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저물기 시작하면
늘 그날의 당신을 떠올린다
말없이 걷던 저녁,
붉은 하늘 아래
너는 조용히 웃고 있었고
우리는 끝내 다 말하지 못한 마음을
서로의 침묵 속에 품고 있었다
하늘은 서서히 타올랐고
우리의 그림자는 길게 늘어졌다
그 그림자 너머의 당신에게
끝내 다가서지 못했다
빛은 기울고 바람은 점점 식어갔다
아무 말 없이
당신을 놓고 있었고
당신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의 여름은 완전히 저물지 않았다
노을이 번질 때마다
다시 그 언덕 아래 멈춰 선다
다 닫힌 하늘 아래,
당신이 머물던 쪽에서
묵은 숨결 하나가
내게로 조용히 스며든다
그건 분명
당신이 나를
다시 한번 불러본 것이었다
아주 멀고,
아주 작게
그러나 잊을 수 없이
바람인지,
빛의 끝자락인지
그 부름을 분명히 들었다
한참을 멈춰 선 채
고개를 돌려도
당신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그 부름의 잔향은
저녁 하늘에 오래 남아 있었다
발끝으로
당신이 남긴 그 목소리를 더듬고
차오르던 붉은 기운이
서서히 사라지는 동안에도
그 이름을 조용히 되뇌었다
언젠가 또다시
이 하늘이 타오를 때
오늘처럼
당신의 부름에
다시 멈춰 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