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 맛집과 내 기준 맛집 사이
1. 작년 가을, 성수동으로 이전한 꽤나 유명한 캐주얼 와인 다이닝을 카페를 하는 친구와 방문했습니다.
잡지 에디터 출신인 주인장의 감각으로 채운 공간은 너무나 훌륭했습니다.
원색으로 가득 채웠지만 부담스럽지 않고, 트렌드인 그로서리 공간을 별도로 마련해 두어 콘텐츠적으로 훨씬 풍성한 느낌이었죠.
하지만 음식은 전혀 핫하지 않았습니다. 2,3만 원이 훌쩍 넘는 요리들 이건만, 라구는 탄맛이 나고,
빵은 질기고, 파스타면은 퍼져 있고… 시킨 음식의 80%를 남기고 다행히(?) 잔으로 시킨 화이트 와인만 원샷하고 나왔습니다.
지도앱 리뷰에 따끔한 리뷰를 쓸까 하다가, 나한테만 일어난 일일수도 있겠다 싶어, 가게명은 안 밝히고 스토리에만 속상한 마음을 올렸습니다.
성수동에 사무실을 둔 스타텁 대표님이 단번에 어딘지 알아보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여기 거기죠? 00님도 여기가 별로라니 너무 다행이에요. 정말 겉만 번지르르한 곳이에요”
(그 대표님에겐 제가 주변 사람들 중 최고 맛 전문가)
그렇게 기본기가 안된 곳이지만, 얼마 전까지 대기업과 콜라보 팝업도 하고 쭈욱 성업 중입니다.
2. 지난주 팀원들과 점심시간에 후딱 홍대 피자집으로 시장조사를 나갔습니다.
20대인 팀원도 자주 가는 집이라고 하고, 얼마 전에 요즘 인기인 맛집 프로에 나와 검색량도 급상승한 곳이라기에 호기심이 일었죠.
감튀를 잔뜩 올린 비주얼 갑 피자가 대표메뉴고, 우리도 기획 중인 메뉴라 참고가 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화덕 피자의 쫄깃한 도우는 나쁘지 않았지만, 정말 특별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평범한 맛이었습니다.
화제성과 기대에 비하면 실망이 오히려 큰 맛이었어요. 이게 정말 요즘 애들이 “맛있다”라고 인정하는 맛인가 싶었습니다.
바쁘지 않은 시간이었고, 우리가 첫 손님인걸 고려하면 운영 미숙에서 나오는 것도 아닌 거 같았죠.
도대체 요즘 애들의 맛있다의 기준은 어디 있는 걸까 돌아오는 길 내내 고민했습니다.
3. 첫 직장에서 만나 지금까지 베프인 친구들과 오랜만에 연남동 나들이를 하기로 했습니다.
다들 한식파이고 얼근한 막걸리가 먹고 싶었기에
일주일 전에 연남동에 찍어두었던 한식 다이닝바를 예약했어요. 우리도 이제 나이와 사회적 지위? ^^; 가 있으니 예약하고
좀 분위기 있는데 가자면서 말이에요. 예약한 집은 캐치테이블 평점도 좋은 데다가, 제가 그나마 신뢰하는 지도앱 평점도 좋았습니다.
스타일도 좋지만 맛도 좋다는 리뷰에 잔뜩 기대를 가지고 앉았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뭔가 첫 서비스부터 싸늘한 느낌이 듭니다.
하이엔드의 파인다이닝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서비스 퀄리티를
기대해도 될만한 가격대인데, 폼은 잔뜩 들어갔지만 손님은 전혀 배려하지 않은 자아도취 서비스라는 느낌입니다.
요즘 SNL에서 풍자하는 인스타 카페 사장님 정도는 아니었지만,
우리 집은 이런 스타일이다 우리 메뉴는 이런 거다라는 뉘앙스가 아주 강했죠.
예약 사이트에서 미리 보고 간 대표메뉴들은 평범 그 자체였습니다. 훌륭한 건 매장 분위기뿐이었지만
그 또한 손님을 편하게 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죠.
2만 원이 훌쩍 넘는 막걸리를 아껴먹다가, 합정역 근처 육전이 훌륭한 호프집에 가자고
의기투합해 나서서야 마음이 후련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요즘 정말 많은 한식 다이닝바들이 있고, 모두 다 이 집과 비슷한 가격대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 셰프의 개성이 들어간 레시피보다는 플레이팅을
세련되게 (양식스럽게) 하는 데에 더 집중하고 있는 듯합니다.
제가 정말 존경하는 권우중 셰프님의 권숙수나 요즘 유행하는 맡김 차림의 정점이라고
생각되는 독도 16을 다녀온다면 깊이 있는 전통주와 한식에 대해 조금은 더 공부가 될 듯한데 말이죠.
제가 푸드비즈니의 마케터이기 때문에 맛 기준이 너무 지나친가 항상 조심스럽게 평가합니다.
개인채널에 맛집을 잘 올리지 않는 이유도 이런 이유입니다. 수많은 품평을 하면서 “맛”이라는 것의 개인차가
얼마나 큰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조리의 “기본”과 “깊이”는 조금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10여 년간 개인/독립형 외식 매장들이 등장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외식 시장의 외형은 크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인기를 얻고 있는 모든 곳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콘셉트와 유행보다는 기본기와 탐구가 더해진 “셰프” 중심의 외식 브랜드들이
조금 더 사랑받고 오래가기를 바라봅니다.