이다, 무언가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의 책임자부터 그 원인을 사회 자체에 찾거나 수많은 사람에게로 뻗어나가 불특정 다수에게 문제의 책임을 떠안고는 한다, 또한 군인에 대한 경시 또한 상당히 심각해진 것 같다, 나는 이러한 시사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것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속이 답답해진다.


 한국전쟁이 남북 간의 휴전으로 끝난 이래 언제든지 전쟁 가능성이 있는 나라에서 군인의 대한 처우나 인식이 이토록 낮은 것은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정책이나 정부를 탓하기 보다도 사회전반적으로 군인을 일종의 소모성 인력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먹기 전에는 군인들을 보면 ‘군인아저씨’라고 부르듯이 나이가 많고 성숙한 사람으로서만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군인들도 내 나이 또래였다는 것을 생각해보고 나면, 그리고 내 친구들이 점점 입대를 하고 전역을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 그렇게 멀어 보였던 존재가 그렇게 거리감이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내 마음은 갈라지다 못해 가뭄이 되어가면서 삶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게 만들었다. 나의 삶과 다른 이의 삶을 저울질할 수 없음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우리는 너무 쉽사리 나의 가치와 나의 즐거움, 그리고 진로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다른 이의 가치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종의 나를 추켜올리면서 남들을 경시하고자 하는 마음이 모두에게 팽배해진 것이다. 이것이 심화되면 나르시시즘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내가 이렇게 예쁜데’, ‘내가 이렇게 똑똑한데’, ‘내가 이렇게 스펙이 좋은데’, 이런 식으로 자기애적인 사고가 심화되어 가면서 풍조에 맞지 않게 사회를 보는 눈이 높아지게 된다, 당장 취업이나 먹고살기 힘든데 내가 가진 학벌이나 스펙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현실이라는 실전에서 계속 허상을 좇거나, 전성기의 외모와 한창때의 시기를 추억하면서 나이를 먹어가는 동안에도 배우자나 연인에 대해서 계속 이상적인 미인을 좇는 등, 주변을 낮게 보고 나를 치켜세우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나는 불교의 영원한 것을 없다는 표어와 같은 말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했던 드라마에 싫증을 느끼거나, 갑작스레 평온한 마음에 파동이 일거나, 외모나 돈 모두 계속 유지할 수 없기도 하듯이, 너무 앞에 놓여있는 것만을 바라보며 그것을 쥐려고 하면 결국 세상에 대해 회의감을 느낄 때가 언젠간 오게 된다.


 지금 우리의 이상향은 점점 상향평준화 되어 가고 있지만, 정작 사회 속의 우리의 가치는 점점 하향평준화 되어 가고 있다.


 이상향을 좇는 이들에게 당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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